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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Feb 19. 2023

웹드 소재 인터뷰를 하다 (하)

떨리는 첫 인터뷰 데뷔썰 풉니다

<웹드 소재 인터뷰를 하다 (상)>편에서 이어집니다.



인터뷰를 위해 준비했던 나름의 원고. 중요하거나 민감한 부분은 가렸다.


     웹드라마 기획 피디님께서는 어떠어떠한 배경으로 이 드라마가 제작되려고 한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고 곧바로 첫 질문이 이어졌다. 첫 번째 질문은...



회계팀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막상 질문을 듣고 나니 머리가 하얘졌다. '업무마다 다릅니다'라고 하고는 하루 일과보다는 월간, 주간 단위로 반복되는 일이 많아서 그런 쪽을 중심으로 설명했다. 


     진짜 재밌고 특이했던 에피소드들은 대부분 첫 회사 다닐 때 있던 일들이 많았다. 아무래도 이곳이 규모가 크다 보니 특이한 일이 일어날 소지가 많았는데 10년이나 지나다 보니 사실 많이 까먹었다. 당시에 인터뷰를 했다면 진짜 자세하게 말할 수 있었을 텐데. 30년 전 일까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기억하는 우리 엄마라면 모를까, '어떤 일이 분명 있었다'는 기억은 있지만 그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일이 수두룩했다.


     분명히 사이가 앙숙 같은 이사님과 부장님이 있어서 사무실 분위기가 안 좋았고 양쪽 눈치를 봐야 돼서 엄청 피곤했었다. 심지어 부서장인 CFO랑 면담한 날 적어놨던 일기를 찾아봤더니 '이사님과 부장님이 사이가 안 좋아서 일하기 너무 피곤해요'라는 말을 하려다가 안 했다는 말까지 있는 걸로 봐선 굉장히 신경 썼다는 건데 정작 그 둘이 왜 사이가 안 좋게 되었는지 같은 이유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번인 두 번째 회사에서는 CFO가 팀원을 앞에 두고 인격적으로 무시하고 나쁜 말을 하는 것으로 인해 부서 분위기가 안 좋아서 이직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요즘 갑질이나 직장 내 괴롭힘 문제도 심각하다 보니 이 부분을 딱 짚어서 여러 가지를 물어보면서 그 당시에 들었던 워딩이 기억나느냐 물었다. 


    그런데... 세상에나 만상에나 참 이상한, 말도 안 되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팀원들과 어쩜 그런 말을 하냐고 욕을 그렇게 해댔는데 이제는 정작 그때 들었던 이상한 말이 어떤 말이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났다.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다. 인간의 망각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사실 그 개 멍멍이 같은 소리는 오래 기억하고 싶지도 않았다. 떠올리면 기분 나쁘니까.


     당시 회사에 다니면서도 블로그에 일기처럼 주절주절 글을 쓰긴 했지만 학생 때처럼 미주알고주알 매일매일 글을 쓰진 못했다. 그리고 당시에는 내가 너무나 잘 아는 일이었기에 굳이 기록으로 남길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사실 무언가 글을 쓰려면 다시 생각도 하고 되짚어 보기도 해야 하는데 안 좋은 일을 다시 기억하고 끄집어내는 일 자체가 피곤한 일이라 자세히 기록하지 않았던 것 같다. 


     기억은 휘발된다. 피디님이 이것저것 많이 물어봤는데 기억 안 나는 게 많아서 미안했다. 그러다 내가 써온 것들 중 재밌거나 특이한 거 위주로 말해보겠다 해서 몇 가지 더 얘기했다. 그중에서 소재가 될 만한 것에 대해 추가적으로 몇 가지 더 물어봤다.   


     다시 돌아와서 피디님이 대화도중 궁금했거나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은 사항들에 대해 물어봐주셨다. 그리고 대망의 사내연애 썰도 물어봤는데 내가 근무했던 곳에선 같은 팀 안에서 커플이 탄생한 적은 없었고 한 명은 우리 팀이고 또 한 명은 다른 팀인 커플 조합은 많이 봤다. 그건 내가 다녔던 재무팀에 여자가 많고 수시 채용에다 기혼자들이 많은 구조라 그랬다고 변명(?)해본다.


     인터뷰 예상 답변을 준비하다가 아마 대기업이나 상장사 혹은 제조업을 영위하는 회사에 들어갔으면 다른 식의 에피소드가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업은 안 다녀봐서 정확한 건 모르지만 대기업은 보통 공채로 몇백 명을 뽑으니까 한 팀에 여러 명이 배정되는 경우도 있겠지. 그리고 좋은 집단에 속했다는 특권의식으로 인해 동기 문화가 강해서 아무래도 서로 친하게 지내다 보니 에피소드가 생길 여지가 많을 것 같다.


     여기서 하나 떠오르는 에피소드. 취직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의 이야기다. 지금도 그렇지만 팀 내에 젊은 사원들이 있으면 괜히 농담하고 엮으려고 하는 분위기가 있다. (뭔지 알져?ㅋㅋ) 입사한 지 한 달인가 두 달인가 하여간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부서 전체 저녁 회식이 있었는데 나보다 6개월 정도 먼저 입사한 남자 직원과 우연찮게 같은 테이블에 앉게 되었다. 서로 데면데면하고 별로 친하지도 않았는데 그때 같이 앉았던 나이 많은 직원분들이 '둘이 잘해봐라~' 이런 식으로 농담을 던졌다. 


     그냥 웃고 넘기면 되는 것을 이 남자 직원이 정색하면서 기분 상하게 하는 말을 했었다. 그 말이 정확히 뭔지 기억이 안 나서 '제 스타일 아니에요' 정도로 말한 걸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옛날에 적은 일기를 찾다 보니 정확한 워딩이 남아있었다. 농담하는 톤이 아니라 아주 진지한 톤으로 나를 앞에다 두고 한 말. '저는 마른 여자 싫어합니다.'


     MZ세대의 연애에 대해서도 물어봤으나 우리 회사가 보수적인 조직에 나이 많은 사람들(이제 나도 여기 포함되는 건가)이 많은 구조라 젊은이들이 많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내가 젊은이들과 안 친해서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고 누가 누구랑 사귀고 호감 있고 썸 타고 있는지를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다.


     인터뷰하면서 확실하게 느낀 건데 나는 사내 소문에 관심이 없다. 일단 내가 그 소문의 대상이 되는 게 싫으니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리고 속내를 나누는 사람도 없다 보니까 누군가로부터 소식을 듣는 것도 거의 없다. 내가 알 정도면 회사 밖의 사람도 알고 있을 정도라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그리고 요즘 화제인 회계팀의 횡령과 부정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미리 언질을 해줬음 찾아봤을 텐데 전혀 준비를 안 한 부분이라 당황했다. 요즘 우스개 짤로 회사별 횡령금액이 테이블로 돌아다니기도 하더라. 인터뷰 예상시간인 2시간에 맞춰 토즈 회의실을 예약했기에 이 시간을 넘기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시간 안에 인터뷰가 종료되었다. 그래서 회의실을 정리하고 나왔다.


     내가 인생을 심심하게 살아와서 재밌는 에피가 많이 없었기에 아쉽다는 느낌과 기록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아까 그 기분 나쁘게 말했던 남자 직원의 멘트를 정확히 적어놓지 않았다면 내 기억 속에는 '제 스타일 아니에요' 정도의 비교적 부드러운 멘트로 기억되었을 텐데 기록을 확인해 보니 '저 마른 사람 싫어해요'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물론 너무 정확한 워딩을 떠올리고 나니 과거 기억이 소환되면서 더 빡쳤지만. 아마 내가 이런 기분을 느끼지 않기 위해 어떤 것들은 일부러 자세히 적지 않았던 것 같다.


     피디님은 에피소드를 갈구하기보다는 웹툰의 내용과 현실의 재무팀이 어떤 점이 다른지 혹은 비슷한지 그런 걸 보고 싶었던 거 같다. 인터뷰는 재밌는 경험이었다. 인터뷰를 하고 돈까지 받는다는 건 기대하지 않았지만 소정이나마 대가도 준다고 해서 집에 가서 신분증 사본과 통장 사본을 보냈다. 


     내가 받을 금액이 얼만지 물어보지는 않았는데 토즈 2인실을 대관한 비용이 있으므로 아마 마이너스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까 물어본 것들에 답을 못해준 게 미안해서 옛날 일기를 다 뒤졌으나 역시 기억에도 없는 것들은 정확한 대사를 적어놓지 않아서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횡령 부분만 기사 찾아보고 확인해서 추가로 답변을 써줬다.


     오십 대가 보기에 나는 아직 젊으니 좀 더 재밌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런데 내가 맨날 '회계일 하기 싫어(x100)'라고 맨날 외치면서도 그나마 돈이 되거나 해 볼만한 일 혹은 괜찮은 제안은 이것 관련해서만 온다고 하면 이걸 노려야 되는 건가 싶기도 하다. 싫어도 그게 답일지도. 그럼 그걸 어떤 식으로 활용할 건지가 문제고 숙제가 되겠다.


그리고 며칠 뒤...





     회의 중이었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나는 일단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도 다 받으니까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전화를 건 상대방이 자신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내가 누구시라고요? 몇 번을 되물으니 혹시 얼마 전에 OOOO 인터뷰를 하지 않았냐고 물어본다. 그때는 피디님이 원작 작품명을 설명해주지 않았는데 가만 들어보니 내가 처음 들어보는 작품명을 대면서 그 인터뷰 한 사람이 맞냐고 물어보는 거였다. 그래서 맞다고 했더니만...


     인터뷰 대가로 세전 5만 원을 지급할 예정이었고 이런 경우 실제 지급액인 세후 금액은 5만 원에서 세금 떼고 나면 4만 얼마 정도 되어야 한다. 그런데 나한테 전화를 준 사람은 그 회사의 회계담당자인 듯했는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제가 실수로...
5만 원에 0을 하나 더 붙여서
50만 원을 송금했는데...
반환 좀 부탁드립니다.


     그러니까 세금도 안 뗀 채로 무려 50만 원을 송금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말 미안한데 돈을 좀 빨리 돌려줄 수 있냐고 전화를 한 거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회계팀에서 일하는 나에게 이런 전화 주기 있기, 없기? 실수한 건 분명 잘못했지만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얼마나 곤란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회계팀에서 근무하는 나 같은 사람이다. 그래서 순순히 '알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내가 회의 중만 아니었다면 계좌 확인하고 곧바로 송금했겠지만 회의 중이었기 때문에 회의 끝나고 이따 송금해야지 하고 다시 회의실로 들어왔다. 그런데 또 전화가 온다. 문자로 지금 회의 중이라 전화 못 받지만 돈은 보낼 테니 걱정 마시라 했더니 문자가 왔다.


     자기들이 실수해서 번거롭게 한 게 미안해서 세전 5만 원이 아닌 세후 5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세후 수령금액 5만 원만 남기고 나머지 차액만 보내 달라는 문자였다. 이렇게 회계팀 인터뷰 에피소드에 맞게(?) 송금 오류를 에피소드를 남기며 마무리되었다.


      나는 인터뷰 대가로 5만 원을 받았고 돈이 잘못 송금된 덕분에 웹툰 원작의 제목을 알게 돼서 웹툰을 찾아봤다. 원작웹툰은 피디님이 사내연애 관련 에피소드 물어볼 때 눈치챘던 것처럼 일도 열심히, 사랑도 열심히 하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드라마가 만들어졌을 때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펼쳐질지 그리고 내가 말한 에피소드도 어딘가 반영되어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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