뫼비우스의 띠 같은 회사생활
아까 점심시간에 밥 먹으면서 다른 부서의 험담을 하다 발견한 사실.
요새 인사팀이 욕을 많이 먹고 있는데 결국 그 위로 올라가다 보면 팀장 -> 본부장 -> 대표이사로 이어진다. 특히 인사팀 팀장이나 본부장님은 우리 팀장님처럼 상사의 의견을 거역하는 스타일이 아니므로 대표님이 불을 뿜듯이 내뱉는 의견에 그대로 '예예' 하고 따르겠지. 결국 지금 이게 그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무리 회사 욕 해봤자 소용없다. 내 생각 바꾸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윗사람의 생각을 바꾼다? 그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스스로 깨어나거나 누가 옆에서 깨워주지 않으면 절대 모른다. 그래서 CEO나 대통령 같이 높은 사람 주변에 누가 있는지가 특히 중요한데 지금 그 옆을 보좌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표님을 깨워줄(?) 스타일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기존에 본인이 세운 틀을 벗어나거나 의식에서 깨어난다는 건 특히 직급이 올라갈수록 자존심 상하는 일로 여겨진다. 왜냐하면 그동안 내가 잘못해 왔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고 남들한테도 그것들이 자연스레 공표되고 드러나게 된다. 쪽팔린데도 불구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일을 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의견을 일단 한 번은 말해보고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한다. 결국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건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위에서 지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내 의견을 한 번은 말해본다는 것인데 따지고 보면 결국 이 사태도 대표님이 책임져야 한다는 결론이 났다.
퇴사하면서 행정적인 절차 처리하는 게 뭐가 그리 어려울까? 말 한마디 잘못하고 윗사람 설득 못한 채로 그 사람들이 한 워딩을 그대로 전달하니 그 사달이 나는 거지. 이제야 왜 그런 어이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아마 예전 대표님이라면 이런 쪽으로는 문제가 일어나지 않게 할 텐데.
나도 남의 일이니까 쉽게 말하는 거지만... 경쟁사로 가는 거, 당연히 눈꼴시겠지. 하지만 다니는 동안 좋지 않았어도 끝이라도 좋게 끝나야 추억으로 간직도 되고 나중에 그게 돌고 돌아오는 거 같다. 특히 우리 회사처럼 업계에서 규모가 제일 작고 밀리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이런 마무리 하나하나가 더 소중한 거라고 생각한다.
업계 1위 라거나 규모가 큰 회사라서, 누가 봐도 메리트 있어서 지원자들이 얼마든지 오는 곳이라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상황이 다르다. 이건 남겨진 사람들이 볼 때, 내가 나갈 때도 저딴식으로 사람을 대하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애초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생각도 든다.
전 직원이 모이는 킥오프 때 퇴사 예정인 사람들을 불러놓고 수고했다고 한마디 하는 자리라도 만들자는 우리 팀장님의 의견은 파격적이고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였지만 나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퇴사해도 퇴사자 회식도 있었고 화기애애하게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은 죄진 거처럼 조용히 사라져 버린다. 퇴사자들에 대한 대우가 확연히 안 좋은 데다 이딴 식으로 대우하면 더 짜증 나지. 안 그러겠어?
관리부서는 경쟁사로 이직하는 경우가 드물다. 그러니 퇴사를 해도 영업기밀 문제에서도 자유롭고, 견제대상도 아니어서 별로 타격감이 없다. 하지만 영업이나 그에 관련된 부서는 업계 특성상 같은 업계를 돌게 되다 보니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되는 일이 흔하다. 즉 이쪽저쪽 경쟁사로 이직을 하는 일이 매우 잦다는 것. 일이 똑같이 힘들어도 보상을 제대로 해주는 큰 규모의 회사를 찾는 건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팀장님 말대로 나갈 때 잘해줘야 그게 돌고 돌아서 돌아오고 또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하면서 나중에 말 한마디라도 좋게 해 줄 수 있다는 게 맞는 거 같다. 요새는 본부장님이 조금은 일리 있는 얘기를 해도 그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감정적인 건 쏙 빼고 내용(알맹이)만 바라봐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거지. 그나마 나는 제삼자니까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데 이상하게 똑같은 말을 해도 팀장님이 하는 얘기는 설득되는데 본부장님이 얘기하면 설득이 안 된다.
아까 본부장님이 불러서 본부장실에 갔다. 그 자리에서 좀 깼던 건, 자꾸 본인이 과거에 재무팀 일을 해보지 않았냐면서 그걸 설득의 근거로 드시는데 그게 전혀 설득도, 동요도 안 됐다. 본부장님이 하는 말 중에 제일 마음에 안 드는 게 이거다. 오히려 인사팀 실무는 본인이 해보지 않은 채 바로 윗자리에 앉아서 자꾸 그쪽을 편드는 것처럼 보이는 것. 그런데 우리 팀 업무는 해 봤으니까,라는 이유로 자꾸 여지를 두는 것.
일을 시킬 때도 그렇다. 일이 많아지면 물론 짜증 나겠지만 팀 차원에서 해야 하는 일이라면 당연히 한다. 그런데 계속 미안하다고만 하면서 실질적으로 해결되는 게 없다. 정말로 해야 되는 일에 대해서는 괜한 사족 달지 말고 건조하게 사실만 말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배려라는 명목으로 겉보기에만 따스해 보이는 따뜻한 말을 더하는 게 싫다. 그런 맥락에서 인사팀한테도 늬들이 힘드니까 그들이 원래 해야 하는 일조차도 안 해도 된다는 식으로, 너희들 편한 식으로 일하라는 식으로 말을 한다. 문제는 그들도 그런 인식이 없다는 거지만.
힘들거나 일이 몰려도 해야 할 일이라면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언제까지 사람 없다는 핑계,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핑계를 댈 건가? 본부장님이 그렇게 얘기해도 먼저 우리가 해야 될 건 해야 한다고 말해야 되는 거 아닌가? 그러니까 그들이 해야 할 일이 다른 팀한테 떠넘겨지고 당연히 해야 할 일도, 일을 키우지 말아야 할 일도, 그럴 일이 아닌 것도 일을 키워서 엉망이 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