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고 피로한 나

예술가도 아닌데 쓸데없이 예민해서 괴로운 사무직 인간

by 세니seny

우리 사무실은 음악을 틀어놓고 자유롭게 일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팀 막내가 가끔-아니 요새는 거의 근무시간 내내-에어팟이나 유선 이어폰을 끼고 있는데 그게 거슬리게 보일 정도니까. 왜냐면 이어폰을 끼고 있으면 사람을 부를 때 꼭 두 번씩 부르게 된다. OO 씨? 하면 못 알아 들어서 꼭 한 번씩 더 불러야 한다. 그런데 사실은 이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이유가 있다.




전화가 많이 오는 영업직군의 경우 전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에어팟을 끼고 있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팀은 사무직이고 막내는 유선 이어폰을 꽂고 있을 때도 있으니 이어폰을 꽂는 것이 전화를 받기 위한 목적은 아니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어폰을 꽂고 무언가를 들으며 외부상황을 차단하려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무리 봐도 막내는 후자의 입장으로 보여서 그런지 더 싫어 보이는 것 같다. 막내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내 마음이 투영돼서 그런 걸까?


아무튼... 다들 말없이 업무에 집중하고 있는 조용한 사무실. 이때, 내 뒷자리에서 손가락으로 불규칙적으로 책상을 타탁 타닥 두드리는, 나를 소름 돋게 만드는 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타타타.. 타타타.. 타닥…
탁타타..타타타타..타타닥…


소리를 최대한 글자로 표현해 봤는데 제대로 전달이 될지 모르겠다. 맑고 가볍게 울리는 탁, 탁 한두 번 울리고 끝나는 소리가 아니다. 사람이 손가락으로 책상을 지속적으로 두드리며 내는 소리, 초조하지 않은 사람도 괜히 초조하게 만드는 그 소리다. 소리를 내는 본인은 불안하거나 뭔가 일이 잘 안 풀려서 고민을 하던 중에 무의식적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것 같다.


이것은 몇 년 전, 내 옆자리에 앉았던 Y대리가 만들어내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소음이다. 그분은 기침이 나올 때 손으로 막지도 않고 기침하는 모션을 엄청 크게 하는 타입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오후 햇살이 내리쬐던 어느 날, 기침 소리와 함께 공기 중으로 분사되는 Y대리의 침 폭포를 보고 말았던 것이다.


게다가 그분은 사무실에서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지속적으로 손톱을 깎거나 옆자리에만 들릴 정도로 작게 불평불만을 많이 이야기하는 등의 소음을 내는 사람이었다. 다행히 이 분은 내가 더 신경 쓰고 미쳐버리기 전에 다른 모종의 일들이 있어서 퇴사했다.


그런데 Y대리와 비교해서 지금의 이 소음이 내포하고 있는 심각성은 바로...

아무도 모르겠지만 그녀가 내는 이 소리와 함께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습관은 같은 큐비클 내에서 전파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 소리를 처음 낸 장본인 그녀, S는 나와 등지고 앉아있는 가끔 업무 협조를 하는 다른 팀 직원이다. 그녀가 내던 이 소리는 S의 옆자리에 앉은 다른 직원과 요즘 미운 짓을 도맡아 하고 있는 내 앞에 앉아 있는 우리 팀 막내 사원에게까지도 전파되었다.


그들 모두 불안하거나 초조한 건지 아님 그냥 이 소리가 들려오니까 무의식적으로 전염된 건지 툭하면 손으로 책상을 치면서 탁탁탁, 타타탁, 소리를 내는데 정말 미쳐버릴 거 같다. S가 입사하기 전인 1년 전만 해도 없던 소리인데 정확히 그녀가 입사한 이후로 생긴 소리다.


Y대리는 내가 원래 그 사람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 사람이 내는 소리마저 싫어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옆 팀에 합류한 지 갓 1년 된 이 직원, S에게 사적으로 나쁜 감정은 전혀 없다. 오히려 일도 잘하고 싹싹하고 어떤 면에선 러버덕 같이 보러 갔던 내 친구와 닮은 점이 많아 굳이 말하자면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데 수시로 책상이나 마우스에 손가락으로 딱딱 거리는 소리를 낼 때마다 정말 미쳐버릴 거 같다. 이러다가 조용한 사무실에서 내가 벌떡 일어나서 이렇게 외칠 것만 같다.


책상 좀 그만 두드려,
이 X아!!!!


그럼 나만 갑자기 사무실 한가운데서 욕하며 소리치는 이 구역의 미친 X이 되겠지. ‘어머머, 저 사람 왜 저런대? 안 그렇게 봤는데 진짜 이상한 사람이다’ 하는 수군거림과 함께.


하지만 이런 걸 자제해 달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는 나를 뺀 그들은 이 소리가 아무렇지도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기가 그런 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는 그 소리 때문에 미치는 거다. 게다가 요즘은 횟수도 더 잦아진 거 같은 느낌적인 느낌.




그러다 생각했다. 이들한테만 뭐라고 할게 아닌 것이, 나는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수시로 기침을 한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니지만 이거 얼마나 듣기 싫을 거야.


그런데 그 누구도, 아무도 나에게 적어도 여태까지는 (뒤에서는 뭐라고 했을지언정) 내 앞에서는 나에게 뭐라고 한 적이 없다. 그래서 더 이상 그녀의 손가락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않고 조용히 닥치고 있기로 결론을 내렸다.


다행히 최근엔 그녀가 재택근무를 자주 하거나 외부에 교육을 받으러 가는 등 출근하지 않는 날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래서 마음이 한결 편안해져서 용서가 되었다.


덧.


이 글의 초안을 쓴 게 몇 년 전인데 발행을 위해 글을 수정하다가 알게 된 사실. 아무래도 나는 아래 영상에 나오는 것처럼 HSP(초민감자)인 듯하다. 최근에서야 이런 개념이 나와서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네. 하하하.


HSP? ADHD? 예민한 나, 병일까 싶어서 병원에 가봤습니다. (by 크랩 K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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