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그 후의 이야기 : 1년 뒤 (하)

퇴사선언은 회수되었지만... 2년 뒤 현실이 되었다

by 세니seny

이전 글에서 이어집니다.


팀장님이 다음 주 목요일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약 일주일간의 시간을 주었다.


1주일 후 목요일. 팀장님과 막내사원은 회의실로 들어가서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뭔가 결정된 거구나, 앞으로 어떻게 마무리할지 이야기하느라 말이 길어지는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한참이 지나 두 사람이 나오고 막내사원이 먼저 퇴근한 후 팀장님이 나와 동료를 따로 불렀다.


오늘 회의실에서 막내와 나눈 이야기의 결과를 공유하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당연한 수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막내가 생각을 고쳐먹고 다시 다니기로 했다고 한다. 난 여태 얘가 나가는 상상 하며 기뻐하고(?) 오히려 잘됐다 마음 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런 게 있다. 내 밑에서 일하던 직원이 나가면 내가 뭔가를 잘못해서 나가는 게 아닌가? 하는 것. 아래직원이 퇴사를 하면 인사팀과 다른 직원들의 눈총을 받고 실제로도 내가 뭘 잘못한 게 아닌가 싶은 거지. 그런 경우가 많긴 하지만 꼭 100% 그렇지만은 않다.


내가 첫 직장을 퇴사한 건 다른 이유 때문이었지 사수 때문이라면 절대 퇴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수는 인간적으로도, 업무적으로도 좋은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사수가 내 인생을 살아주는 건 아니므로 다른 길을 택한 것이다. 두 번째 직장 퇴사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하게 사수(직속 상사)들은 다 좋은 사람이었다.


아직 퇴사하진 않았지만 지금 다니는 세 번째 직장의 퇴사 사유도 절대 팀장님 때문이 아니다. 나는 여태 다른 길을 찾으려고 발버둥을 쳐왔는데 아직 '그것'을 찾지 못해서 못 나가고 있는 것일 뿐. 오히려 팀장님이 있을 때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있는 동안 이 사람한테 잘 배우고 이 분이 계실 때 내가 퇴사를 하더라도 뒷수습을 잘해주실 것 같은 믿음이 있어서 그렇다.


허무해졌다. 처음에 나간다고 했을 때는 단물만 쏙 빼먹고 토낀다고 생각해서 괘씸했지만 자기 인생이니까 내가 더 이상 뭐라고 할 것도 아니지. 그리고 새로운 직장에 가서 비슷한 양상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왜냐면 직장은 바뀌지만 그 사람이 바뀌는 건 아니니까.


가만 보면 우리들도 직장이든 친구든 결국 내가 생겨먹은 대로 인간관계를 유지한다. 그렇게 일을 하고 거기서 갈등이 일어나는 방식도 비슷하고 해결방식도 거의 엇비슷하다. 왜냐? 나란 인간의 심, 중심, 본질은 똑같으니까.


그러니까 막내가 다른 회사에 가더라도 아마 이 성격이 어디선가 튀어나오겠지.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아마 이전에 살아오면서도 이런 식의 갈등이 분명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이 직전 회사를 퇴사한 이유도 듣고 보니 그렇게 읽힌다.


나는 신입사원일 때 제너럴리스트가 되는 건 나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단 제너럴로 넓게 경험해 보고 그 이후에 그중에 하나를 골라서 스페셜리스트 쪽으로 가도 된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반대로 신입사원 때 나처럼 너무 좁은 업무영역만 경험하게 되면 그다음에 이직하기가 힘들었다. 아니면 그냥 한 회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잘 붙어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그 회사에서라도 클 수 있다.


문제는 봐봐. 내가 다녔던 첫 번째 회사는 내가 퇴사하고 정확히 3년 뒤에 구조조정이 있어서 내 위로 있던 여자 차장들은 모조리 퇴사하게 되었고 대리급들도 자른다더라, 하는 소문까지 돌았다고 한다. 그러니 한 직장을 오래 다니고 싶다고 해도 그게 내 맘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니 지금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면 좋을 텐데.


그런 거 저런 거 다 필요 없고 결국 자기 선택이니까 다른 데로 간다고 해도 어느 조직이나 그레이존은 있다. 세상의 모든 문제가 무 썰듯이 똑 떨어지는 건 없다. 대기업이 그나마 업무가 세분화되어 있지만 그래서 책임회피 하고 업무진행이 더딘 면도 있지 않나?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어디 하나 쉬운 게 없다. 그 안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거지.


아무튼 이렇게 막내의 2차 퇴사선언도 회수되었다. 하지만 3차 때에는 안 되겠지. 이런 그녀를 우리가 붙잡는 이유는 그녀가 이렇게 그만둬버리면 그게 다 우리 책임이 되기 때문이다. 팀장님은 그녀를 숙제처럼 생각하라고 했다. 팀장님이 나와 동료를 숙제처럼 생각하고 가르치는 것처럼.


마우스 딱딱거리는 소리와 시끄러운 키보드 소리 딱 한 달만 참으면 되겠구나 하고 좋아했는데 다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역시 내가 먼저 나가야겠어.




이 이야기의 진짜 결말은?


그로부터 1년 뒤쯤에도 막내는 습관성(?) 퇴사선언을 했고 팀장님이 또 붙잡았다. 거의 1년 주기로 퇴사선언을 한 걸 보면, 그녀는 우리 팀이나 업무와 상성이 어지간히 안 맞았던 건데 정말 버티고 버틴 거다.


또다시 1년 뒤, 내가 퇴사하고 약 한 달 뒤에 이 직원도 결국 퇴사를 했다. 그것도 이미 다른 곳에 취업이 되어서 급하게 그만두게 되었다는 지난번과 똑같은 뻥과 함께.


이쯤 되면 그녀가 5년 가까이 다닌 게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다. 결국 나갈 사람은 나가게 되어있다. 차라리 초창기에 빨리 정리를 하는 게 서로에게 나쁜 기억으로 남지 않고 끝났을 것 같다.


퇴사선언 -> 근무 -> 퇴사선언 -> 근무라는 패턴이 반복되다 보니 오히려 서로에게 더 힘들었다. 그녀도 회사를 다니면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고생을 많이 했지만 마무리가 그렇다 보니 나에게 그녀는 이런 패턴의 사람으로 남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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