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동안 본 면접들이 떠오르는, 첫 면접관으로서의 기억
사회생활 어언 10년 차. 그동안 나는 면접을 보러 다니는 '면접자'의 입장이었는데, 작년에 처음으로 '면접관'으로서 면접에 참여하게 될 기회가 생겼다. 우리 팀에 신입사원을 뽑기로 한 것이다. 처음엔 당연히 팀장님만 면접관으로 참석하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팀장님께서 우리 팀에서 같이 일할 사람을 뽑는 것이니 같이 면접관으로 참여해보는 게 어떻냐고 먼저 제안을 해주셨다.
그런데 나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아직 내가 누군가를 판단하고 사람을 볼 만한 짬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팀장님께서 중요한 점이나 실질적인 것은 본인이 볼 테니(면접자의 점수를 매기는 것과 같은 것들) 그저 같이 일할 사람으로서 어떤 사람일지 직접 만나 그 공기를 느껴 보고 먼 훗날에 다른 상황에서 내가 면접관이 되어야 할 수도 있으니 미리 경험해보면 좋을 것 같다며 면접관으로 참석하는 것을 강력 추천하셨다.
그래서 고민은 되었지만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면접관이라기 보단 면접을 '참관'한다는 느낌으로 면접관이 되어보기로 했다.
인사팀을 통해 채용 사이트에 신입사원을 모집하는 공고를 올렸다. 회계업무의 경우 전문대, 4년제 등 회계/세무/경영에 관련된 과에서 나오는 학생들이 많은 편이어서 항상 인력이 많이 있는 편이고 신입사원의 경우는 경력자와 달리 업무 경험이 없어도(적어도) 지원할 수 있기 때문에 지원자들이 많은 편이다. 그리고 모든 회사마다 회계팀, 재무팀, 경리부, 재경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회계/재무/세무/자금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팀이 반드시 있기 때문에 그리 생소한 분야도 아니다.
그리고 우리 회사가 규모가 작은 편이기는 하지만 브랜드 이름은 널리 알려진 편이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지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차로 서류를 스크리닝 한 인사팀 말로는 마감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자리에 맞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이것이 구직자가 느끼는 구직난과 회사에서 느끼는 인력 조달 관점에서의 차이가 생기는 지점인 듯했다.
모집 공고에는 회계/경영 전공자일 것, 경력은 없어도 상관없으며(있어도 1년 내로 길지 않을 것) 신입사원이 본사와 직접 커뮤니케이션할 일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외국계 기업이니 영어는 기본적으로 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고 업계 특성상 법/규약을 이해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경비 집행이 이루어지는 부분도 있어 관련된 약간의 법무적인 업무를 해야 한다는 조건도 명시했다. 법무와 관련된 업무는 사실 들어와서 배우면 되는 부분인데 인사팀에선 법무 업무라는 어감 때문인지 혹은 글로벌 브랜드로는 인지도가 높아도 우리 회사 자체는 B2B 영업을 하고 있어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생각보다 지원자가 많지 않다고 했다.
그래도 채용 사이트를 통해 직접 지원자들 중 3명을 추렸고, 인사 담당자가 좀 더 신경을 써주어서 채용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려놓은 사람들 중 조건에 맞는 사람들에게 직접 연락을 해서 그중 1명이 추가로 면접을 보기로 결정되었다. 인사팀에서는 1차 면접자 4명의 이력서를 전달해주었다.
이력서를 보다가 면접관으로서 면접에 참고하기 위해 내가 취업 준비를 하던 시절, 면접을 보러 다닐 때 개인적인 피드백과 감상을 위해 적어둔 면접 후기를 오랜만에 다시 읽어 보았다. 면접관이 몇 명이며 어떤 질문을 했고 그에 대해 어떻게 대답을 했으며 면접 분위기는 어땠고 최종 결과는 어떻게 나왔는지가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그것들을 읽어보면서 내가 면접관으로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나는 대략 100여 곳 정도 원서를 접수했고 그중 서류 통과를 한 곳은 14군데였다. 서류통과 후 필기시험(혹은 인적성)이 있는 곳이 8군데가 있었는데 그중 1군데만 통과했다. 필기시험이 없는 곳은 서류통과 후 바로 면접이 진행되었는데 9번의 면접을 보고 3번의 최종 면접에 합격했으며 그중 하나를 선택해 입사했다. 그렇게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보며 내가 면접을 보러 다니던 시절을 생각했고 시간이 흘러 반대의 입장에서 면접을 기다리며 두근대기도 하고 걱정도 하며 면접일을 맞이했다.
먼저 면접 첫날은 오후 내내 3명의 면접이 예정되어 있었다. 면접관으로는 인사팀 직원 두 명과 우리 팀 팀장님 그리고 나까지 4명이 참석했다. 나도 면접을 볼 때 면접관이 4명인 면접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혼자 앉아서 4명을 감당하려니(?) 살짝 부담됐던 기억이 났다. 나는 제일 오른쪽 끝에 앉았고, 주로 질문을 한다기보다 면접의 분위기를 살피며 면접자들을 관찰하는 역할을 맡았다.
첫 번째 면접자.
이력서 볼 때 놀랐던 게 신기하게도 우리 학교 같은 과(학부) 학생이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나랑 같이 학교를 다닌 적은 없지만 나의 직속 후배였던 것이다. 그래서 속으로 참 반가웠다. 아직도 술 먹으러 지하세계 가니? 요즘 학교는 어떠니?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러면 학연 때문에 뽑았다고 의심을 살 수 있기 때문에 그건 나중에 이 사람이 만약 입사하게 된다면 그때 말해주기로 마음먹었다.
면접자는 남자였고 졸업한 지 시간이 꽤 흘러서 신입사원 치고는 나이가 조금 있었다. 학교 다니는 중에 세무사 공부를 하다가 1차에 붙은 적이 있었는데 2차 시험은 붙지 못했고, 그대로 졸업을 했다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시 세무사 공부를 하며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팀장님도 세무사 시험 1차에 붙은 적이 있어서 이 지원자에 대해 기대를 많이 하셨다. 나도 내 후배니까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면접자는 자기가 생각한 것보다 좋은 곳에 면접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원래 그런 스타일인지 긴장을 너무 많이 했다. 덜덜 떠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게다가 세무사 1차에 합격한 경험이 있다고 하니 팀장님이 이것저것 어려운 질문을 많이 물어보셨는데(사실 나한테 물어봤어도 잘 모르는 것들이었다)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1차에 합격한 것이 대학생 때여서 굉장히 오래되었긴 하지만 미련이 남아 현재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는데 그에 못 미치는 대답에 팀장님은 실망한 눈치였다.
아르바이트는 성실하게 잘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하던 곳으로 사장님께서 본인을 좋게 봐서 다시 불렀고 면접 등 사정이 있으면 그런 걸 다 봐준다고 했다. 그렇지만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보였고 세무사 1차 합격을 했다는 메리트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두 번째 면접자.
이력서에 그동안 열심히 노력해 온 흔적이 보이는 지원자였다. 학교 네임밸류가 좋은 편은 아니었으나 성적은 좋은 편이었고 교수님 연구활동 등 대외활동도 열심히 했으며 졸업을 빨리 해서 나이가 어렸고 현재는 XX기업 재무팀 인턴으로 거의 1년 정도 근무를 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이력서 내용을 보니 인턴 치고 굉장히 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다.
팀장님께선 그 점을 짚으며 이 정도면 인턴이 아니라 거의 정규 사원으로서 일하는 것이 아니냐, 그렇다면 새로운 곳에 지원하기보다 지금 인턴으로 있는 곳에서 정직원으로 전환되는 게 더 낫지 않느냐, 정직원 전환 기회가 없어서 그런 것이냐 등을 물어보셨다. 그녀는 지금 다니는 곳이 정직원 전환 기회는 있지만 본인이 생각하기에 해당 업계 전망이 밝지 않고 정직원이 된다고 해도 현재 하는 업무 외에 다른 업무를 해볼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자기 발전이 없을 것 같다며 현재는 인턴으로 일하고 있지만 다시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성격이 굉장히 밝아 보였지만 방금 전에 면접을 본 첫 번째 지원자와는 다르게 자신감이 많이 넘쳤다. 자신감이 없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이제 겨우 1년도 채 일해보지 않았는데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해 나는 다 할 수 있다는 약간의 오만과 새로운 업무를 갈망하는 모습이 엿보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계팀의 업무는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그리고 대체적으로는 입사하면 같은 업무를 1,2년 정도 반복하게 된다. 상황에 따라 더 긴 시간을 반복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 회사에 들어오더라도 어느 정도 정해진 사원급의 업무를 2,3년 정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저것을 해보기 원하는 그녀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세 번째 면접자.
나는 면접관으로서 말을 많이 하지도 않았는데 한 사람 면접 당 거의 1시간씩을 쓰다 보니 참여하는 것만 으르도 진이 빠졌다. 오늘의 마지막 면접자인 세 번째 지원자는 공고를 직접 보고 지원한 첫 번째, 두 번째 면접자와 달리 인사 담당자가 채용 사이트에 올려놓은 이력서들을 찾아보면서 우리가 원하는 조건과 부합하는 것 같아 연락을 해서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이었다. 그녀는 회계/경영학과 전공이 아닌 경제학과 전공이었고 다른 회사 회계팀에서 1년 정도 일한 경험이 있었다. 현재는 퇴사하고 6개월가량 지났는데, 그동안 여행도 하고 쉬면서 재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회사(사회) 생활을 1년 정도 해봤다면 어느 정도 회사가 돌아가는 것을 알기 때문에 대학교를 막 졸업하고 온 신입사원보다 일을 가르치기는 쉽지만 1년 동안 일을 하며 굳어온 관성이 있을 수도 있어 오히려 일을 가르치기가 어려운 점도 존재했다. 그래서 어설픈 경력자들은 뽑지 않는 게 나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왜 이전 회사에서 1년만 일하고 퇴사를 했는지가 중요했다.
그녀가 전에 일했던 회사는 규모가 매우 작은 소기업으로, 타 부서 사람들이 퇴사를 하는데 사람이 충원되지 않아 그 일을 회계팀에서 떠맡아서 하게 되면서 회계적인 업무가 아닌 기타 다른 업무들을 하느라 일이 많았고 그에 따라 야근이 많아져서 힘들어서 퇴사를 했다고 대답했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첫 번째 지원자보다 자신감은 있었지만 두 번째 지원자보다는 좀 더 얌전했고 차분하면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은 태도로 면접을 진행했다. 살짝 영어 질문을 던졌는데 대답도 매끄럽게 잘했다.
오늘의 모든 면접이 끝나고 팀장님과 둘이 회의실에 남았다. 팀장님은 셋 중 누가 제일 괜찮냐고 물어보셨다. 첫 번째 지원자는 내 후배라는 것을 밝힐 수도 없이 안타깝지만 패스. 그렇지만 두 번째 지원자와 세 번째 지원자 중 둘 중에 고민이 되었다. 둘 다 그만그만한데 두 번째 지원자가 더 어리고 자신감이 넘쳤다. 그렇지만 우리 팀에서 나와 팀장님 또 내 동료와 같이 일할 분위기에 어울릴 사람은 세 번째 지원자라고 생각했다. 팀장님 역시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리고 인사팀도 비슷한 의견이어서 일단 세 번째 면접자를 2차 최종 면접에 올리기로 했다.
'생애 첫 면접관이 되어보다 (2)'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