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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Sep 13. 2024

서울탐방 제15탄 : 푸른 수목원과 항동 철길 (상)

2023년 5월의 기록 : 서울의 서쪽 끝으로 가며 생각에 잠기다


서울은 꽤 크다.



     서울탐방을 시리즈를 해보면서 느낀 점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2023년 5월의 나는 위치 상 서울의 중심지역에 살고 있다. 즉 서울의 동쪽이든 서쪽이든 남쪽이든 북쪽이든 어느 한쪽에 크게 치우쳐져 있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집에서 서울 어딘가로 갈 때는 그곳이 멀다는 느낌보다는 어디든지 적당히, 이동하면 되겠네 하는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꽤 먼 곳에 왔다는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이곳이 주소지는 서울이지만 경기도와 곧바로 붙어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같은 서울이라도 주위의 모든 동네가 서울인 곳도 있는 반면에 어떤 곳은 바로 경기도나 강원도 등 행정구역 상 다른 곳과 인접해 있는 곳도 있다. 어쨌거나 주소상은 서울이니까 우리는 여전히 서울이라 부른다.


      몇 년 전 인터넷을 통해 항동 철길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서울에 아직도 이런 곳에 있다는 게 신기해서 '언젠가는 가봐야지'생각해 둔 나의 '가야지 리스트'에 등록되어 있었다. 그래도 멀리까지 갔는데 항동철길 하나만 보고 오긴 뭐해서 근처에 뭐가 없을까 네이버 지도로 주위를 살펴보다가 근처에 수목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거다. 정말 서울의 끝에 끝에 끝에 있는 곳. 주소상은 서울이고 바로 옆이 부천이다. 생활권은 부천지역을 공유하겠지. 이 동네는 길 하나 두고 한쪽은 서울이고 한쪽은 부천이고 이러겠지. 실제로도 지도를 찾아보니 그러했다.


     이걸 보면서 여러 나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유럽 대륙이 떠올랐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유명한 짤이 하나 있다. 유럽대륙에 있는 어느 집인데 무려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3국의 국경선이 겹치는 곳에 위치한 곳이란다. 그것의 하위버전 같은 느낌. 아래 기사에 나오는 곳이다.




     옛날에 살던 동네를 지나쳐서 간다. 간 김에 기름이 거의 없어서 가득 넣고 세차도 했는데 만땅 하니 딱 9만 원 나온다. 만땅은 처음 해보는거 같은데 생각보다 많이 나온거 같다. 다음부턴 안 해야지. 이제는 익숙한 길을 지나서 낯선 길로 들어선다. 네비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19살 때부터 알고 지낸 오래된 친구가 한 명 있었다. 오프라인에서 따로 만난 지는 좀 오래됐다. 그래도 책을 좋아한다거나 좋아하는 가수가 같아 관심사나 결이 비슷한 친구였고 물어볼 것도 있고 해서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코로나도 좀 잠잠해졌고 만나자고 연락을 했더니 자기가 활동하는 동호회에서 공연을 하는데 다음 달에 공연이 있다면서 공연 끝나고 보자고 한다. 공연 얘길 들었는데 또 안 간다고 할 수가 있나.


     공연장이 오류동에 있어서 서울 끄트머리지만 먼 길 헤치고 가서 공연도 보고 유료공연이라 소액이지만 돈도 냈다. 그 친구는 공연이 끝나더라도 다음 타임 공연이 있었고 아마 저녁엔 모임 사람들끼리 뒤풀이를 할 테니 공연을 보러 간 나는 사진만 찍고 그녀와는 바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나도 주말에 내 소중한 시간 내서 새로운 동네에 갔는데 공연만 보고 집으로 돌아오기는 뭐해서 이왕 온 김에 근처에서 볼만한 게 있을까 해서 찾아봤었다. 그랬더니 예전부터 가고 싶었던 항동 철길이 근처에 있었고 수목원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막상 그날은 공연만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공연이 끝나고 며칠이 지나 직접 만나자고 다시 연락을 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이 오랜만에 연락이 오는 지인/친구들에게 부담을 느끼는 이유가 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보다 실은 그 만남에 다른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아니었는데 말이지.


청첩장 전달 (X)
다단계 (X)
그냥 정말로 오랜만에 만나서 얼굴 보고 이야기 나누고 싶음 (O)


     한두 번 날짜를 맞추기 어려워하더니 결국은 방학하고 보자는 너의 최후의 말. 그래, 그게 직업이 선생님인 너의 모든 것의 방패막이가 된다. 나는 네가 겨울방학이 돼도 연락이 안 올 줄 알았고 실제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다시 새로운 학기가 된 지도 한참이 지났다.


      이 일을 계기로 나는 깨닫게 되었다.


     네가 더 이상 내 친구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너에게 나는 더 이상 직접 만나서 시간과 돈을 쓸 만큼의 친구는 아닌 거구나 하는 자각. 내가 여기서 또 만나자고 메시지를 보낸다면 만나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에게 만남을 강요하는 꼴이 되겠지. 그래서 그날을 계기로 이제는 더 이상 그 친구에게 먼저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그날의 일이 여러 가지의 터닝포인트가 되었어. 나에게 참 많은 걸 주었구나, 친구야. 먼저 서울 탐방 소재를 확실히 굳히는 계기가 되었지. 둘째로는 네 덕분에 낯선 동네를 한번 다녀왔기 때문에 오늘 용기 내서 차를 끌고 올 수 있었어. 마지막으론 결국 너와 멀어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넌 의도치 않았겠지만 말이야.



<서울탐방 제15탄 : 푸른 수목원과 항동 철길 (하)>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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