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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Mar 21. 2021

팀장님께 폭탄발언 : 저 주 35시간제 할래요 (1)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 앞서


     ‘연봉을 조금 깎더라도 내년에 주 35시간으로 연봉 계약을 체결하면 어떨까?’라는 엉뚱한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은 어느 소개팅 때문이었다. 결론적으로 소개팅은 잘 되지 않았고 그 사람과는 딱 한 번 만났을 뿐이었는데 거기서 이런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니 인생 참 재밌다. 소개팅남은 대기업 OOO 계열사에 근무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출근은 9시에 하는 거 같은데 퇴근은 6시가 되기 전에 하는 거 같아 앞뒤가 안 맞는 거 같다고 생각했다. 의아해서 물어봤더니 회사가 주 35시간제를 하고 있어 그렇다고 했다. 


     당시에는 ‘부럽네요’하고 말았는데 나중에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그 OOO 계열사는 2018년부터 주 35시간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했다. 소개팅 직후엔 소개팅이 잘 되지 않아 기분이 상했기에 소개팅의 기억을 가능하면 떠올리지 않으려고 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소개팅의 기억이 나에게 감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을 때쯤이 되어서야 서서히 수면 위에서 떠오르듯 그 생각이 퍼뜩 떠오른 거였다. 






     나는 해외에서 살아보진 않았지만 최근 4년 동안 일 년 치 휴가를 거의 몰아 써서 1년에 한 번씩 유럽에 길게 여행을 갔었다. 그때마다 느꼈던 게 유럽의 마트 영업시간은 참 짧다는 사실이었다. 네덜란드였나, 정확히 어느 나라인지 기억이 안 나는데 그곳은 일요일에 많은 가게가 문을 열지 않는다 했고 대부분의 마트는 평일 저녁 7,8시면 문을 닫았다. 그래서 생각했다. ‘이 나라 사람들은 도대체 퇴근하고 언제 장을 보지?’ 


     유럽은 일반적으로 주 30시간제나 주 35시간제 근무를 하고 있어 퇴근시간이 우리나라보다 빨랐기에 애초에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9시 출근이 일반적인데 반해 유럽 쪽은 8시나 혹은 더 이른 시간에 출근하는 곳들도 있는 거 같았다. 거기에다 주 35시간제를 하면 주 40시간제에 비해 하루에 1시간을 빨리 퇴근하니 마트가 우리나라에 비해 문을 빨리 닫아도 별 문제가 없는 것이었다. 


     2019년에 오스트리아에 갔을 때  잘츠부르크 근처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했었다. 무사히 착륙하고 나서 패러글라이딩 장비를 짊어지고 동네 입구까지 내려오면서 자연스레 나를 태워준 패러글라이더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보통 이럴 때 오가는 대화란 어떻게 여행을 오게 되었느냐, 어디가 좋았느냐 같은 상투적인 것들을 묻고 대답하곤 하기에 별 거 아닌 대화를 나눴다고 생각했는데도 이상하게 그 대화가 계속 기억에 남았다.


     그때의 대화도 그런 패턴으로 흘러갔다. 나는 내 업무 특성상 휴가를 길게 낼 수 있는 게 최대 2주라 이번에도 그렇게 휴가를 내고 왔고 이 마을이 너무 조용하고 한적하고 분위기가 좋아서 이런 곳에 사는 당신이 너무 부럽다고 했다. 그랬더니 오스트리아는 휴가가 일 년에 20일부터 시작한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법정휴가가 일 년에 15일부터 시작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못 쓰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휴가를 이렇게 2주씩 붙여서 쓰게 된 건 지금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부터니까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그 전에는 업무 문제도 있고 이렇게 길게 휴가 가는 분위기가 아니어서 하루, 이틀 짧게 쉬거나 길어도 1주일 정도 쉬곤 했었다. 


     지금 회사에 들어오고 나서 그다음 해 추석 연휴가 월 중순에 걸쳐 있어 약간 미친 척하고 며칠 더 휴가를 붙여 쓰면 약 2주를 쉴 수 있었다. 그렇게 휴가를 내서 대학교 졸업 직전에 갔던 첫 유럽여행 이후 두 번째 유럽여행을 떠날 수 있었는데 그 기억이 너무 좋았다. 업무로부터, 사람들로부터 그 모든 연결로부터 단절된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내가 무슨 자연인이나 대단한 여행가처럼 오지를 여행하고 탐험하고 그런 게 아니라 그저 유럽의 대도시들 또 거기서 유명한 관광지들을 다녔을 뿐인 지극히 평범한 여행이었지만 오로지 여행자로서 서울과는 다른 풍경을 보며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그 느낌이 좋았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만 생각하는 삶. 오늘은 어딜 가서 뭘 보고, 뭘 먹을까. 심심찮게 들리는 모국어는 별로 반갑지 않았다. 낯선 언어들이 떠도는 도시에서 그저 모르는 언어를 배경음악 같이 들으며 그저 걷고, 어딘가를 보고, 바람을 느끼고 그런 것들이 참 좋았다. 그래서 그 뒤로는 길게 휴가를 붙여서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래서 최근 오스트리아 여행의 기억과 주 35시간제를 시행하는 기업에 다닌다는 소개팅남의 사례가 섞이면서 돈을 덜 벌어도 좋으니 주 35시간만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만 갔다. 현재 다니는 회사는 시차 출퇴근제를 시행하고 있어 출근하고 9시간 뒤가 정식 퇴근시간이다. 나는 아홉 시 반에 출근하고 있어서 여섯 시 반이 정시퇴근이 된다. 하지만 정시퇴근을 하고 집까지 부지런히 가도 길도 막히고,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한 시간 혹은 한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가서 후딱 씻고 엄마가 차려 놓은 저녁을 먹고 나면 여덟 시 반 정도가 되고 부지런 떨어서 운동을 나갔다 들어오면 열 시. 씻고 정리하고 나면 열 시 반이나 열한 시 정도가 된다. 


     그러면 24시간으로 이루어진 하루 중 나에게 온전히 주어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시간은 딱 한 시간 정도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거나 혹은 외국어 공부를 할 수 있는 그런 시간 말이다. 그리고 내일을 위해선 적어도 열두 시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하니 오직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이 한 시간 정도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 마저도 지금 내가 집안일 같은 건 하나도 하지 않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엄마, 사랑합니다. 짜증 안 내도록 노력할게요...)

 

     이런 상황에서 하루에 딱 한 시간만 일찍 퇴근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누군가는 이런 나에게 새벽에 일찍 일어나 시간을 확보하거나 이동시간에 무언가를 하라, 잠자는 시간을 줄여라 등 충고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패러글라이더와의 대화 이후,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도 계속 머릿속으로는 ‘내가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라는 생각만이 맴돌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일하는 ‘절대적인’ 시간을 줄어야 한다였다. 그래서 이런 모든 계산을 하고 나니 주 35시간제를 하는 회사로 이직하는 것보다(게다가 그런 회사가 많지 않다) 일단 지금 다니는 곳에 근무 시간 조정을 건의해보면 어떨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던 거다. 물론 어려운 것임을 알고 있다. 이건 나 혼자만의 문제도 아니고 같은 팀에서 일하는 동료와의 형평성, 다른 팀원들과의 협업 문제 등 여러 가지가 걸려 있으니까. 하지만 말을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기에 말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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