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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Mar 27. 2021

팀장님께 폭탄발언 : 저 주 35시간제 할래요 (2)

팀장님께 주 35시간 제로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팀장님께 폭탄발언 : 저 주 35시간제 할래요 (1)'에서 이어집니다. 



    2020년 상반기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 5월 중순 무렵, 팀장님과 점심을 먹으며 약식 중간 면담을 했다. 중간 면담이라고 해서 회의실에 앉아 평가표를 들고 무거운 분위기에서 이야기한 것은 아니었다. 팀장님께선 나가서 점심이나 한 끼 맛있는 거 먹으며 얘기나 하자고 하셨다. 식사 자리에 가서 음식이 나오기 전, 나에게 꿈이 뭐냐고 물으셨는데 별다른 꿈이 없는 나는 대답을 바로 하지 못했다. 그러자 본인이 먼저 얘길 꺼내셨는데 지금 하는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미래의 개인적인 꿈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이야기를 듣고 나니 나도 편하게 내 생각을, 내 마음속에 담아둔 솔직한 심정을 꺼낼 수 있었다.



"팀장님, 저는 일하면서 CFO가 되겠다던가 그런 꿈은 없어요.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일하고, 야근은 마감 같이 어쩔 수 없을 때만 하고..
그러니까 정말 딱 일하는 시간에만 열심히 일했으면 좋겠어요.



     이게 중간 면담 하자는 상사에게 할 소린가? 싶으면서도 말문이 한번 터지니 에라 모르겠다 싶어 말이 술술 흘러나왔다. 지금 팀장님은 작년 초까지 같이 일하던 상사가 이직하고 새로 들어오신 분이라 같이 일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하지만 팀장님이 솔직한 편이고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셔서 그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기에 내가 이런 말을 해도 그런 걸로 날 질타할 분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왕 이야기가 이렇게 된 마당에 중간 면담 때 주 35시간 근무를 화제로 꺼냈으면 흐름이 자연스러웠을 것 같다. 그런데 그때는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주 35시간제 근무'라는 화제는 중간 면담 때 했던 말보다 더 예상치 못하고 센(?) 말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팀장님이라면 어떻게든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답을 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나도 다른 사람한테 라면 하지 못했을 말을 할 용기가 생긴 것이다. 그리고 이제 아이디어가 구체적으로 정리된 이상 말을 꺼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사팀에 물어볼까 하다가 그래도 팀장님에게 먼저 물어보는 게 순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상반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이 6월이니까 꼭 6월 중에는 말씀을 드려야겠다고 결심했다. 팀장님과 둘이 따로 있게 되는 시간이 나지 않으면 팀장님을 회의실로 불러내서라도 얘기를 꺼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6월이 되고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6월 초에서 6월 중순이 되고, 그동안 팀장님과 자연스럽게 둘만 있는 타이밍도 없었다. 그래서 6월 중에 이 화제를 꼭 꺼내야지 했던 초반의 강한 결심도 서서히 약해지고 있었다. 


     그러던 6월 중순의 어느 날, 오전에 팀장님과 다른 팀과 하는 회의에 참석했는데 회의가 끝나고 나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라 다른 팀원들은 전부 밥을 먹으러 가서 팀에서 남은 건 나와 팀장님 밖에 없었다. 밥이나 먹으러 가실까요?


    점심을 먹으러 가서 이런저런 얘길 하다가 음식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 허겁지겁 음식을 먹었다. 음식이 먼저 나온 내가 음식을 먼저 다 먹은 상태여서 팀장님이 다 드시길 기다리고 있다가 불현듯 그 생각이 났다. 지금 팀장님과 딱 둘이 있고, 아직 6월이고, 내가 생각했던 그 아이디어는 아직까지 말하지 않았으니 이제는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운을 띄웠다.


"저 팀장님, 이게 밥 먹다가 할 얘기인지는 모르겠는데… 지난달에 중간 면담했을 때 했을 법한 이야기인데 이게 늦게 좀 생각이 나서요. 말씀드려도 될까요?”


“응, 그래. 말해봐.”                                   


“팀장님, 주 35시간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금 저희 연봉계약서 보면 주 40시간 근무하는 것으로 연봉이 책정되어 있잖아요. 만약 제가 주 35시간 근무하는 것으로 연봉계약서를 수정하고 급여를 깎는다면 어떨까요? 물론 주어진 업무는 그 시간에 맞춰서 다 할 거예요.


팀장님은 밥 먹다 놀라셨는지 잠시 머뭇거리다 말씀하셨다.


"일단 좀 당황스럽네. 그렇지만 OO 씨(나)가 평소에 야근하는 시간을 가능한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성향이라는 걸 고려해봤을 때 그리고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주 35시간제는 참 좋은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내후년에 OO 씨는 다음 직급 승진 대상자이고, 아무래도 회사 내에서 직급이 올라가다 보면 일하는 시간을 줄인다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워. 그러니까 예를 들면 중요한 회의가 있으면 그런 자리에도 꼭 참석해야 하고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일하는 직장인이 어느 정도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일을 잘한다는 인식, 일을 열심히 한다는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야.


그리고 만약 근무시간을 줄였는데 일을 조금이라도 못하거나 실수가 나면 그걸 빌미로 공격을 받을 수도 있어. 그렇기에 근무시간을 줄이면 주 40시간으로 일할 때보다 더 잘해야 하고 더 성과를 내야 하지. 하지만 문제 제기는 정말 잘했고 이걸 당장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팀 내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해보자."


     팀장님은 어떠셨을지 모르겠다. 아마 생각지도 못한 갑작스러운 질문에 많이 놀라셨을 것이다. 이 주제로 더 길게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을까 아니면 얼른 이야기를 끝내고 그 자리에서 도망가고 싶으셨을까? 


     나는 내가 이 말을 갑작스럽게 꺼내게 된 배경과 상황 설명을 하면서 팀장님의 이해를 돕고 더 폭넓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팀장님께선 점심 식사 직후에 다른 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바람에 빨리 점심 식사를 마무리짓고 사무실로 돌아가야 했다. 그리고 아마 이 깜짝 질문에 대해 충분하게 생각해볼 시간도 필요하셨을 거라고 생각한다. 일단 이야기는 여기서 중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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