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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팀장님에게 팀장 '제의'를 받다 (1)

주의 : 아직 팀장 된 거 아님

by 세니seny
어제, 팀장님이 퇴사하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멍했다.


어디로 이직하시는지, 왜 이직하게 되었는지(하지만 사유는 묻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와 같은 것들도 물어보지 못한 채로 이야기를 끝냈다. 다음날은 반차내고 오후에 출근했는데 다른 팀원들한테도 이야기를 한 건지 만 건지 알 수가 없어 일단 가만히 있었다.




오후엔 팀장님이 계속 자리에 안 계셨다. 퇴근할 시간이 다 되어서야 자리로 돌아오셨길래 그제야 업무 관련 보고를 마쳤다. 그러고 나니 따로 할 말이 있다고 회의실로 가자고 하신다. 나에게 할 말이란 게 뭘까? 어제 중요한 얘긴 다 하신 거 같은데.


회의실에 들어갔다. 오늘 오전에 다른 팀원들도 각각 불러서 이야기를 했고 본부장님께도 어제저녁에 말씀드렸다고 했다. 회사에서는 당연히 붙잡을 테지만 이미 말이 나왔다는 건 옮길 회사랑 얘기가 다 끝났다는 거다. 무엇보다 회유를 한다고 돌아올 팀장님도 아니다. 돈도 문제일 수 있겠지만 조직구조나 업무 자체를 바꿀 수 없다면 더 이상 이 회사에서 팀장님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봐야 한다. 아직 대표이사님 귀까지는 안 들어간 모양이지만.


팀장님은 본인이 나간 뒤 그 자리에 나와 나이 차이 얼마 나지 않을 새로운 팀장이 오는 거보단 기존에 있는 직원이 위로 올라가야 사기 진작도 되고 조직 구조 상 좋지 않겠냐고 운을 뗐다. 그러더니 내가 팀장을 할만한 역량이 있다고 생각해서 본부장님께 나를 팀장으로 임명하는 건 어떻겠냐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했다. 물론 당사자인 내 의사도 물어볼 것이라는 말과 함께.


오늘 아침에 다른 팀원들한테도 본인의 퇴사 소식을 전하면서 팀장 자리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셨다고 했다. 막내사원은 내부에서 승진해서 팀장이 되는 것도 찬성이지만 아무래도 카리스마가 넘치는 현재 팀장님과는 달리 나나 내 동료 둘 중 한 명이 팀장이 된다면 다른 팀에 휘둘릴 거 같다고 했단다.


그리고 나와 동갑인 동료한테는 나를 팀장으로 올릴 거라는 말은 빼고 내부 승진해서 누군가가 팀장을 맡는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고 한다. 난 걔가 당연히 반대할 줄 알고 있었다. 그랬더니 막내사원은 논외고 자기나 나나 팀장 할 깜은 안되니 외부에서 사람이 오는 게 좋겠다고 했단다.


난 이 지점에서 생각이 달라졌다. 분명 위에 상사가 퇴사하던 4년 전과 상사가 퇴사한다는 '상황'은 동일한테 ‘상태’는 동일하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때는 동료와 나 둘 다 10년 차가 안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경력상으로도 두 직원 모두 10년을 훌쩍 넘은 데다 지난번에 이어 또 팀장(상사) 자리가 비었는데 그 자리를 외부에서 또 데려온다?


사실 팀장님은 이렇게까지 교통정리를 하고 갈 의무는 없다. 그런데 이대로 팀장님이 퇴사하면 이 자리는 새로운 사람을 뽑아 대체되겠지. 솔직히 말해서 본부장님이 알아서 나를 팀장으로 승진시킨다? 미안하지만 그분은 이런 생각을 하실 분이 아니다. 그보다는 어설프게 나와 동료를 둘 다 공평하게 대한답시고 더 애매한 관계로 만들겠지.


난 만약 내 동료가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어서 팀장이 되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이 친구가 그럴 마음도 없거니와 이제는 대놓고 자기는 딱 자기 할 일만 할 거라고 선언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외부에서 팀장 데려오라고 하는 것도 다 자기 편하려고 그러는 거다.


어쨌거나 새로운 팀장이 와야 본부장님과의 본인 사이에 방패막이 된다. 그리고 만약 내가 팀장이 되면 나의 지시를 받는 걸 기분 나쁘게 생각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게다가 최근에 서로 사이를 좀 껄끄럽게 만든 사건도 있어서 더 신경 쓰인다. 그 사건만 아니더라도 내가 좀 더 거리낌 없이 행동할 텐데 그 일 때문에 거리낌이 많아졌다. 그래서 같은 팀에서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얘랑 가능하면 얽히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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