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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Apr 12. 2024

회사생활 : 주 4.5일제 실험

한 달에 두 번, 금요일에는 오전만 근무하기

(2023년 시점에서 쓴 글입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몇 년 전부터 한 달에 한 번, 금요일에 오전만 근무하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나는 사무직이니까 대체로 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편인데 (물론 일이 있으면 퇴근 못함) 외근직들은 혜택을 많이 못 받는다며 불평이 많다. 


     하지만 제도는 제도다. 제도가 있어야 혜택을 받고 못 받는 사람도 적어도 비슷한 다른 식의 혜택을 누리게 해 준다던지 하는 쪽으로 가게 된다. 그래서 악법도 법이다란 말이 있는 걸까? 그런데 이번에 한시적으로 몇 달간 만 이 제도를 확대해서 한 달에 두 번을 한다고 했다. 야호!





     한 달에 한 번만 일찍 퇴근할 때는... 한 달에 한 번만 있는 특별한 날이니까 꼭 무슨 일을 잡아야 할 것만 같았다. 약속을 잡는다던지 어딜 놀러 가는 것과 같이 특별한 일정을 만드는 것. 주위의 다른 직원들을 봐도 그랬다.


     그런데 이제는 한 달에 두 번이다. 그러니 너무 힘을 줄 필요도 없지 않을까? 다다음주에 한 번 더 있는데? 이 제도가 한 달에 한 번일 때는 그날 꼭 뭘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한 달에 두 번 하니까 약간 일상 같은 느낌이 든다. 꼭 뭘 특별하게 하려 들지 않아도 되는, 평상시에 밀린 일들을 하게 되는 그런 느낌.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뭘 하려고 하지 않고 그냥 주말이나 퇴근 후에 해야 되는 일들, 있는 시간 없는 시간 쪼개서 해야 하는 일들을 여유 있게 처리해 보았다.


     먼저 오프라인에서 옷 사기.


    이게 은근 시간을 잡아먹는다. 일단 옷 가게 몇 군데를 한 바퀴 돌아봐야 한다. 그러면서 여러 물건을 보고 이 가게 저 가게 비교하면서 체크한다. 이것만으로도 시간이 꽤 걸린다. 한 바퀴를 다 돌고 난 뒤, 아까 본 것들 중에서 뭘 살지 결정하면 그 가게에 가서 물건을 결제한다. 오늘은 오랜만에 이 오프라인 옷 쇼핑을 했다.


      그리고 회사에는 말하지 않았지만 잠정적으로 나와 엄마 사이에 암묵적으로 합의된 내용이 있다. 바로 내년 상반기 아니 늦어도 4월까지는 퇴사를 한다는 것. 마음은 굳혔다. 다만 그전에 몇 가지가 필요하다. 뭐랄까, 퇴사는 좋다(?). 하지만 이번 퇴사는 좀 다른 게 이직이 아닌 전직 예정이다. 지금까지 쌓은 커리어(라고 부를만한지 모르겠으나)는 이제 종이조각이 된다. 기존에 하던 일과 새로 시작하려는 일은 상관관계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둔다고 해서 그냥 단순히 이번 직장생활이 끝나는 게 아니다. 지금 여기서 그만둔다는 것은 앞으로 따라올 미래가치의 기회비용 또한 누리지 못하게 된다는 뜻이다. 직장생활자라면 매년 급여가 오르고 신용을 근거로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차를 살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놓여있다. 


     회사에서는 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따박따박 한 달에 한 번 퇴직연금을 납입해주고 있으며 숨 쉬듯 누리고 있는 건강보험 혜택은 어떻고. 그리고 회사가 가입한 단체보험을 통해 실손보험 청구도 가능한데 이런 부가적인 것들을 다 버리는 거다. 나는 커리어를 버린다고 생각하지만 커리어보단 이런 실속적인(?) 부분을 버리는 게 못내 아쉽다. 그래서 천천히 이별하는 중이다.


     다음, 두 번째로 한 일은 바로 문구점에 가는 것이었다. 


     앞으로 시작할 새로운 일을 위해서 자격증 시험을 볼 예정이다. 이미 교재 구입도 완료했고 인강도 알아봤는데 이것들을 적고 정리할 노트가 필요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크고 두꺼운 노트도 두 권 샀다.


      마지막으로 병원에 다녀왔다. 


      간 김에 독감주사도 같이 맞았다. 이것도 10월에나 맞을 수 있지 11월 지나가고 나면 주사도 재고가 없어서 맞고 싶어도 맞을 수가 없다. 독감주사를 제철에 맞으려면 굳이 아픈 곳은 없지만 이 시기를 맞춰서 병원에 가거나 평일 점심시간을 쪼개서 혹은 퇴근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칼퇴해서 병원이 문 닫기 전에 급하게 도착해야만 주사를 맞을 수 있다. 원래 토요일 오전에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있으니 오늘(금요일) 오후에 여유롭게 다녀왔다.


      그동안은 한 달에 한번 있는 특별한 날이니까 일상적인 일들을 하는 반나절이 아니라 뭐라도 만들어서 특별한 무언가를 꼭 하려고 했었다. 전시회를 가고 여행을 가고 친구를 만나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그저 일상에서 해야 하는 일들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것에 대한 만족감이 엄청나다. 문제는 한시적인 제도라 일단은 연말까지만 운영할 예정이라 하고 나는 내년 상반기에는 퇴사할 거니 아무 상관도 없어지겠지만 그래도 막상 체험해 보니 좋네. 






      주 5일 40시간, 야근을 안 하고 정시 근무만 한다고 치자. 그래도 출퇴근시간 기본 1시간 잡고 나면 집에 오면 7시가 된다. 와서 씻고 저녁 해 먹고... 그러고 나면 정작 집안일을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여유 있게 쉴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다. 요즘 '갓생'이란 말도 유행하지만 꼭 '갓생'만이 정답일까? 


     퇴근 후에 시간에 쫓기지 않고 운동도 하고, 친구도 만나고, 청소도 하고, 잠도 충분히 자고 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만한 그런 여유가 있는 사회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 사는 나도 이럴 진대 일하면서 애들까지 키우는 부모님들은 더하면 더했지. 당분간의 근 미래에는 먼 이야기겠지만 조금씩 이런 제도가 많이 확대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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