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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이탈리아에서 첫 야간열차 탑승기

팔레르모-살레르노행 야간기차 탑승기

by 세니seny

아테네에서 일주일간 머물다 두 번째 나라인 이탈리아로 넘어왔다.


오늘은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큰 도시인 팔레르모에서 저녁에 야간열차를 타고 본토로 넘어가는 날이다. 시칠리아 섬은 본토와 아주 살짝? 떨어져 있는데 어떻게 야간열차가 다니는 거냐고 한다면 기차를 분해해서 즉 따로 열차칸을 떼내서 배에다 실은 후 다시 본토 열차 길에 놓는 방식이란다.


팔레르모에서 본토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탈 수도 있고 있고 페리를 타도 된다. 사실 취소불가인 페리표를 예약해 두었는데 야간열차를 타보고 싶어서 페리를 예약한 비용을 멍청비용으로 날리면서까지 기차표를 다시 끊었다.


숙소에서 체크아웃을 했는데 체크아웃 후로는 짐을 맡아주지 않아서 역 앞에 돈을 주고 맡겼다. 오늘의 목적지는 팔레르모 근처의 작은 도시, 체팔루 당일치기. 체팔루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시간 맞춰 팔레르모에 도착해 짐도 찾고 저녁도 간단히 먹고... 나를 싣고 갈 기차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출발시간 30분 정도 전부터 가서 기다렸더니 조금 있으니까 미리 문을 열어준다. 창 밖 너머로 내 좌석 자리 번호를 봤는데 다행히 1층이었다. 보니까 내가 제일 먼저 들어왔고 침구가 3세트 인걸 보니 나 말고 두 명이 더 묵는 거 같았다.


야간열차 외부와 탑승자에게 지급되는 웰컴키트(?). (@이탈리아 팔레르모, 2024.05)


그런데 아까 승강장에서 기다릴 때부터 눈에 띄었던 이탈리아인 가족이 있었다. 아빠, 엄마, 큰 딸, 아기 등 여러 명으로 구성된 가족이었는데 그중에 엄마랑 딸이 나랑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그런데 나를 보자마자 뭐라 뭐라 한다. 이들은 영어를 1도 못했다. 나는 분명 기차 칸도 맞게 탔고 자리도 맞다는 걸 확인했기에 계속 티켓을 들이밀면서 내 자리 맞다고 하니 계속 뭐라고 한다. 대충 눈치를 보니 자리를 바꿔달라는 것 같았다.


외국인한테 잘해주지는 못할 망정 자기들 편할라고 바꿔달라고 해? 그리고 비켜달라고 말했지만 나한테 더 이상 안 통하는 거 같으면 그만해야지 계속 꿍시렁대는거다. 한참 그러고 있는데 검표원이 와서 검표를 했고 아무 문제가 없었기에 나는 뭐 에라 모르겠다, 내 자리에 침대시트를 깔고 앉을 준비를 했다.


그런데 하필 2층 좌석이 모녀 중 딸의 좌석이라 내 머리 위로 침대를 펼치니 나는 내 자리에서 허리를 세우고 제대로 앉아있기가 힘들었다. 그만큼 1층 침대와 2층 침대사이 간격이 좁았다. 그래도 나는 내 자리를 사수해야겠다.


아마 내가 쫄아서(?) 1층을 양보해 줬으면 둘이 더 오래 떠들었을 거 같은데 하는 수 없이 둘이 이불 깔고 적당히 떠들다가 2층으로 올라가더라. 딸이 진짜 심각하게 많이 뚱뚱해서 침대가 무너지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됐다.


기차는 엄청나게 흔들렸는데 그나마 1층을 선택해야 덜 흔들리고 콘센트도 1층에만 있었다. 그리고 캐리어나 다른 짐이 무거워서 위쪽에 있는 짐 칸에 올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좁지만 바닥에 둬야 했는데 침대칸이 생각보다 길어서 발밑에 자리가 남길래 거기에 뒀다. 만약 내가 2층으로 올라갔다면 이 짐 가지고 또 오르락내리락해야 돼서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이탈리아인 모녀와 함께 불편한 12시간의 동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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