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로 시칠리아 섬에서 본토로 넘어가기
화장실에 갈 준비는 미리 해뒀다. 화장 딱 지우고 이 닦고 볼 일까지 보고 와서 그 뒤로는 방에서 한 발자국도 안 나갔다. 괜히 짐 놔두고 나가는 거 불안하고. 기차 소리는 시끄러웠고 생각보다 많이 흔들렸는데 그래도 잠이 오긴 오더라. 하지만 워낙 커브 구간도 많고 흔들려서 깊게 잠들지는 못하고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기차가 안 흔들리길래 구글맵을 켜보니 시칠리아 섬 끝에 와있었다. 아마 기차 차량칸을 분리하고 옮겨 싣는 작업을 해서 멈춰 있었던 것 같다. 기차가 안 흔들릴 때 좀 자두자 싶어서 깜빡 잠에 들었다. 그러다 잠이 깨서 다시 GPS를 찍어 보니 본토로 넘어와 있었다.
그런데 이 작업에 시간이 걸리는지 한 두어 시간은 출발하지 않고 멈춰 있었다. 새벽 2시가 넘어서야 다시 출발했다. 그 뒤로는 한 시간씩 깨서 내릴 시간을 체크했다. 다행히 알람이 울리기 전에 깨서 여유 있게 준비한답시고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다녀와서 GPS를 보니 거의 다 와 있었다.
알고 보니 티켓에 나온 도착시간은 살레르노역에서 기차가 다시 출발하는 시간이었다. 보통 역에서 5~15분가량 정차하니까 내리는 시간은 실제로는 그보다 더 빠른 것이었다. 그동안 시간 계산 잘못하고 있었네. 다행히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 떤 덕에 얼른 짐을 챙겨서 문 앞에 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2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방 한가운데 놓여 있었고 하필 캐리어가 그 뒤편으로 있어서 사다리를 치워야 했는데 치우는 방법을 모르겠는 거다. 캐리어를 어떻게 뺄까 고민하고 심지어 이것 때문에 잠이 안 올 정도였는데 그냥 캐리어를 들어 올려서 침대 위로 굴려서 뺐다. 어차피 침대시트 다 갈 건데 뭐.
아침 7시도 안 돼서 새로운 도시에 도착했다.
이번에 묵는 숙소도 팔레르모처럼 개인이 운영하는 숙박업소로, 주인이 상주하는 곳이 아니어서 체크인 시간을 맞춰야 했다. 그래서 일찍 도착했는데 짐만 먼저 맡길 수 없는지 물어보니 아예 10시에 체크인을 하게 해 주겠다는 게 아닌가!
제의는 고마웠지만 난 짐만 맡아주면 되는데. 오전에 폼페이 빨리 구경하고 와서 쉬고 싶단 말이야. 결국 내가 살레르노에 도착하는 아침 7시에는 체크인이 불가능하다고. 그래서 폼페이에 이 짐을 그대로 들고 가 거기에서 맡기고 폼페이를 둘러본 다음 다시 살레르노로 돌아오기로 했다. 그러나 이 짐 때문에 고난이 시작되고 마는데...
기차역에 내려 밖으로 나왔더니 땅이 젖어 있었다. 새벽에 비가 왔나 싶었는데 이게 복선이었지 뭡니까? 아무튼 역 앞 카페에서 커피랑 빵으로 조식도 먹고 기차를 타고 폼페이에 잘 도착했다.
아침에 커피를 마셨으니 쌩쌩하다. 매표소 찾고 짐 맡기느라 여러 번 왔다 갔다 했지만 짐도 무사히 맡기고 표도 끊었다. 그 와중에 급하게 한국어 영상 가이드도 구입해서 설명도 들으면서 부지런히 구경을 했다.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