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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Sep 25. 2022

어르신들께 문자 보내는 법 알려 드리기

세대의 소통에 미미하게나마 도움되었다고 자부하는 봉사활동 체험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녔던 20년 전엔 봉사활동 점수가 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았다. 그래도 아주 기본적인 시간은 채워야 해서 친구가 아는 동네 유치원에 가서 교구를 정리하고 간단한 청소를 하는 정도로 봉사시간을 채우곤 했다. 돈을 주는 것도 아닌데 봉사활동을 하고 나면 마음이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졌었고 꾸준히 해보면 어떨까 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 대학교에 입학해서 동아리를 알아볼 때 봉사 동아리에 가입해볼까도 고민했었다. 그런데 봉사동아리는 봉사활동도 하긴 하지만 친목 성향이 강하다고 해서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을 어려워하는 나는 봉사 동아리에 가입하기가 꺼려져서 결국 다른 동아리에 가입했다. 


     그런데 3학년이나 돼서야 과 동기를 통해 '사회봉사'라는 과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점도 1학점짜리였고 교양 필수 과목도 아닌 패스/논 패스 과목이었지만 대학생 때가 아니면 언제 봉사활동을 해보겠나 싶어서 사회봉사 과목을 신청하게 되었다.


     사회봉사 과목은 정해진 수업시간이 없었다. 대신 봉사활동이 가능한 단체나 기관에 연락을 해서 직접 봉사활동할 곳을 정하고 1학기 내내 정해진 시간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면 되는 거였다. 학교에서 올려준 봉사활동 가능 단체 목록을 보다 보니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노인복지회관에서 어르신들께 문자메시지 보내는 법을 알려드리는 자원봉사자를 찾고 있다고 해서 신청을 했고 조건과 시간이 맞아 그곳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복지관에서는 이미 이런 프로그램을 여러 해 해오고 있어서 아예 간단한 교재까지 다 만들어져 있었다. 나와 다른 대학생 친구 한 명은 그 교재를 참고로 해서 어르신들이 문자를 보낼 수 있도록 알려드리는 게 주 업무였다. 어르신들은 문자 보내는 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핸드폰 사용법부터 익혀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문자를 보내려면 기본적으로 자판을 칠 줄 알아야 한다. 삼성 핸드폰을 천지인을, LG 휴대폰은 또 다른 방식의 자판을 가지고 있어서 글자를 치는 방법부터 알려 드려야 했다. 그리고 문자를 보내려면 이걸 누르고, 저걸 누르고, 또 즐겨찾기에 등록해 놓은 아들, 딸 등 연락을 하고 싶은 누군가의 연락처를 불러와야 하는지 등을 알려 드렸다.


     봉사활동은 매주 금요일에 1차례 있었고 수업도 한 번에 끝나는 건 아니었다. 이번 주에는 지난주에 했던 것도 복습하면서 다른 기능을 알려 드리기도 했기 때문에 거의 한 달 정도 수업을 했다. 수업을 들으시는 분들이 손자, 손녀나 아들과 딸에게 문자를 보내고 답장이 왔을 때 정말로 기뻐하셨다. 


     어르신들은 대부분 전화는 잘 사용하셨는데 문자는 어려워하셨다. 내가 봉사활동을 하던 2007년 당시에는 자식들과 잘 소통하려면 전화보다는 문자를 주고받는 게 중요했다. 자식들은 일하거나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 상황에서나 전화를 받을 순 없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자는 보내 놓으면 나중에라도 확인하고 답을 줄 수 있으나까 나이가 젊은 자식 세대는 문자를 더 선호했다. 또 문자를 잘 주고받을 줄 알면 평소 자주 만나기 어려운 손자 손녀와도 소통이 가능했다. 세대의 간격을 좁혀주는 일에 내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매우 기뻤다. 그렇게 첫 사회봉사 과목 수강을 기분 좋게 마쳤다.


     그리고 4학년이 된 나는 졸업을 앞두고 한 학기 휴학을 했다. 취업을 해야 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토익시험도 보고 취업준비를 한다는 이유로 마지막 학기 등록금을 내놓고 휴학을 했다. 하루 종일 토익 시험공부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아직 이력서 준비 같은 건 생각도 못했던지라 이력서에 쓸만한 활동을 하고 싶기도 했다. 

 

     취업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인턴을 해보고 싶었지만 결국 인턴 자리는 찾지 못했다. 대신 SK텔레콤에서 운영하는 대학생 봉사단체 써니Sunny에서 내가 사회봉사 과목을 수강하면서 했던 봉사활동과 똑같은 내용-어르신들에게 문자 보내는 방법 알려드리기-의 봉사활동을 할 대학생들을 모집한다고 해서 지원했고 다행히 합격했다.


     여기도 집에서 많이 멀지 않은 노인종합복지관이었다. 일정은 약 세 달 가량으로, 수업은 2차에 걸쳐 진행되었다. 사회봉사할 때는 나랑 다른 대학생 한 명 밖에 없었기 때문에 둘이서 여러 명의 어르신들을 교육해야 하는 입장이었는데 이번엔 어르신 한 명당 대학생 한 명씩 짝을 지어 1:1로 수업을 했다.


     그렇게 나는 1차 수업에서 L 어르신과 짝이 되었다. 벌써 15년 이상이 지났는데도 이 분의 성함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수업이 1차와 2차로 두 번 진행되었으니까 2차 수업에서도 분명 짝이 된 어르신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분 성함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1:1로 수업을 하다 보니 다들 짝이 된 어르신과 이야기를 하고 많이들 친해졌다. L 어르신께서는 수업이 끝나고도 그러니까 공식적인 활동이 끝나고도 나에게 문자를 보내주셨다. 수업시간에 테스트를 하기 위해 아마 내 번호를 알려 드렸던 거 같기도 하고 짝이니까 서로 번호를 저장했던 거 같다. 


     그게 2008년 가을이었다. 수업은 몇 차례 하고 끝이 났고 나는 2차 수업으로 다른 분과 또 짝이 되어서 봉사활동을 진행하고, 3개월이 지나가니 날이 추워지면서 계절도 겨울로 바뀌었고 봉사활동도 끝이 났다.


     본래 이 수업의 목적은 어르신들이 문자 보내는 방법을 배워서 주위의 가족과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받고 소통을 잘하게 돕는 게 취지였다. 그러니까 수업 중에는 연습 겸 나한테도 문자를 보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수업이 끝난 뒤에는 굳이 나한테까지 문자를 보내지 않아도 되는데 어르신은 잊지 않고 나에게도 문자를 보내주었다. 특히 새해가 될 때에는 꼭 문자를 보내주셨다. 활동이 끝나고도 몇 년 동안이나 말이다. 드문드문 문자가 오니 건강하게 잘 지내실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에게도 문자를 보내주신 어르신의 마음이 너무 감사해서 꼭 잊지 않고 답장을 해드렸다. 많은 봉사활동을 해보진 않았지만 결국 내가 많이 배우게 되는 거 같다. 나는 잘해보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데 누굴 가르치는데 소질은 없는 편이라 잘 가르쳐 드렸는지 모르겠다.


     그러다가 휴대폰의 의사소통 방식이 문자에서 카카오톡 메신저로 옮겨가기 시작했고 휴학생의 신분에서 벗어나 복학을 하고,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그렇게 사회생활에 찌들어가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어르신께 문자가 오지 않았다. 아... 이제 더 이상 나에게는 연락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아 연락처에서 빠졌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이 세상을 떠나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봉사활동이라는 게 시간을 내야 하고 지속성을 가져야 하는 행동인데 그 두 가지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 이 이후로 봉사활동은 하지 못했다.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어서 이제는 적지만 돈으로 기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직접 몸으로 부딪치는 봉사활동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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