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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니seny Sep 18. 2022

립 리딩(lip reading) 녹화 아르바이트 후기

나의 N잡 도전기는 성공했을까?

 (2021년 시점에서 쓴 글입니다.)



    한 때 크라우드웍스(https://www.crowdworks.kr/)라는 사이트를 매일매일 들여다본 적이 있다. 요즘은 본업 외에 부업 삼아 일을 하는 것을 흔히 N잡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나의 N잡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돈이 쏠쏠하게 들어오지도 않았고 내가 하고 싶어도 제약이 있어서 참여하지 못하는 프로젝트가 많았다. 그럼에도 어떤 기회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당장 큰돈은 못 벌어도 커피값 한잔이라도 벌 수 있으니까 그런 기회를 노리며 매일매일 홈페이지에 접속했던 것이다.


     그러다 립 리딩(lip reading) 지원자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다. 이 일은 약 2시간가량 카메라 앞에서 주어진 문장들을 읽고 그 화면을 녹화하면(초상권 제공에 동의 필수) 일당으로 7만 원을 준다고 했다. 나는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을 싫어하지만 연구용으로 촬영하는 영상이라 외부에 유출된다던지 하는 일에선 문제가 적을 것 같아 지원할 마음이 생겼다.


     단, 이것도 하고 싶다고 해서 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참여 가능한 시간대를 몇 개 써서 제출하고 그들 스케줄과 맞아야 확정이 되는 듯했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신청이나 해보자 했는데 연락이 와서 날짜가 정해졌다. 이번 주 내내 계속 휴가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휴가기간의 평일 중 하루를 적어냈는데 딱 이날로 잡아줬다. 휴가 중에 돈을 벌다니, 회사에 복수를 하는 느낌으로 현장에 갔다.


     프로젝트 안내 문자에 늦지 말라고 하도 강조를 해서 아예 일찍 가서 근처에서 기다렸다. 슬슬 시간이 돼서 건물로 올라갔다. 건물 안에 들어가서 손 소독도 하고, 열도 재고 개인정보 동의서 같은 서류에 싸인까지 하고 나니 조금 기다리라 했다. 어색하게 서 있는데 저쪽에 있는 녹음 부스로 들어가라고 했다.


     아, 이런 녹음 부스는 오직(ozic) 콘텐츠 녹음하러 들어갔던 딱 그것이었다. 익숙해. 그런데 그 안에서 어떤 분이 카메라 세팅을 하고 있길래 저 사람 나오면 들어가야지, 했는데 이 사람이 안 나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까 이게 5분마다 영상을 끊어서 촬영을 하면서 이게 잘 찍히고 있는지도 확인해야 해서 그 좁은 부스에 나랑 그 촬영하는 분까지 두 명이 들어가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난 대각선 쪽에 등을 대고 앉고 그분은 그 건너편에 앉아서 내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지켜보는 형태로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나니 갑자기 코로나 걸리는 거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물론 그 카메라 촬영기사는 마스크를 끼고 있지만 나는 마스크를 벗고 있는 상태에서 거의 한 시간 가량 계속 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내 뒤로 또 다음 사람이 이 부스에 들어와서 나랑 똑같은 행동을 하겠지. 이 프로젝트는 몇 달간 지속되는 프로젝트로 이미 내가 오기 한두 달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그동안 몇십 명이 이 부스를 이용했을 텐데 괜찮나? 후회막심했으나 이제 와서 안 한다고 할 수도 없었다.


     작업이 시작되었다. 내 앞에 띄워져 있는 패드에 글이 뜨는데 그걸 한 문장씩 천천히, 틀리지 말고 읽되 문장 당 3,4초 정도 간격을 두고 읽으라고 했다. 만약 틀리거나 잘못 읽으면 다시 처음부터 읽으면 된다고 했다.


     확실히 작년에 녹음 부스에서 콘텐츠를 녹음했던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때도 비슷한 디렉션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아마 무언가를 녹음해야 할 때에 꼭 필요한 디렉션인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읽어 내려가는 문장들이, 어디서 후기 같은 걸 긁어온 듯한 문장들인지 전혀 앞뒤 상관없는 문장들이 마구 섞여있어서 내용이 전혀 연결되지 않았다. 다만 그 와중에 발견한 공통점은 이 문장들이 전부 '건강'에 관련된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결과가 좋아서 어쨌다 저쨌다...
가족 중 누가 암 판정을 받았는데...
의사 선생님이... 라더라


     죄다 이런 문장들 뿐이었다. 게다가 하필 첫 페이지부터 나온 문장이 '녹내장이 걸려서 눈이 안 보일지도 모른다고 했다'였다. 나는 이 문장과 관련해서 아래와 같은 글을 쓴 적이 있다.



     그 뒤로도 계속 건강에 관련된 문장만 엄청 나왔다. 실은 나도 지난주에 건강검진을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 그런지 여기 나오는 문자들이 남 일 같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여기에 감정을 실어서 읽을 필요는 없었기에 정신을 집중해서 또박또박 읽으려 노력했다.


     그 좁은 녹음 부스 안에서 아르바이트비 7만 원에 눈이 멀어서 그보다 더 큰 시간과 비용을 지출하는 코로나에 걸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과 각종 병명과 병이 어쩌고, 건강이 어쩌고 하는 문장들을 물이 졸졸졸 흐르는 배경음악과 함께 틀리지 않게 긴장하면서 읽고 있는 이런 상황에 놓여있는 내가 너무 어이 없었다.


     나도 나지만 마스크 끼고 하루 종일 녹음 부스에 앉아서 녹음 시간에 맞춰 체크하고 카메라 확인하고 있는 저 촬영기사 분도 참 힘들어보였다. 차라리 하나의 책을 읽는 거라면 문장이 연결되어서 이야기가 되는데 이건 계속 말도 안 되는 토막 난 문장들의 향연을 듣고 있어야 하니까. 나중엔 아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지려나?




     재밌는 경험이었다. 그리고 우연찮게 참여했던 오직 콘텐츠 제작의 경험이 여기서 도움이 될지 몰랐다. 그러니 이 경험도 언젠가 다른 데서 쓸모가 있지 않을까?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코로나에 걸릴까 조마조마했지만 다행히 코로나는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 뒤로 N잡을 하겠답시고 크라우드웍스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조건에 맞는 일을 찾는 것은 그만두었다. 이렇게 자잘하게 N잡을 해서 수입을 늘릴 생각보다는 본래 하던 일을 열심히 해서 몸값을 올리거나 그 시간에 다른 공부를 하는 게 더 낫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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