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를 피해 온 것만으로도 이곳은 천국, 론다
오늘은 6월 1일이다, 6월 1일. 나의 최애, 유월.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유월은 아마 서울의 유월에 한정된 것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외국에서 장기체류를 하면서 깨달았다. 왜냐? 내가 좋아하는 유월은 서울의 날씨와 분위기를 포함하고 있고 나는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현재 스페인 체류 중. 5월 말에 체류했던 스페인 북부 쪽은 그나마 서울과 온도는 비슷한 거 같지만 뭐랄까… 거리의 풍경과 직접 느끼는 온도는 또 다르다.
그리고 유월로 들어선 현재는 스페인 남부. 달력 상으론 6월이지만 서울의 8월 느낌이 난다. 그러니 더 이상 내가 좋아하는 유월이 아니게 된 거다. 올해 서울의 유월을 2/3 이상 놓치게 된 나. 분하다 분해. 하지만 나는 오늘도 길을 나선다.
론다까지는 세비야에서 버스로 두 시간 거리다. 어제에 이어 근교로 나가는 게 부담은 되지만 어제보다 이동거리도 짧고 론다에 가서 빡세게 돌아다닐 것도 아니다. 그리고 어제와는 달리 체류시간이 짧아서 숙소가 있는 세비야에 돌아와도 저녁 8시라 시간 여유가 있다.
버스에서 다음 행선지가 될 마드리드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다가 졸려서 잠들었는데 곧 내릴 때다. 빨리 오네.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버스 내려서 걷기 시작한다. 일단 누에보 다리로 가기로 했다.
스페인 여행을 하다 보면 온갖 장소마다 누에보Nuevo라는 단어를 만나게 된다. 누에보 광장, 누에보 다리 등. 이게 스페인어로 new에 해당하는 단어라고. 그리고 아이유가 여기 론다에서 사진을 찍어서 유명해졌다는 스폿이 있는데 그 장소는 다리 위에서 한 20분 정도 걸어 내려가야 된다고 해서 바로 포기하고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기로 했다.
골목골목을 걸어 구시가지 중심가로 가는데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하다 못해 약간 쌀쌀하게 느껴진다. 세비야에 있었으면 절대 못 느낄 감성. 좋다 좋아. 쾌적해.
누에보 다리 위 그리고 다리를 건너와서 한 번 더 바라본다. 다리는 참 멋있긴 한데 론다는 이게 전부인 느낌. 점심을 간단히 먹고 돌아다닌 다음에 낮에 간식 사 먹고 천천히 시간을 보내야지.
점심을 먹기 위해 아까 오다가 본, 오픈도 전에 줄 서있던 가게에 가봤는데 그새 꽉 차고 줄 서고 난리가 났다. 아무래도 빨리 줄이 빨리 줄어들 조짐이 안 보여서 구글맵으로 다른 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왔던 길로 되돌아가야 했지만 심지어 메인로드에서 벗어난 곳인데 여기도 벌써 사람들이 많이 앉아 있었다. 눈치껏 혼자 밖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서버하고 눈이 마주치자마자 미리 본 메뉴로 후다닥 시켰다. 타파스를 2개 시킬까 3개 시킬까 고민했는데 좀 모자라게 시키는 게 좋을 거 같아 두 개 시키고 마실 걸로는 역시 띤또 데 베라노를 시켰다. 1일 1띤또 하는 중.
타파스 2개는 양이 딱 적당했다. 하나는 소시지가 들어간 작은 모닝빵 사이즈의 햄버거 그리고 나머지는 구운 염소치즈 위에 딸기잼을 얹은 메뉴였는데 이것도 맛있었다. 하나 더 시킬까 하다 참았는데 배 터지게 먹고 올 걸 후회된다. 지금 생각하니 별거 아닌 거 같아도 한국에서는 염소치즈 같은 건 먹을 수 없단 말이다.
유럽은 유료라도 화장실이 있으면 다행이고 애초에 화장실 자체가 잘 없다. 그러니 가게에 들르면 반드시 화장실에 들르는 게 좋다. 잘 먹고 야무지게 화장실까지 들르고 다시 시내로 들어왔다. 가다 보니 완전 쇼핑거리를 지나가게 돼서 지나가는 김에 여행용 다이어리에 붙일 엽서를 샀다. 이제 기념품을 샀으니 다른 가게는 들어갈 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