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에서 갑자기 손에 피가 나기 시작했다
201X 년의 어느 날의 일기.
퇴근하고 수영장에 들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쪽 어깨엔 가방을 메고, 한쪽 손엔 수영가방을 들고 폴짝 뛰어 버스에 오른다. 다행이다. 배도 고팠고, 이 많은 짐을 들고 언제 서서 버스 기다리나 했는데 말이다. 자리가 애매하게 있다. 다리가 아픈 것보다도 짐이 무거워서 버스 기사님 바로 뒷자리에 짐만 덩그러니 올려놓고 자리에 앉지 않은 채로 차가 출발했다. 나는 그때 뭔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음 정류장에 버스가 멈춘다. 순간, 나는 통증을 느꼈다.
뭐지? 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는데 정확히 내 손에서 시뻘겋게 피가 솟아오르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손이 찔려서 다칠만한 뾰족한 것이 없었다. 기사님이 버스를 급정거시키면서 어딘가에 부딪히거나 찔린 걸 텐데... 도대체 어디서 찔린 건지 알 수가 없다. 웬만하면 그대로 두려고 했는데 피가 점점 뿜어져 나오는 느낌.
이러다 피가 내 손을 뒤덮고 곧이어 퇴근길이 한참 지난 시각이지만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듬성듬성 실려있는 이 시내버스와 온 지구를 뒤덮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상상에 휩싸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버스는 신호를 받고 다시 출발했다.
휴지나 손수건으로 피를 좀 닦아내고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휴지 한 조가리도 가방에 없다. 어쩌지, 어쩌지를 속으로 연발하다 생각난 것.
수영할 때는 화장을 지우고 들어가야 해서 수영가방엔 수영용품뿐만 아니라 클렌징 도구 및 제품도 들어 있다. 그러니 화장을 지우기 위해 넣어둔 화장솜이 수영가방 안에 있다. 게다가 항상 여유분을 넣어두니 오늘 화장을 지우고도 남은 게 있을 것이 분명했다.
가뜩이나 한쪽 손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데 짐은 왜 이리도 많은지. 겨우겨우 가방을 뒤져 화장솜을 찾아낸다. 화장솜으로 피가 나는 부위를 꾹 누르고 감싸주니 통증이 잦아드는 거 같다. 시간이 조금 지나 화장솜을 떼어내니 그렇게 선명했던 붉은 피가 아닌 검푸르딩딩하게 변한 피가 묻어있었다. 피는 이제 조금씩만 솟아오르고 있었다.
피는 좀 잦아들었지만 살점이 떨어져 나갈 만한 상처였다. 이게 대체 어디다 부딪혀서 생긴 상처일까? 가만 보니 내가 내 오른손으로 왼손을 찔러 낸 상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물론 버스가 급정거하면서 그런 것이니 고의로 그런 건 아니었겠지만.
내가 나를 해치다니. 원래 피를 보고도 그렇게 놀라는 편이 아닌데 그 생각을 하니 섬찟했다. 예전에 방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내가 저 칼에 찔려 죽으면 인생 끝나는 거겠구나'라고 생각했던 그때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도대체 나는 왜 고작 이 작은 상처 하나에 그 옛날의 공포심까지 되살려내며 중압감을 느꼈던 걸까? 정말 내가 내 손으로 내 살점을 떨어뜨린 게 맞는 걸까? 그저 상상력이 너무 풍부하기 때문일까?
어둑한 저녁, 버스에서 내리기 전까지 각종 의문을 곱씹었다. 그렇게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왔다. 이상하게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서, 잊은 줄만 알았던 어떤 공포감을 다시 느끼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