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좀 설쳤지만 베르시 지구 산책하기
파리 여행 마지막 날.
간밤은 잠을 엄청 설치고 그래도 체크아웃은 해야 하니까 움직이기 시작했다. 밤새 코를 곤 범인은 내 침대 2층 바로 건너편 인도 국적으로 추정되는 외모의 여행자새끼였다. 죽여버려 진짜. 사람이 잠을 제대로 못 자니까 바로 나쁜 말이 튀어나오더라.
혼성룸에서 묵었는데 남자애들이 많아서인지 샤워실은 붐비지 않았다. 나도 후딱 씻고 나와서 준비하고 바지런히 클라우드에 사진 업로드도 마쳤다. 장기여행 중에는 핸드폰에 사진과 동영상이 쌓이기 때문에 중간중간 클라우드에 업로드하면서 용량을 관리해야 한다.
숙소 로비에 내려와서 체크아웃을 하고 커피 마시려고 처음으로 라운지를 가봤는데 정말 괜찮다. 한국 감성으로 깔끔한 느낌. 차라리 어젯밤에 여기 와서 잘 걸 그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잤더니 정말 별 생각을 다 한다.
커피 한 잔 타먹으면서 사진 업로드 마저 하고 휴식을 취하다 일어섰다. 숙소에 있다는 루프탑은 안 가봤는데 여기도 괜찮을 것 같다. 어젯밤에 방에서 코 고는 놈새끼만 아니었다면 여기는 만점으로 남았을 텐데. 그나마 시설이 좋아서 코 고는 놈과 함께 숙박했다는 단점을 커버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매우 좋았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계속 흐린 날씨나 비 표시가 있어서 날씨는 포기하고 있었다. 물론 중간에 소나기가 온 적은 있지만 다행히 그때마다 우산이 있거나 잘 피해 가서 폼페이 때처럼 당하진 않았다. 진짜 나한테는 그날이 인생 재난이었다.
교통패스가 있으면 편하게 갈 수 있지만 걷고자 하면 또 걸을 수 있는 거리. 교통 위클리 패스가 어제 날짜로 끝나는 바람에 오늘은 강제로 걷게 되었다.
오늘 여행할 베르시 구역은 중심지에서는 살짝 떨어진 곳이라 굳이 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고 한다. 나는 시간이 남기도 했고 강 건너에 파리국립도서관이 있어서 원래 여기 묶어서 같이 오려고 온 거였다. 비록 오늘이 공휴인인 줄 모르고 잡은 거라 도서관은 오늘 쉬어서 미리 부랴부랴 왔다 갔기에 오늘은 베르시 지구만 여유롭게 돌아보면 된다.
우리나라로 치면 아파트 같은 공동주택들이 여러 개 있는 조용한 주거지역 같다. 주거지역을 지나 천천히 걸어서 베르시 빌리지(우리나라로 치면 약간 아웃렛 거리 같은 느낌)에 왔다. 이제 상가들이 서서히 문을 여는 느낌. 여기 한식집이 있길래 점심을 먹고 근처 베르시 공원에서 오후에 휴식을 취하고 마지막으로 근처 영화관에서 프랑스어 영화를 보기로 했다.
프랑스는 일본과 매우 비슷하게 더빙 영화가 대부분이라 자막 영화를 보기가 어렵다. 개중에 시간대도 맞고 애니메이션이 그나마 내 수준에 볼 만할 거 같아 골랐다. 더빙밖에 없어서 이걸 골랐는데 보다 자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점심시간까지 시간이 남아서 뭘 할까 하다가… 바로 앞에 가게가 있길래 들어가 봤다.
각종 오일, 등산용품, 식품, 책, 아기들 장난감, 작은 테라리움 등 다양한 제품이 있었는데 가격대는 좀 있었다. 라이프스타일 편집샵 같은 느낌이랄까. 도서 코너에 만화로 배우는 한국어라는 책이 있어서 펼쳐봤는데 프랑스어랑 한국어랑 같이 나와있으니 할 만하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는 프랑스인이 이 책 한 권 가지고 바로 배우기에는 좀 어렵겠다 싶었다. 오히려 나는 재밌게 읽었고 그렇게 이것저것 구경하고 났더니 한 시간이 훌쩍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