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2. 핸드폰 요금제 바꾸기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선 고정비부터 줄여야 한다

by 세니seny

첫 스마트폰을 쓴 건 2012년이니 그로부터 10년이 넘게 흘렀다. 그보다 핸드폰을 제일 처음으로 샀던 건 2002년이니까 그것도 20년이 훌쩍 넘었다. 흑백 핸드폰에서 칼라폰으로, 폴더폰에서 슬라이드로 그리고 스마트폰까지. 가운데 네이트 버튼 잘못 누르면 전화요금 후덜덜하게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고요. (이거 공감하는 분들은 내 동년배들이다 크크)




그러다 해외여행이라도 갈라치면 그래도 불안하니 로밍은 해가지만 요금이 매우 비싸서 통화는 어려웠다. 정말 필요한 순간이(위험하거나 숙소와 연락이 안 될 때와 같이) 있을까 봐 비싸도 일단 로밍을 하기는 했던 거다. 문자도 겨우겨우 하루에 한 통 정도, 잘 살아있음을 알리기 위해 보냈다.


지도 어플? 그런 게 어딨담? 당연히 여행책자에 달린 종이로 된 지도가 진짜 지도였지. 길 헤매기는 해외여행의 기본 옵션이며 낯선 사람들한테 길 물어서 길 알아내기 기술 또한 마스터해야 하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세상이 편해졌다. 이제는 스마트폰을 들고 데이터 요금제에 가입만 하면 데이터를 펑펑 쓸 수 있다. 유심칩을 사서 끼우면 똑같이 해외에서도 사용 가능하다. 나는 부자는 아니지만 스마트폰을 처음 사던 시절부터 이상하게 데이터만큼은 쪼들리면서 살고 싶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나온 지 얼마 안 됐던 시절 한 친구는 그랬다. 자기는 핸드폰 요금을 아끼기 위해 데이터 용량이 적은 요금제를 쓰면서 최대한 와이파이를 쓴다고.


그런데 나는 돈을 아끼는 편인데도 이런 데서 아끼면서 스트레스받기는 싫었다. 이상하게 데이터만큼은 펑펑 쓰고 싶었다. 내가 노래 듣고 싶을 때 듣고, 영상 보고 싶을 때 마음껏 보고, 길을 찾아야 할 때는 데이터 걱정하지 않고 편하게 길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항상 데이터만큼은 무제한 요금제나 혹은 무제한에 상응하는 요금제를 썼었다. 그 원칙은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었다.


올해 초 핸드폰을 바꿨는데 그걸 몰랐다. 요즘 나오는 폰은 대부분 5G 전용 기계라는 사실을. 이제 5G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LTE 요금제에서 빠져나와야 했다. 이걸 미리 알았더라면 핸드폰 바꾸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했을 수도 있을 텐데. 솔직히 5G라고 해서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진 것 같지도 않은데 5G 요금제는 LTE요금제보다 기본요금이 미묘하게 비싸게 설정되어 있었다.


게다가 나는 기계를 보통 일시불로 사버리기 때문에 핸드폰 요금은 순수 사용요금만 내는 편이라 핸드폰 요금이 보통 부담 되지 않는다. 그런데 홈 프로텍터? 새 앞날 준비위원? 쉽게 말하자면 일명 무직자가 되고 보니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다. 내가 생활비를 좀 넉넉하게 잡았으면 좋았을 텐데 좀 타이트하게 생각했는지 첫 달부터 정해놓은 생활비 금액의 예산을 초과했다.


결국 줄여야 하는 것은 고정비다. 그렇다고 보험을 납입중지 할 수는 없기에 고정비 중 손댈 수 있는 건 핸드폰 요금 고작 하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데이터 사용량이 적은 요금제로 갈아타게 됐다. 그것도 가장 싼 요금제로 하려고 했는데 약정 때문에 얼마 이하 요금제를 쓰면 위약금을 문다고 해서 두 번째로 저렴한 요금제를 선택했다. 겨우 만원 아끼자고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지금의 나는 만원 한 장도 소중하니까 어쩔 수 없다.


오늘은 오랜만에 외출이 있는 날이었다. 그런데 보조 배터리를 안 가지고 나갔다. 심지어 데이터 용량이 아슬아슬하다 했는데 (곧 월말이긴 함) 기본데이터를 전부 소진했다는 문자가 왔다. 물론 기본데이터 소진 이후에도 아주 느린 속도로 사용할 수는 있으나 매우 답답하다.


유튜브 썸네일이 안 보이고 광고화면도 가끔씩 멈춘다. 버스노선 검색을 위해 네이버 지도를 검색하는데 속도도 영 느리고... 이거 되는 거 맞겠지? 오늘 처음 이동하는 곳이 있어서 지도 앱 없으면 아무 데도 못 간다. 길도 모르고 버스 기다리는 시간도 모르고 심지어 환승도 해야 되는데 큰일 났다.

그러다 사건은 도서관에서 일어났다. 실컷 대출할 책을 다 고르고 대출기계 앞으로 갔다. 이제 회원카드만 꺼내서 셀프로 대출처리를 하면 된다. 그런데 최근엔 모바일 앱으로도 회원카드 바코드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실물 도서관 회원 카드는 안 가지고 다닌 지 오래됐다.


그런데 앱에 접속했는데 어라? 하얀 화면이다. 그야말로 먹통. 아무것도 안 뜨는. 심지어 배터리는 이제 29퍼센트밖에 안 남았다. 똥줄타기 시작한다. 이게 데이터가 없어서 이러는구나. 나 망했네? 어제 간 도서관에서 일부러 책 안 빌리고 오늘 여기로 온 건데 책 빌리러 다시 와야 되네?


그래도 혹시 몰라 앱을 다시 켠 후 조금 기다리니 화면이 뜨긴 뜨는데 회원인증을 다시 하라는 메시지. 아오 이 쓰레기 같은 서울 뭐 어쩌고 앱 같으니라고. 업데이트를 할 때마다 회원인증을 새로 하라고 뜨는데 그게 하필 오늘 지금 딱 걸린 거다. 어찌어찌 느리지만 인증을 마치고 무사히 책 빌리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집에 왔더니 배터리는 14퍼센트 남았다.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데이터에 허덕이며 살 것인가. 요즘은 데이터를 많이 쓰는 것도 그러니까 컴퓨터를 많이 쓰고 심지어 인터넷에 글 남기고 사진 남기고 하는 것도 알고 보면 환경오염의 원인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왜냐면 이게 컴퓨터나 데이터를 많이 쓰면 데이터 센터에서 열이 엄청 나와서 열을 식혀야 하는데 그러려면 또 다른 열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게 악순환이란다. 그러다 결국 지구가 더워지는 거라고 유튜브 어딘가에서 본 것 같다.


그래, 환경보호 한다 생각하자. 핸드폰은 잠시 내려놓고 작은 책으로 나온 포켓북으로 중국어 단어공부라도 하고 버스를 타면 창 밖의 하늘도 쳐다보자.


그래도 나는 이제 데이터와는 떨어져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다. 얼른 취직해서 데이터 요금제를 다시 무제한으로 바꾸는 날이 오기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 물 사러 슈퍼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