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1월의 기록 : 서울 속 작은 미국, 용산공원 부분개방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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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최근 나온 노리플라이 신보를 듣기로 했다. 이번 달 말에 공연이 있어서 예매를 했는데 그래도 공연 가기 전에 무슨 노래인지는 알고 가야 하니 한 번은 들어야지. 집에 가서 신보를 듣자니 집에 가면 해야 할 일들ㅡ공부, 과제, 설거지 등ㅡ노래를 편하게 들을 시간을 낼 수 없었다. 그래서 나에게 아무런 의무와 강제와 책임이 주어지지 않는 이 공간에서 노래를 듣고 의무의 공간으로 들어가기로 한 것이다.
날이 갑자기 추워져서 그런지 산책하는 사람도 많이 없어서 시끄럽지 않아 좋았다. 사람들이 대화 나누면서 들려오는 웅성거림도 없고. 이어폰 볼륨을 조금만 올려도 사운드가 엄청 빵빵해졌다. 이 넓고 제약 없는 공간에 떠있는 나를 마치 비눗방울처럼 감싸주는 느낌. 신보에 실린 첫 번째 곡이 지나 다음 노래이자 타이틀곡인 ‘사랑이 있었네’가 시작되었다.
오늘 하루 있었던 힘든 일들이 저 밑에 흐르는 강물과 함께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엄마는 나를 걱정한다. 그것도 많이 한다. 그건 아마도 내가 결혼을 하지 않고 있으니 남편이 걱정해야 될 만큼의 분량을 덜어내지 못하고 여전히 그 짐을 지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엄마가 근무하는 곳에서 얼마 전에 학생 하나가 자살했다고 했다. 그 소식이 며칠 지나서야 알려져서 다들 수군수군했다고 한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오죽했으면 그랬겠냐면서. 너무 힘들면 주위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본인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니 제일 마음이 편할 테니 그것만 보고 선택한 것이다. 그러니까 본인은 마음이 편하니까 그랬겠지만, 하면서 엄마는 혹시 모를 혼자 사는 나를 걱정했다.
내가 요즘 너무 힘들다고 하니까 혹시라도 부모님과 떨어져 사는 내가 그런 걸 시도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신 모양이다. 그러면서 그랬다. ‘그래도 너는 1층 사니까 뛰어내릴 걱정을 안 해. 뛰어내려도 1층이니까 괜찮아’ 같은 말이었다. 엄마와 웃으며 그 얘길 넘겼지만 마냥 남 일 같지는 않았다.
1층은 잘하면 발목을 접질리지 않고도 뛰어내릴 수 있을 정도의 높이다. 하지만 자연스레 엄마의 말을 듣고 1층에서 뛰어내리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1층에서 뛰어내리는 건 좀 웃기네’라는 생각이 들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1층에서 뛰어내린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을 마감하는 방법 중 하나가 아니라 새벽에 부모님 몰래 놀러 나갈 때 집을 탈출하는 정도의 느낌 밖에 들지 않았던 거다. 그저 높이와 위치가 다른 현관문에 불과한. 그래서 내가 있는 곳이 1층이든 15층이든 어디든 간에 아무리 힘들더라도 뛰어내릴 생각 같은 건 하지 않게 되었다.
두 손 꼭 쥐고 살아왔네
햇살 가득 들어온 방
가보지 못한 여행지
다시 길을 걸어갈 때
사랑이 있었네
사랑이 있었네
<사랑이 있었네>, 노리플라이
노래가 절정을 지나 스르르 끝나고 있었다. 곧 앞으로 얼마뒤면 다가올 공연장에서 이 노래를 직접 라이브로 들으면서 노래의 말미를 감상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라이브로 연주해도 아마 지금과 비슷한 느낌이 들 거 같았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지만 지금의 나는 그 미래와 곧바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인 용산공원은 버스 타고 지나다니다 보면 회색빛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는 바로 그곳이었다. 개방한 지 오래된 줄 알았는데 2020년부터 개장한 거라 실질적으로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다.
그래도 요즘 이곳이 핫플레이스로 유명해졌는지 한낮 평일 오후인데도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슬슬 걷는데 다 나랑 같은 목적지로 향하는 사람들이었다. 재밌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보이는 건물을 보고는 우리나라 아파트촌이나 빌라촌과는 다른 느낌의 장소가 펼쳐졌다. 다들 여기저기서 사진 찍느라 난리난리였다.
여기도 단풍이 멋진 곳이라 해서 일부러 미뤄서 온 건데 단풍들은 이미 다 떨어져 버려서 좀 아쉬웠다. 그래도 이 건물과 공간 자체가 주는 분위기가 있어서 남다름이 있었다. 와보길 잘했다 생각했다.
사진 몇 컷을 찍고 천천히 산책했다. 개방된 곳은 극히 일부인 거 같다. 그래서 막 드넓은 곳이 아니다 보니 슬슬 걷기에 좋았다. 개방되어 있는 건물이 몇 개 있었는데 그동안 실제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기 때문에 당시 살았던 사람들 인터뷰나 소개팻말 그리고 약간의 가구와 사진들이 남아있었다.
요 며칠 비가 오면서 단풍들은 다 쓸려가 버렸지만 대신에 추운 날씨와 또렷한 시야를 선물하고 갔다. 색감도, 시야도 너무 또렷했다. 아마 다른 계절에 오면 또 다른 느낌이겠지. 하지만 여전히 이곳은 한국이 아닌 다른 곳이라는 느낌 또한 언제나 존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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