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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간의 독립을 마무리하며

번외 : 부모님과 다시 같이 살기 시-작

by 세니seny

무사히(?) 이사를 마쳤다. 아직 잔금을 받지 않았기에 해결해야 할 몇 가지 자잘한 것들이 남아 있지만 차근차근 기일에 맞춰서 하면 된다. 노 프라플럼.




태어나서부터 약 35년을 가족과 함께 살았다. 대학교도 집에서 다녔고 취업을 해서도 마찬가지였으며 그 흔한(?) 교환학생 한 번을 안 가서 그렇다고 해두자.


그리고 서른이 넘어서야 4년을 떨어져 살았고 이번엔 정확한 계약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동거를 다시 시작하게 된 것이다. 다시 같이 살게 된 지 하루 밖에 안 됐지만 그전에 35년을 같이 산 짬이 있으니 금방 적응하겠지 싶다.


독립을 하고 혼자 살게 되면서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들과 실제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부모님께로 돌아온 이때, 느낀 점들이 있다.


1. 집안일에 참여하기


독립하기 전까지 집안일은 정말 1도 안 했다...ㅎ 정확히는 할 '생각'이 없었다. 정말 급하면 내 손을 빌리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부모님이 나한테 집안일을 시키지도 않았다.


여전히 엄마가 대부분의 집안일을 하겠지만 이제는 내가 스스로 알아서 해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내 살림이 아니니까 전면으로 나서서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할 수 있는 건 하는 것.


독립하기 전에는 내가 먹은 것도 설거지를 절대 하지 않았다...ㅎ 설거지를 하는 건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그런데 혼자 사는 동안 밥 먹고 두 끼만 설거지를 밀려도 밥 먹을 그릇과 숟가락, 젓가락도 없기 때문에 먹으면 바로 설거지해서 치우는 패턴이 몸에 배였다.


그리고 여태 세탁기 조작법도 몰랐다. 세제를 얼마나 넣고 물 양이나 시간, 세탁코스 선택은 어떻게 하는 것인지도. 그렇게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기 전에 빨래를 개는 것과 같은 것들도. 별거 아닌 거 같아도 은근 시간 걸리고 귀찮은 일이다. 이런 것들이라도 해야지. 시키지 않아도 먼저 물어보고 해야지.


2. 요리


요리는 역시 엄마가 한다. 다만 전에는 집에서 반찬을 받아서 가져와서 먹거나 그 외에는 내가 몇 가지를 해 먹었곤 했었다. 하지만 요리를 해본 적이 없어 손이 익숙지도 않고 재주도 없었다. 그리고 요리를 해 먹고 치우는 게 시간이 더 걸려서 웬만하면 잘 안 해 먹었는데 이제는 엄마가 해놓은 걸 먹기만 해도 되니 너무 편하다. 이것만 해도 너무 편하니까 집안일 돕는 거 따윈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다.


3. 서로 조심하기


우리 가족은 밥은 같이 먹지만 그 외의 개인시간에는 고양이처럼 각자 영역에 들어가 있다. 한 명은 방, 한 명은 거실, 또 다른 한 명도 방 이런 식으로. 그래서 같이 살면서 크게 부딪치는 게 없는 편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공동생활이다 보니 안 맞는 부분이 있고 갈등이 생길 수 있다.


나는 이 궤도에서 떨어져 나갔다가 다시 합류한, 갑자기 이 생활에 끼어든 사람이다. 그러니 더더욱 조심하려고 하고 부모님도 그건 마찬가지다.


나에게 무려 화장실이 딸린 안방을 내주셔서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됐는데 원래 안방을 쓰던 엄마는 거실 화장실을 써야 해서 불편하실 거다. 그리고 안방에만 리모컨으로 천장의 형광등을 끌 수 있어서 엄마가 좋아했는데 방을 바꾸면서 그런 사소한 것까지 포기하게 만들어서 좀 미안하다.


4. 사는 동안 짐정리하기


대부분 짐은 풀었지만 당장 필요하지 않은 것이나 엄마의 살림과 겹치는 것들ㅡ예를 들면 부엌용품ㅡ은 풀지 않았다. 언제 다시 나갈지도 모르지만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정리해야지. 항상 이사를 하면 미니멀리스트가 돼야지, 하고 저절로 다짐하게 된다.


그나마 지난 4년 간 원룸이 아닌 혼자 살기엔 그래도 넓은 곳에 살았기 때문에 여기저기 짐을 펼쳐놓고 살아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여기 와서 방 하나에 짐을 몰아넣고 나니까 방이 꽉 찼다. 스스로 답답해서라도 문제해결을 하고 싶다. 그러니 천천히 종류별로 정리하고 버릴 건 버려서 다음번에 이사 갈 때는 좀 정리되어 있는 모습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보자.


독립하고 나서는 같이 식탁에 둘러앉아서 밥을 먹은 게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왜냐하면 내가 보통 점심때 부모님 댁에 왔다가 그날 저녁 전에 돌아간다.


아빠는 도서관에 가거나 나가 있어서 집에 없는 경우가 태반. 그러면 저녁이나 같이 먹어야 모이는데 그런 날은 내가 아예 자고 가는 날이다. 일 년에 자고 가는 날은 설하고 추석 명절 하루 정도? 아니면 분기에 한 번 정도라 굉장히 드문 일이기 때문이었다.


같이 산다고 해서 항상 저녁을 같이 먹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1년에 4번보다는 많이 먹겠지. 혼자 살아도 삼시 세 끼는 잘 챙겨 먹었는데 이상하게 집에서 부모님 하고 먹는 식사만큼 배가 부르고 잘 먹었단 느낌이 들지 않았다. 이상하게 똑같은 반찬을 가져와서 먹고 집에서 가져온 쌀로 밥을 해서 먹어도 말이지. 희한하다, 희한해. 이것도 독립해서 살아보지 않았으면 모를 일일 거다.




아직은 퇴근하고 집으로 오는 발걸음이 낯설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는 꼭 오늘 하룻밤 자고 내일은 다시 나의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부모님과 재결합(?) 1주일 차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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