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좋아하지만 와인 알못인 나, 와인과 친해질 수 있을까?
글의 흐름 상, 아래 글을 발행하기 전에 먼저 올렸어야 하는 글인데 뒤늦게 올리게 되었다. 이번 글은 와인을 마셔보기로 결심하고 와인을 사러 갔던 날의 일기다.
친구가 나 혼자 사는 집에 놀러 온 것이 계기(?)가 되어 와인에 취미를 가져보는 것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와인은 뭔가 좀 있어 보이는 '있어빌리티' 취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소주, 맥주, 양주, 위스키, 막걸리 등 술의 종류는 많지만 그동안 나는 맥주를 선호해 왔다. 맥주는 청량감 있고 맛있긴 한데 조금만 마셔도 배가 부르고 여름이 아닌 계절에는 좀 아쉬운 느낌.
그리고 요새 역류성 식도염이 심해져서 찬 걸 마시면 기침이 더 잦다. 그리고 이제 혼자 살게 되었으니 왠지 모르게 ‘혼자’와 잘 어울리는 술은 ‘와인’이라는 이상한 명분을 덧붙여 스스로 와인에 입문해 보기로 한 것이다.
그럼...
와인을 어디서 살 것인가?
온라인몰을 통해 주문하고 매장으로 픽업을 가는 방법도 있었지만 처음이니 직접 매장에 가서 골라보고 싶었다. 마트에 가기 전날, 점심시간에 시간이 남아 인터넷으로 검색을 좀 해봤다. 잘은 모르지만 사람들의 추천 리스트를 참고해 목록을 만들어 메모장에 적어두었다.
그리고 대망의 디데이. 와인샵에 가서 추천을 받을 수도 있지만 집 근처를 검색해 봐도 마땅한 데가 없는 거 같아서 (게다가 와인에 대해 쥐뿔도 모르는 초보는 혼자서 이런데 가면 기가 죽는다) 만만한 이마트 와인샵에 가기로 했다. 호구당하기 않기 위해 이마트 와인 추천 리스트 이런 걸로도 검색하고 갔지만 인터넷에서 추천하는 것들도 너무 다양했다.
와인 매장은 식품코너 안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두근거리며 와인샵으로 입장했다. 사람들이 적어준 추천 리스트와 이것저것 비교해 봤지만 역시나 잘 모르겠다. 한참을 혼자 서성거리다 겨우 직원에게 물었다.
초보자가 마시기 좋은
2,3만 원대 와인이 뭐가 있을까요?
이미 바구니에는 프랑스에서 데일리로 잘 마신다는 와인이 한병 담겨 있었다. 하지만 직원은 그것도 좋지만 그거보단 지금 행사하는 제품이 있다면서 하나를 추천해 주고 다른 나라 와인도 추천을 해달라 했더니 1865를 추천해 준다. 이건 워낙 유명한 거라 다음에도 먹을 기회가 있을 거 같아 다른 걸 추천해 달라 하니 미국 와인 중 하나를 추천해 준다. 그러면서 칠레 와인인 1865보다 마시기에 좀 더 부드러울 거라고 했다.
나는 마트의 사업구조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래서 아마 이 직원이 아무리 손님들에게 1:1로 와인 추천도 잘하고 매출을 잘 낸다고 해서 그녀에게 주어지는 급여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아마 사장도, 자기 매장을 가진 직원도 아닌 그저 대형마트에서 코너 하나를 담당하는 직원일 것이다.
이게 대형마트 안의 매장이 아니라 와인샵을 직접 운영하는 사장이라면 말이 좀 달라질 것이다. 제품 추천을 잘해주면 단골이 될 수도 있고 그러면 장기적으로 매출도 오를 거다. 딱 봐도 내가 와인은 1도 모르고 추천해 달라하니 행사로 빨리 팔아버려야 하는 와인을 추천해 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내가 대형마트에 있는 와인샵에 갔으니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찌 보면 호구가 될지도 모를걸 감수하고 그녀가 추천해 주는 두 병을 샀다. 그래도 뭐 무난한 거 추천해주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이렇게 일단 와인을 구입했다. 이런 식으로 와인을 먹다 보면 내 취향도 생기고 공부도 하게 되겠지? 곧 생일을 맞아 혼자서 와인을 까 보기로 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새로 경험하는 일이 적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생일에 맞춰서 혼자서 와인 까기는 처음 해보는 일이다. 그야말로 술꾼 아빠에 이은 술꾼 딸이 되는 기분인데, 술을 싫어하는 엄마가 보면 기함할 일이지만.
와인을 다 고르고 계산한 후 건물 밖으로 나오는 길에 드는 한 가지 생각. 모든 일에 너-무 호구를 안 당하려고 하면 그것도 힘든 삶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려면 내가 모든 걸 다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이런 날도 있겠지, 호구 좀 당하면 어떠하리 하고 쉽게 넘어가고 싶다.
크게 사기당하는 것만 아니라면 실제로 그 판에 뛰어들어야 깨닫게 되는 것도 분명 있다. 혼자 작은 와인 코너를 30분가량 사색하다가 직원 추천에 3분 만에 마음을 결정하고 사 버렸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물어볼걸.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으로 와인잔을 주문했다. 와인잔에도 이렇게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지 몰랐다. 우리가 흔히 아는 그 모양은 맞는데 와인 종류에 따라 와인잔 보울의 크기와 길이가 다르다는 사실을 이번에서야 처음 알았다. 가장 무난하고 가장 많이 사용하는 와인잔을 골라 주문했다. 와인잔은 다행히 깨지지 않고 잘 배송되어 왔다. 그런데 원래 이렇게 보울 부분이 컸나? 싶어 놀랐다.
자, 이제 마시는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