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로부터 '실망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어느 날.
본부장님께 보고드릴 게 있어서 본부장실에 들어갔다. 필드감사는 끝났지만 하필 마감인데 또 이거 저거 확인해 달라 메일 오지, 본사에서도 자료 보내라 난리통.
게다가 곧 설연휴라서 시간도 촉박한데 이 와중에 엄마가 미국에 있는 동생 보러 가고 싶은데 혼자는 못 가니까 나 시간 언제 되냐고 쫘대서 그나마 설연휴는 좀 괜찮겠지 않을까 싶어 약간 무리하는 거 같으면서도 스케줄을 잡았는데…
내가 혼자 가는 여행이라면 이 시기에는 절대 휴가를 내지 않을 시기. 그래서 여행 가기 전까지도 일을 우걱우걱 욱여넣고 갔다 오자 마자도 일에 시달리게 생겼다. 그 와중에 본부장님께 몇 가지 말씀드리면서 내가 휴가 가니까 내 대신 업무를 봐주시길 바랐는데 마치 미리 할 수 있는 걸 왜 안 하냐는 듯한 그 태도.
여태까지 내가 대표님께 직접 보고해야 하는 것도 본인이 계속 대신해 왔는데 괜히 해줬다는 둥… 그 말을 듣고 어쩌라고,라는 못된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하는 일만 해도 충분하게 치이고 있는데 뭐라는 거야 진짜.
이러고 나서 분명 며칠 뒤에 퇴사한다고 이야기하면 '너 그래서 그렇게 성의 없는 태도 보였구나???'하고 바로 까이겠지. 사람들한테 '친절하게' 대하지만 이상하게 진심은 안 느껴지는 그런 사람. 전에 팀장님은 말투가 친절한 건 아니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편이었는데 본부장님은 때로 말투'만' 친절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런데다 알맹이가, 한 방이 없어서 결정적일 때는 실망하게 만드는 사람.
물론 나도 미국에 여행 가는 거 좋지만 내가 심적으로 여유 있을 때 가고 싶다. 회사일 바쁜 시즌에 굳이 휴가 내가면서 또 자유여행도 아니고 엄마를 모시고 간다는 게 또 얼마나 스트레스인지. 이것은 이미 나에겐 즐기고 쉴 수 있는 여행이 아닌 모든 일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이드에 불과할 뿐.
그래도 이왕 가는 거 즐겁게~ 즐겁게~ 다녀와야지 싶다가도... 회사에서도 일에 치이는 와중에 나 휴가 가는 기간 끼고 팀원 평가 및 올해 목표설정까지 마치라는데 짜증이 솟구친다. 그래도 정신 부여잡고 인사팀장한테 제~발 하루만 더 시간 주면 안 되겠냐고 빌어서(?) 시간을 벌었다. 구차하다 증말. 난 목표 안 세울 건데.
이번 주는 야근 좀 안 하나 했는데 풀야근 예약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고 이럴수록 더 침착해야 하는데 여행 가는 것도 달갑지 않고 다른 일들도 꼬이는 것 같다. 일정 바쁜데 욱여넣어서 가는 여행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와 휴가를 다녀온 뒤 본부장님한테 퇴사통보 했을 때 뻔히 돌아올 거 아는, 달갑지 않은 반응을 상상하고 있자니 그것 또한 스트레스다.
오늘은 나한테...
실망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거의 10여 년을 함께 일해왔는데 상사에게 이런 대사를 들은 건 처음이다. 지금의 내가 본인이 여태 알고 있었던 나랑 다르다는 식으로 말씀하셨다.
예예, 맘대로 생각하십쇼. 팀원 하나 임산부 단축근무한다고 겨우겨우 지 할 일만 입에 풀칠하듯이 하고 있고 나머지 팀원 하나는 주는 일도 겨우겨우 하면서 날뛰는 망아지처럼 불만은 더럽게 많은데 예, 다 제 탓입죠, 그러니 빨리 나가 드리겠습니다, 원하는 팀장 뽑아서 맘껏 부리시죠.
올해 목표 설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셨지만 목표를 세워봤자... 아니 전 세울 필요가 없다니까요? 이제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빨리 해버리고 싶지만 내가 정한 퇴사 통보 디데이가 남았으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