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동안 행복의 순간 세 번 갱신하기 : 셋째, 하루를 마무리하며
수영장에서 씻고 나오는 길.
그때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던 노래가 바로 토이의 <해피엔드>였다. 왠지 모르겠지만 아까 그 순간에 잘 어울릴 거 같다고 무의식 중에 떠오른 모양이다. 원래는 숙소 밖에서 저녁을 먹으려 했는데 귀찮다. 어차피 슈퍼에도 가야 하니까 간단히 사 와서 숙소에서 먹기로 했다.
슈퍼를 돌며 장을 보고 걸어서 숙소로 왔다. 가만 생각해 보니 귀찮아지네? 여행 다닐 땐 주로 밖에서 사 먹고 숙소에서는 잘 안 먹는데 먹고 치우는 것도 스트레스기 때문이다. 그냥 식당에서 간단히 먹고 들어갈 걸 그랬나?
슈퍼에서 파는 포케를 사 왔는데 은근히 양이 많은 데다 수영 끝나고 나왔더니 목이 말라서 음료를 벌컥벌컥 마셔버렸더니 배도 부르다. 그럼 내일 식비 아끼는 셈 치고 남겨놓고 내일 저녁에 먹어야겠다.
그렇게 숙소 부엌에서 후다닥 저녁을 해치웠다. 그리고는 아까 낮에 체크인할 때 봐뒀던, 분위기 좋아 보이는 바깥에 있는 테라스로 여행용 다이어리를 들고 나왔다. 아무도 없다. 완전 전세 냈다. 야호. 아무래도 핫한 토요일 밤이라 그런지 나 빼고 다들 밖으로 놀러 나갔나 보다.
<오늘의 세 번째 순간>
나는 여행 중에 꼭 그날그날 다이어리를 쓴다. 그래서 오늘도 오늘치를 다 쓰고 나서야 아까부터 머릿속을 맴돌던 토이의 <해피엔드>를 들었다. 매일매일은 아니지만 여행을 다니며 그날그날의 테마곡이 생기곤 하는데 오늘의 노래는 이거다.
신기하게 그날그날 떠오르는 노래들이 있다. 무의식에 있다가 갑자기 팟, 하고 떠오른다. 그런데 대부분 최근 듣던 노래는 아니고 내가 과거에 몇십 번, 몇 백번씩 들었던 노래들이다. 그리고 기억 속에 오랫동안 침잠되어 있던 그 노래들은 이 낯선 풍경과 찰떡같이 들러붙는다.
테라스에 테이블이 있길래 단지 다이어리 쓰기가 편해서 여기로 나온 거였다. 다이어리를 다 쓰고 음악을 듣고 있자니 바로 앞에 있는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해가 떨어지고 서서히 어두워지니 테라스에 나와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건물로 들어갔고 그 자리를 불빛들이 채운다. 커튼을 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모습. 그 커튼 너머로 왔다 갔다 하는 모습들. <해피엔드>를 들으며 보니 더 멋진 풍경.
참 별 건 아니지만 건너편 몇몇 집에선 바깥에 조명을 달아 놓았다. 그리고 건너편 옥상에 있는 나무엔 반짝거리는 조명을 달아놔서 꼭 크리스마스트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럽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핫하니까 언젠가는 그때 유럽에 와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여태 매년 유럽으로 휴가를 왔지만 크리스마스 시즌에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회계 업무를 하는 이상은 평생(?) 올 수 없을 테지만 이제는 가능하니까.
오늘은 프랑스 님Nimes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이동하는 일정이 메인이었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제대로 한 거라고는 수영 하나밖에 없었다. 하루동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도 최고의 순간을 여러 번 맞이하는 것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하루 최고의 순간을 두 번이나 갱신했다.
그런데 예상치도 못하게 다이어리를 쓰러 나갔던 숙소 테라스에서 토이의 <해피엔드>를 들으며 본 이 풍경이 오늘 세 번째 최고의 순간으로 갱신되었다.
오늘 하루
최고의 순간 세 번을 갱신했다.
바르셀로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