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동안 행복의 순간 세 번 갱신하기 : 둘째, 야외에서 수영하기
수영장에 도착해 표를 끊고 입장.
이곳의 이용방법을 하나부터 열까지 친절하고 자세하게 적어놓은 블로그가 있어 도움이 많이 되었다. 탈의실/샤워실 개념은 프랑스랑 비슷한 듯하면서도 남녀는 구분되어 있었다. 그래서 편하게 씻었다. 반대로 수영장이든 목욕탕이든 다 벗고 돌아다니는 우리나라 수영장/목욕탕에 오면 유럽인들이 아마 깜짝 놀랄 거다.
그렇게 수영장에 입장하니 벌써 오후 여섯 시다. 오늘은 구름이 끼기도 하고 시간대가 시간대인지라 해가 쨍쨍하지 않았다. 아직은 5월 말이라 그렇게 덥지 않기도 했고 실외뿐만 아니라 실내에도 풀이 있었기 때문에 실내를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실내 수영장을 찾아서 갔더니 이게 웬걸. 수영장을 둘러싼 관객석이 꽉 찬 걸로 봐선 행사가 진행 중인 거 같았다. 참, 여긴 오늘 주말이었지?
하는 수 없이 야외로 나갔다. 바깥공기는 쌀쌀했지만 일단 물에 들어갔다. 물에 들어가니 좀 나아졌고 움직이니 괜찮아졌다.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추우니까 억지로 수영을 빨리빨리 하게 됐다. 레인은 한 6개? 8개? 정도 되는데 비어있는 레인이 있어서 혼자 차지하고 수영했다. 완전 럭셔리 수영. 사진은 없지만 이게 오늘의 두 번째 행복의 순간 갱신이다.
<오늘의 두 번째 순간>
자유형을 하다 배영을 하려고 물에 누웠더니 하늘이 나랑 평행이다. 하늘은 항상 고개를 들고 올려다봐야만, 고개를 들어야만 볼 수 있는 곳. 이제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보이네. 너무 행복하다. 아까 공원에서 비눗방울이 날리던 순간이 오늘 느낀 최고의 순간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배영을 하기 위해 실외 수영장 수면에 침대에서 천장을 보듯 하늘을 보며 누운 이 순간이 또다시 오늘 최고의 순간이 되었다.
2018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6년 전. 그때는 1년 치 휴가를 몰아서 유럽의 폴란드-에스토니아-핀란드 3국을 여행했다. 여행 마지막 국가였던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야외 수영장 '알라스 씨 풀'에서 수영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왜 하늘이 평평하게 보이는 게 기쁜 걸까? 에 대해 생각해 봤다.
물에 떠 있으려면 힘을 주면 안 된다. 정확히 표현하면 긴장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하늘과 평행이 될 수 있다. 긴장을 하지 않는다는 것, 말로는 쉬운 일 같지만 어렵고 어려운 일 같지만 또 쉽다.
긴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 특히나 그것이 파란 하늘과 구름과 같은 한없이 평화로운 풍경이라면? 하늘이라 함은 평상시에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려다봐야 하는 건데 이제는 그냥 눈길이 가는 대로 보이는 거라면? 내가 이렇게 하늘을 평행으로 바라보는 시간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되겠어. 분명 이런 순간이 많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낯설고 희귀한 것이다. 그러니 이것 또한 오늘의 순간이 된 것이다.
신나게 수영을 하고 선베드에 누워볼까 했지만 너무 추웠다. 그래서 수영장을 나가기로 했다. 선베드에도 눕고 프라이빗 해변도 가봐야 하는데. 아쉽지만 야외 수영장에서 수영한 걸로, 하늘을 평행으로 바라본 걸로 충분하다 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