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자식 체험 : 부모님 모시고 자유여행하기
아무리 봐도, 앞으로 구르고 뒤로 구르고 봐도 나보다는 어릴 거 같아 그냥 따님에게 반말 까겠다.
아빠는 안 그러겠니. 아빠에게도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겠니. 말도 안 통하는 해외에서 딸이 이거 저거 다 도맡아 하니 얼마나 미안하고 기특하고 고맙고 그럴 거야.
그런데 거기다 대고 내가 버스 시간 다 맞추고 엄청 노력하고 있는데 아빠는 왜 그러냐면서 엄청 아빠 탓을 하고 있었다. 슬쩍 들리는 말속엔 16,000보 밖에 안 걸었다면서 씩씩대고 있었다.
야...
적당히 걸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부모님 모시고 해외 자유여행을 경험해 본 자로서 말하자면...
버스 시간 맞춘다고 고생할 게 아니라 최대한 편하게 택시를 태워드리거나 걷는 거리를 줄여야 해, 이 멍청아. 그리고 하나 더. 낮에 중간중간에 호텔 들어가서 쉬어줘야 좋아하신단다.
우리 부모님 왈, 네가 이래서 자유여행을 하는 거구나! 이 좋은 걸 너만 하고 있었구나!라고 하셨고 그 뒤로는 패키지여행을 기피하고 웬만하면 자꾸 나를 끼워서 자유여행을 가고 싶어 하신다.
너도 여행한다고 생각하면 안 돼. 넌 그냥 가이드라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할 거야. 그리고 아무리 맛있는 집 모시고 와도 어른들 입맛은 쉽지 않다구.
딸인 그녀의 마음도 이해는 합니다만 비싼 식당 데리고 와서 아버지 데리고 악 쓰는 모습을 보는 건 불편했다. 아직 많이 어린가…? 이번이 여행 모시고 온 게 처음이겠지…? 나도 딸임에도 불구하고 딸 편을 들기보다 그저 아버지가 너무 안쓰러워 보인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하지만 내가 나설 순 없으니 나는 그저 한 테이블 떨어져서 마음속으로 조용히 참견할 뿐이었다.
어른들 체력을 너 같다고 생각하면 안 돼. 패키지 아니고 자유여행 온 거잖니. 만육천보, 이만 보 걸어 다니는 여행은 친구들이랑 다닐 때 하면 돼. 이 모든 계획을 짜고 실행하고 고생하는 너의 노력과 마음은 가상하지만 아무리 건강해 보여도 어른들은 가능한 걷는 걸 줄여야 해.
그리고 아빠한테 천천히 먹으라면서 계속 버스 시간 얘기하네? 그럴 거면 친구랑 왔어야지. 아버님도 자기 딸이니 본인이 피곤해도 미안하니까 뭐라고도 못하고 그저 허허~ 하고 계시고.
그래서 내가 베트남과 블라디보스토크 두 번의 여행을 부모님과 함께 자유여행을 한 이후로 다시는 부모님과 함께 자유여행 갈 생각을 안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효녀네,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