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찾지 못한 네잎클로버
다 알고 있지만
잊었겠지.
나 혼자 큰 게 아니라는 건.
점점 부모님이 아기와 비슷한 상태로 되니 더 많이 배려해야 한다는 걸 앞으로 더 느끼게 될 거야. 너보다 몇 살 많은 내가 그러고 있거든.
물론 너의 수고로움을 네가 직접, 네 입으로 그렇게 크게 말하지 않아도 이미 부모님은 너무 미안해 죽을 지경일 거야. 그래서 힘들어도 힘들다 못하고 네가 힘들게 짜놓은 일정을 지키지 못해서 아름다운 풍경을 못 보는 상황이 되면 그냥 너라도 다녀와라 하는 것도 다 널 배려해서 그런 거야. 너라도 편하게 보고 오라고.
한 칸 건너 테이블에 앉은 그녀가 이런 사실을 언제 알게 될지, 다음 여행에는 좀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라며 그들의 대화의 끝이 궁금했으나 음식 다 먹기도 했고 내가 괜히 기가 빨리는 거 같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버님, 같이 화를 내세요,라고 오지랖을 부리고 오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다른 곳에서 먹은 것과는 달리 유달리 알코올 도수가 높게 느껴진 띤또 데 베라노를 먹어서 그런지 아니면 날것 그대로의 한국인 부녀의 대화-라기엔 따님의 일방적 꾸지람-를 들어서 그런지 어쩔 수 없이 나도 모르게 나의 부모님 생각이 났다.
엄마랑은 맨날 카톡을 주고 받지만 아빠랑은 잘 연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나이 들어가는 아빠를 보면 많이 짠하다. 모르긴 몰라도 이 친구 아빠보다는 우리 아빠가 나이가 많을 거 같은데… 우리 아빠는 앞으로 유럽에 올 수나 있으려나 모르겠다.
그리고 불효녀 같지만 솔직히 내가 모시고 올 자신도 없다. 나 혼자서야 길거리에서 빵 먹으면서 한 끼 때우고 8인실 혼성 도미토리에서도 자고 야간기차 타고 이동하면서 야간기차 로망과 숙박을 한 방에 해결하면 그만이다. 16,000보까지는 아니더라도 하루 종일 만보 정도를 걷고 15분 정도 거리는 당연하게 걸어 다닌다. 하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여행은 그러면 안 된다는 걸 너무 잘 아니까. 너무 잘 알아서 그렇다.
7시에 식당 들어가서 그들의 불편한 대화 아니 일방적으로 딸이 아버지를 꾸짖는(?) 불평을 들으면서 음식을 먹고 계산하고 나오니 8시밖에 안 됐다. 6월의 유럽 저녁 8시? 아직도 해가 쨍쨍하다. 그리고 딱 걷기 좋아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배도 부르고 술도 한 잔 했겠다 근처 시벨레스 광장에 조성되어 있는 큰 대로변 공원에 가기로 했다. 음악 들으면서 슬슬 걷기. 그늘져서 딱 좋네.
그렇게 걷다 문득 공원 풀밭에 심어진 클로버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아주 가끔, 여행지에서 시간이 남을 때 클로버밭을 발견하면 네잎클로버 찾기를 시도해 보곤 하는데 오늘이 마침 그런 날 되시겠다.
아직도 해는 창창하고 풀밭은 널려있고 부녀의 말다툼(아니 딸의 일방적 아빠 혼내기ㅎ)을 목격하고 와서 그런지 뭔가 네잎클로버로 그 기억을 덮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어느새 네잎클로버 찾기에 집중. 그런데 찾기가... 쉽지 않다. 이미 사람들한테 많이 짓밟혀서 그런지 모양 자체가 제대로 된 것도 별로 없어 보인다.
네잎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고
세잎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랬나?
행운을 찾으면 좋겠지만 안 나온다면 마드리드에서 행복이라도 하나 가져가야지. 세잎클로버 중에 이쁜 모양으로 된 거 하나 가져가야지 했는데 막상 그렇게 결심하고 나니 모양이 균형 잡히게 생긴 세잎클로버도 잘 안 보이네. 아까 보일 때 딸 걸. 어딘가 잎 하나는 뜯겨 나가거나 색이 흐릿하거나 누가 갉아먹었는지 흠이 있거나 그렇다.
그래, 행운은커녕 적당한 크기의 예쁜 행복도 찾기 쉬운 게 결코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그 부녀에게도, 나의 남은 여정에도 행복이 가득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