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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여행 둘째 날, 초심자의 행운은 어디로 가고

고대 도시 그리스에서 나의 새로운 시작 공표하기

by 세니seny

내가 생각했던 건 이런 거였다. 그리스 신들의 이름 따위 몰라도 좋고 그리스 신화를 몰라도 좋으니 고대부터 있었던 도시에서, 아주 오래된 문명이 있는 곳에서, 오래된 것들이 자연스럽게 널려져 있는 거리를 여유롭게 걷고 싶었다. 내가 그리스의 아테네를 이번 여행의 첫 목적지로 삼은 이유다. 단지 그뿐.


나는 이제 나의 오래된 시대를 닫고 새로운 챕터를 열 테니까. 과거 태초의 문명이 탄생했던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공표하듯이. 그러려면 이 이유를 갖다 붙일 장소가 필요했던 거다. 그러니 아테네에 온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


오늘은 시차 적응 문제도 있고 피곤하기도 해서 슈퍼에 들렀다가 숙소로 일찍 돌아왔다. 그런데 같은 방을 쓰는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아저씨는 정확히는 중국인이 아니라 타이완(대만) 사람이었다.


아저씨 침대 위층에 새로 온 여자애가 '香港'(중국어로 홍콩을 뜻하는 단어)에서 왔다고 하니 본인은 타이완에서 왔다며 엄청 반가워했다. 중국어 배운 덕에 '香港'(xianggang) 하나 알아듣는데 써먹었다. 그렇게 둘의 수다가 봇물 터지며 흘러넘친 시끄러운 중국어 덕에 나는 귀가 터질 지경이었다.


화장실에 씻으러 갔다. 씻고 나오려는데 문이 잠겨서 갇혔다. 살려달라고(?)는 아니고 화장실 문이 잠겼으니 나 좀 도와달라고 화장실 창문을 통해 복도로 소리를 질렀다. 다행히 아까 그 홍콩 여자애가 방에 있어서 스태프를 불러주었다. 화장실에 갇히는 게 웬 말이여. 오히려 화장실을 처음 사용한 어제는 잘만 사용했는데.


그러고 보니 긴장을 잔뜩 한, 끝나지 않을 것처럼 아주 길었던 여행 첫날은 모든 일들이 무사히 흘러갔었다. 유심도 장착하자마자 잘 되었고 호스텔 스태프도 없이 셀프 체크인도 잘했으며 샤워실도 알아서 척척척 잘 잠그고 썼는데... 여행 둘째 날인 오늘은 어젯밤까지 잘 되던 유심이 멈추질 않나 욕실에 갇히질 않나...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게 진짜 있는 것이었나, 싶다.


이렇게 여행 둘째 날이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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