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물건 잔뜩 쇼핑하고 지역명물 곱창버거 먹어보기
로마에서 피렌체로 이동했다. 피렌체에 머문 날들 중 어느 하루의 이야기.
오늘 아침은 이지형의 <산책>으로 시작했다. 이렇게 여행 기간 내내 매일매일의 테마곡을 정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여행한 2주 동안 어떤 음악을 들었는지 기록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들은 노래들이 있으니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봐야지.
여의도로 출근하던 어느 출근길에 이 노래를 듣던 순간이 떠오른다. 분명 여의도 공원의 파릇함이 느껴지던 계절이었다. 내가 발을 딛고 서있는 피렌체의 지금이 딱 그렇다. 그러니까 장소는 달라도 비슷한 계절인 이때, 이 노래를 기억 속에서 불러온 거다.
나는 장기여행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이상 짐을 늘리는 건 곤란하다. 하지만 사고 싶은 것들이 있어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각 나라의 한 군데에서 쇼핑을 왕창 하고 그대로 국제택배로 보내기로 했다. 이탈리아에서 쇼핑하기로 정한 도시는 바로 피렌체였고 오늘 오전을 쇼핑 일정을 위해 비워뒀다.
내가 여행지에서 사는 것들은 명품이나 소품 같은 것들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넘어오면 비싸지는 생필품-화장품이나 간단한 식재료 등-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사용하면 여행에 대한 기억도 나고 물건을 사용해서 없어진다는 그 자체에서 오는 쾌감도 있다.
물론 여행지에서 여전히 물성이 있는 마그넷과 같은 것들을 구입하지만 이런 물건들이 자리를 차지하다 보니 이제는 사용해서 없어지는 물건들을 기념품으로 사 오는 걸 선호하게 되었다.
먼저 이탈리아 도처에 흔하게 널려있는 슈퍼인 콘라드Conrad에 찾아가 치약과 페페론치노를 샀다. 그러고 나니 수도원 화장품을 파는 약국이 문 열었을 시간이라 갔다. 더 사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비싸서 자제했다.
마지막으로 약간 고급진 슈퍼 Eatlay로 향했다. 영어로 이탈리아를 부르는 말인 Italy와 발음이 똑같은데 아마 의도하고 지은 이름이겠지? 현재는 우리나라에도 Eatlay 매장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아무튼 다양한 식재료들을 팔고 있었고 택배 무게 등을 고려해 병이 아닌 페트병에 든 발사믹 식초 등을 구입했다.
이렇게 쇼핑한 것들을 양손에 들고 겨우겨우 택배 부치러 갔다.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친절하고 서비스가 괜찮다고 구글맵 평점이 아주 좋아서 방문했고 만족스러웠다. 6~7kg을 예상했는데 예상외로 4kg라고 해서 생각보다는 택배비를 절약(?) 하고 나왔다. 양손 가득히 들고 다니던 쇼핑짐을 털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
아까 아침으로 겨우 바나나 두 개 먹었더니 배가 고파 점심을 일찍 먹기로 했다. 피렌체는 곱창버거로 유명한 곳이라 꼭 먹어줘야 한다. 곱창을 좋아하지 않아 먹을 생각이 없었지만 로마 숙소에서 만난 피사에서 온 현지인 친구가 강추하길래 그녀를 믿고 먹어보기로 했다.
피렌체엔 곱창버거 평이 좋은 곳이 두 군데 있었는데 (거리는 비슷) 한 군데는 구글맵에 오늘 휴일로 나와서 다른 한 군데로 갔는데 어라... 가게가 없네? 문을 닫았나 싶어 자세히 보니까 건물 안에 위치한 가게가 아니라 푸드트럭이었다. 가게에 앉아서 편하게 먹고 화장실도 들르려고 했는데. 배고프니까 차라리 빨리 먹고 화장실은 따로 가자 싶어서 주문했다.
그냥 고기만 있는 걸 먹으면 느끼할 거 같아서 대파랑 같이 있는 메뉴를 달라고 했더니 오늘은 그게 안된다고 했다. 메뉴 중에 그날그날 되는 메뉴가 다른 모양. 메뉴 중에 시금치랑 같이 나오는 건 가능하대서 그거랑 콜라를 주문했다.
주인은 아주머니도 아니고 나이가 많이 든 할머니셨다. 그런데 영수증을 건네주면서 내가 한국사람인 거 알아채고 '감사합니다~'라고 해주셨다. 중국인들한테는 중국어로 답변해 주셨다. 아, 장사는 저렇게 해야 되는구나. 앞으로 더더 잘 되실 것 같다.
나는 내장류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라 걱정했는데 매운 소스를 한 번 뿌리고 먹으니 적당히 매우면서 고기도 쫄깃쫄깃해서 맛있었다. 의외로 취향저격당했다. 다만 빵이 좀 두껍고 딱딱했는데 그거만 바꾸면 한국에서도 잘 팔릴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 또 먹고 싶다. 아무튼 배부르게 잘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