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시내에서 수영모자 구입하러 돌아다니기. 그 결과는?
4월 말 유럽. 전체적인 날씨는 대체로 쌀쌀하다. 하지만 한낮에만 미친 듯이 뜨거워서 선크림을 제대로 바르지 않은 손목과 목은 이미 시커멓게 탔다.
아직 물에 들어가기엔 쌀쌀하다고 생각했는데 서양 사람들은 벌써부터 바다에서 수영을 하더라. 나도 해보고 싶긴 했는데 혼자 다니다 보니 짐을 맡아줄 사람도 여의치 않고 바닷물이 차길래 아직은 시도를 안 해봤다.
그런데 며칠 내내 짐을 끌고 이고 지고 또 메고 다니니 목도 결리고 힘들어서 근육을 풀어주기 위한 생존 수영이 절실했다. 그런데 짐을 쌀 때 고민했었다. 수모와 수경을 챙길 것인가? 물론 실내 수영장이나 온천에 간다면 필요할 수 있지만 바다에서 수영하면 굳이 필요 없는 품목이기 때문이다.
'한 달 살기'와 같은 개념은 아니지만 짧게 체류를 하더라도 그 장소를 나름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평상시에 서울에서 하던 것들을 해보는 것도 꽤 재미있다.
예를 들면 낯선 도시에 와서 도서관을 가본다던지 하는 것처럼. 그래서 이번 여행을 짜면서 각 도시마다 각 나라의 도서관은 꼭 가봐야지라고 했는데 각 도시에 있는 수영장에 들러볼 생각까진 못했던 거다.
로마에 와서야 생각이 났다.
각 도시에서 수영을 하는 건 어떨까?
나는 경비를 아끼기 위해 호스텔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숙소에 수영장이 딸려있지 않다. 그래서 일일 입장이 되는 공공수영장을 찾아야 했다. 호텔 수영장은 일일 입장이 되지 않기 때문에 시민들이 이용하는 공공수영장으로 가야 했는데 영어로 된 정보가 잘 없었다. 그래도 구글맵을 뒤지고 뒤져서 3군데 정도 찾아놓고 혹시 입장이 거절당하더라도 그러려니 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전에 실내 수영장에 수경은 없어도 그만이지만 수모를 안 쓰면 입장 자체가 안 된다는 글을 발견. 결국 수모를 안 챙겨 와서 난감한 상황이 발생했다.
로마 여행 둘째 날.
오전에 시내투어를 했는데 투어가 스페인광장에서 끝났다. 그리고 나니 자유시간. 그래서 수모를 찾는 나만의 작은 모험이 시작되었다. ‘수모(受侮)당하다’할 때 수모가 아니고 수영모자의 줄임말, ‘수모(水帽)’.
수영복 파는 곳에 당연히 수모도 같이 팔거라 생각해서 구글맵에 'swimsuit'라는 키워드를 친 다음 수영복 가게에 들렀다. 그런데 죄다 비키니만 팔고 수모가 없다(!). 그래서 이탈리아어로 수모라는 단어를 번역에서 보여주니 다들 고개를 저으며 없대. 수모를 찾으려 했을 뿐인데 이렇게 수모를 당하는 건가.
그렇게 대여섯 군데를 돌아다녔을까. 결국 다국적 기업으로 운동 관련 물품을 잔뜩 파는 나이키 매장에서 겨우 수모를 찾을 수 있었다. 그렇게 서울에서도 한 번도 써보지 않은 실리콘 수모를 사게 되었다. 저렴한 천으로 된 수모도 상관없었지만 이거밖에 안 팔아서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게 힘들게 수모를 산 다음날.
수영장에 갈 만반의 준비를 해서 짐을 챙겨 나섰다. 오늘의 첫 번째 목적지인 로마 국립중앙도서관에 들렀다가 수영장을 가야 한다. 지하철을 타고 이동 중이라 몰랐는데 바깥으로 나오니 구름이 끼는 게 날이 심상치가 않네? 꼭 비가 올 것만 같은 하늘이다. 어쩌지.
일단 지하철역을 나온 후 배가 고파서 카페에 들러 핫케이크를 시켜 먹었다. 아무래도 오늘 수영장 방문은 접는 게 좋을 거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수영장 일정 대신 로마에 머물면서 못 가본 곳들을 좀 더 돌아보자. 그리고 물가가 비싼 로마 대신 상대적으로 저렴한 피렌체에 가서 수영을 하기로 했다.
과연 이번 유럽여행 중 일반 수영장에서 자유수영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앞으로의 시리즈를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