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우로 두드려 맞으며 재난영화의 한 장면 연출하기
폼페이 화산 폭발.
베수비오 화산에서 화산이 폭발해서 시내에 살던 사람들이 갑자기 그 상태로 사망한 폼페이 화산 폭발의 날. 오늘의 나는 안 그래도 아침부터 날이 흐려서 좀 으스스하네? 꼭 그날-홈페이 화산 폭발 당일날-같은 느낌이네? 재난영화 간접 체험한다고 생각하고 즐겨! 이랬는데 이렇게 우산이 있건 없건 아무도 없는 길거리에서 혼자 폭풍우를 두드려 맞고 단편영화 급의 재난영화를 찍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도 한 가지 긍정적으로 생각이 든 건 있었다. 그래, 유르말라 해변의 악몽과 달리 적어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지언정 이번엔 우산이 있잖아. 심적으로라도 우산이 있으니 아주 조금은 비를 덜 맞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기차역에 도착해서 몸을 말리고 쉬고 있는데 친구들이 있는 단톡방에 메시지가 떴다. 곧 출산 예정일인 친구가 있었는데 어제 아기를 낳았다고 한다. 나는 폼페이에서 유적 보다가 비 맞고 개고생 중이라고, 나의 현재 위치와 상태를 전하며 둘째 낳아서 축하한다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랬더니 비 맞으면서 여행하는 것도 다 추억이지,라고 말해주는 친구.
그래, 이 친구는 원래부터 참으로 긍정적인 아이였지. 나도 알아, 아는데... 실제로 이렇게 빰 싸대기 두드려 맞듯 비 맞아도 그런 생각이 들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역시 부정적인 인간인 건가 생각했다.
그리고 덧.
기차역 전광판에 자꾸 메시지가 뜨고 방송이 나오길래 자세히 보니까 내일(토요일) 저녁 12시부터 일요일 저녁 12시까지 트랜이탈리아가 파업을 한다는 거다. (이딸로도 포함) 이게 뭔 시추에이션...?
검색해 보니 나는 일요일 오전에 살레르노에서 로마로 이동을 해야 해서 이미 한국에서 예매를 해 놓은 상황. 그런데 내가 탑승할 기차 편에 앞에도 확실하지 않은 건지 물음표 표시와 함께 strike?라는 표시가 떠있다. 오늘 날씨도 그렇고 기차 파업도 말이야, 난 아무것도 안 했는데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이탈리아 기차 파업에 대한 사람들의 후기를 찾아봤다. 이런 상황인 경우, 대체 가능한 편으로 바꾸거나 취소하고 아예 다른 교통편을 알아봐야 한다고 했다. 마침 살레르노역에 내렸고 해당 편 기차표도 가지고 있으니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기차표 창구에 들어가기 전에 직원이 서 있는데 영어를 한 마디도 못했다. 트랜이탈리아 앱을 보여주면서 스트라이크 표시 보여줘도 뭔 말을 하는지 모른다는 표정. 아니, 그렇게 눈치가 없나? 그러더니 본인도 답답했는지 번역앱을 켜서 나한테 들이밀었다. 그러더니 '스트라이크(파업) 맞아'하면서 그제야 안으로 들여보내줬다. 다행히 안에 있는 젊은 직원은 영어를 잘했고 나에게 두말도 않고 (진짜로 기차가 운행을 안 하는 모양) 깔끔하게 환불처리를 해줬다.
자, 그럼 난 대체 뭘 타고 로마로 가야 하나? 버스도 있긴 한데 멀고 힘든 여정이 예상된다. 그래서 다른 쪽에 있는 이딸로 창구 가서 물어보니 그들도 내가 가려는 시간대에는 아직 운행을 할지 안 할지 모른다고 했다. 대신 아침 일-찍 출발하는 6:20과 7:20 두 편은 확실하게 운행을 한다고 했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숙소에 와서 출발이 확정된 7:20 표를 비싸게 끊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돼서 부담되지만 그걸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야간기차 탑승과 하차, 반나절로 들른 폼페이에서 비로 두드려 맞고, 내일 로마로 향하는 기차는 파업이 돼서 취소된 상황. 정말 너무나 길고도 버라이어티 한 하루가 그래도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