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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폼페이에서 화산 폭발만큼의 재난을 경험하다

폭풍우를 헤치며 캐리어 끌고 배낭 메고 기차역까지 2km 걷기

by 세니seny

유적지에서 폼페이역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어디서 타야 하는지 찾아보는데...


버스 정류장 표시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도저히 모르겠다. 그러니까 아까 역에서 여기로 오는 버스 탔을 때 물어봤어야 했던 거다. 내가 그 부분을 놓친 거지.


네이버 블로그에서 찾아봤을 때도 나폴리에서 오는 사람은 많지만 나처럼 살레르노에서 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오는 길 정보는 있어도 가는 길 정보가 없었다. 결국 역으로 돌아가는 버스 정류장 찾기는 실패하고 짐을 들고 이고 지고 역까지 약 2km의 거리를 걸어가는 것으로 결정했다.


전형적인 관광객 대상으로 한 식당에서 먹은 스파게티. (@폼페이, 2024.04)


그러고 나니 시간도 뜨고 배도 고프다. 예정에 없었지만 여기서 점심을 먹어야겠다. 스파게티를 먹으러 한 식당에 들어갔는데 비쌌지만 그냥 먹었다.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맛은 진짜 평범, 무난 그 자체였고 오히려 한국에서 먹는 스파게티가 더 맛있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나는 배가 고팠으니 싹싹 긁어서 다 먹었다. (심지어 자릿세까지 받는 식당이었음) 그러고 나오니 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이제는 돌아가야 했으니 가서 짐을 찾고 앱으로 미리 기차표를 구입했다. 그리고 짐을 이고 지고 끌고 거기에 우산까지 쓰고 걷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건너편에 내가 타야 하는 링크 버스가 보였고 그 버스가 다시 돌아서 사람들을 싣고 역으로 가더라. 저거 어디서 타는지만 알았어도 이 고생 안 하는 건데. 숙소 싼데 잡는다고 사람들이 잘 안 다니는 살레르노라는 다소 듣보잡 도시에 숙소를 잡은 나를 원망했다.


그래, 뭐 까짓것 2km, 기차 출발 1시간 전에 출발했으니 충분히 걸어서 갈 수 있을 거야. 졸라 힘들겠지만. 앱으로는 30분 거리라 나왔지만 나는 짐을 이고 지고 끌고 했으므로 40분 이상 걸린 거 같다.


여기까지는 다 좋다.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출발할 때는 약했던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다. 오, 하늘이시여. 게다가 바람까지 불기 시작한다. 우산이 뒤집어지진 않았지만 작은 3단 우산 써봤자 얼마나 가리겠어. 얼굴이나 겨우 가리는 거지. 차들은 옆에서 쌩쌩 달리고 나 빼고 사람 하나 없는 인도에서 혼자 서가지고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욕을 퍼부었다.


앞으로 여행이 50일이나 남았는데 왜 이렇게 여행을 길게 잡았을까,라는 푸념부터 택시비 좀 아끼겠다고 지금 이게 뭐 하는 거지? 여태까지 쓴 멍청비용이 얼마야 대체. 게다가 앞으로 쓸 돈도 많은데.


새로 산 운동화는 다 젖었다. 젖은 것도 문제지만 흙구정물이 튀어서 더러워지기까지 했다. 양말은 애저녁에 다 젖었으며 바지도 축축하고 달라붙고 캐리어도 가방도 다 젖었다. 캐리어는 확장형으로 산 거라 그 중간 지퍼 부분이 천 소재로 되어있어 불안하다. 이거까지 다 방수되는 건가? 생활방수 정도는 되겠지만 이렇게 퍼붓는 비는 대책 없다. 나중에 숙소에 돌아와서 살펴보니 방수가 아예 안 된 건 아니었지만 워낙 비를 많이 맞아서 가방 안의 옷들이 축축했다. 결론은 조금은 셌다는 것.


2,3분도 안 되는 그 짧은 시간에 비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길거리에 서서 우산 들고 미친 X처럼 실소했다. 그러고 나니 빗줄기가 잠잠해졌고 저 앞에 역이 보였다. 오, 신이시여, 이제 저의 고난은 끝난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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