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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롸이프 Jun 26. 2024

6살 딸과 엄마, 스위스 2주 여행기 (2) 취리히

호숫가에서 백조 깃털 줍기


‘내가 애랑 단둘이 유럽여행을 하다니….’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사람 많은 관광지는 질색인 데다가 아이와 함께 다니는 낯선 곳은 늘 예상치 못한 일이 도사리고 있어 마주하기 두려웠다. 파워계획형 인간인 나는 매일같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육아일상에 6년째 적응 중이다.



롸가 말귀를 어느 정도 알아듣는 나이가 되면서부터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사전에 충분히 설명을 해두는 습관이 생겼다. 주말에 결혼식 가기, 유치원에 가는 첫날 등… 짧게는 며칠 전부터 길게는 일주일, 몇 달 전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반복적으로, 닥칠 상황과 기대되는 태도를 알려줘야 실랑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을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함께 서점에 가서 스위스 관련 책을 몇 권 산 것이다. 서점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육아서적이나 동화책이 아닌 여행 코너로 곧장 이동하면서 대학생 때 불쑥 해외여행을 가겠다고 부모님께 당당하게 지원을 요구했던 철없던 시절이 생각나 헛웃음이 났다. 나는 지금 또 어떤 철없는 마흔의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한 폭의 그림 같은 자연과 이국적인 도시의 모습이 가득한 여행책 속 사진들을 아이도 흥미롭게 보았다. 비행기를 13시간 정도 타야 하고, 타국에서 한국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급기야 가기 싫다는 말을 하기도 했지만 책을 통해 미지의 나라와 여행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로.


24년 6월 3일(월) 드디어 취리히로 출발

기내식에 대한 기대는 별로 없었는데 스위스 항공은 치즈, 초콜릿, 빵 등 디저트가 상상 이상으로 맛있어서 뭔가 출발부터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럴걸 예상했다는 듯이 롸는 낮비행 동안 영어로만 나오는 만화를 몇 시간 내리보다, 잠들다를 반복했다.   


한국에서 오전 10시 비행기로 출발해 13시간 비행이니 취리히 도착할 때는 한밤중이라 졸리다고 칭얼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륙하기 세 시간 전부터 밤잠이 들었다. 18킬로 업고 내려야 하나 싶어 문득 여행 시작이구나 싶었지만, 다행히 밖이 밝아서 그런지 아침에 기상하듯 잘 일어났다.


공항에 내려서 기차를 타고 하룻밤 자기로 한 취리히 중앙역까지 오는데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철도를 비롯한 대중교통이 발달한 것으로 유명한 스위스답게 도착해서부터 여행 마지막까지 큰 캐리어 한 개, 아이를 태울 수 있는 기내용 캐리어 하나로 엘리베이터(Lift), 역 플랫폼을 이용하는데 여자 혼자 큰 무리 없이 다녔다.


물론 돌발상황의 가능성을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스위스 패스 15일 이용권을 1등석으로 구매했다. 2등석과 가장 큰 차이점은 여행객이 많은 성수기, 출퇴근 시간 등 혼잡한 시간에 짐을 가지고 여유 있게 탈 수 있다는 점이다. 아이 데리고 다니면서 시간과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카드값 고민은 최대한 나중에 한다.  



놀이터가 있는 놀이칸이 2등석이라 잠깐 후회를 하기도 했으나, 스위스 횡단을 하는 동안 각각의 이동구간에서 놀이칸이 있는 기차는 생각보다 많이 운영되고 있지 않았다. 스위스 철도청 앱인 SBB Mobile에서 기차시간뿐 아니라 놀이칸(Family zone) 여부까지 곰돌이 얼굴 표시로 확인이 가능하다. 1층 기차에도 표기가 되어있지만 ‘Family zone without play area’로 되어있고 좌석 테이블과 주변이 캐릭터 랩핑으로 되어있을 뿐 ‘놀이터’는 2층 기차에만 존재한다.


취리히 호텔 도착 후 간단히 마트에서 장을 보기로 한다. 스위스 주요 마트는 쿱(Coop), 미그로스(Migros), 알디(Aldi), 조금 저렴한 리들(Lidl) 정도가 SBB역 중심으로 대도시마다 포진해 있다. 주말은 대부분 문을 닫지만 역 주변 마트는 주말, 평일 상관없이 늦게까지 연다.

 

우리도 미그로스에서 저녁거리로 납작 복숭아, 요거트, 조리식품 등 서너 가지를 샀는데 30프랑(4만 6천 원)을 훌쩍 넘는 걸 보고… 스위스 물가 체험으로 호텔에서 하루를 마무리했다.


저녁 8시부터 잠들어서 한잠 자고 같이 일어나니 새벽 3시… 조식까지 3시간 반 남았네? 날이 밝는 데로 근처 공원을 가로질러 호숫가를 가보기로 했다. 오후에는 슬슬 루체른으로 가는 기차를 타야 하기 때문에 시내구경보다는 산책의 여유로움을 만끽하기로 했다.



다행히 롸는 여행 왔다는 걸 잘 인지하고 있는지 달라진 환경에 눈이 휘둥그레하다 그림 삼매경이다. 여행 내내 틈틈이 자연과 동물을 그렸다. 덕분에 어딜가든 종이와 색연필은 가방에 챙겨다녔다. 아침에 일어나 한 장, 공원 벤치에 앉아서 한 장, 비둘기 보고 한 장…



공원에는 열 평 남짓 되어 보이는 아주 작은 실내 동물원이 있었다. 마침 주변 어린이집에서도 어린아이들이 산책을 나와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다니는 도시 곳곳마다 도보로 이동이 가능한 공원이 항상 있었고, 그 안에는 자연 놀이터나 이런 소규모의 동물원이 존재했다.


동물원은 하루 날 잡아 작정하고 가는 곳이 아니던가. 우리 동물원과 비교하면 동물원이라 부르기 머쓱할 정도로 볼품없고 규모도 작지만, 애초에 그러지 않아야 할 이유도 없지 않을까.



동물원을 끼고 공원을 한 바퀴 정처 없이 돌았고, 롸는 호숫가에서 백조 깃털 줍기를 시작으로 물가에서 한참을 놀았다.



좋은 날씨에 너랑 나, 사랑하는 우리 둘이 좋은 거 보면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는데 뭐가 더 필요했을까. ’심심해하면 어쩌지 ‘ 걱정이 한순간에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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