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의 새 앨범 감상기
2021년 내가 그토록 열광했던 앨범 <Happier Than Ever> 이후로, 2024년 5월 빌리가 새 앨범을 들고 나타났다.
앨범 제목은 'HIT ME HARD AND SOFT'. 한 앨범의 모든 수록곡이 이렇게 주옥같다고 느낀 건 정말 오랜만이다.
멜론에서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의 새 앨범 소개 글을 보니 '21세기를 대표하는 새로운 거장'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그렇다. 그녀는 2001년생이며 11살에 작곡을 시작했고, 데뷔 앨범이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오르고 그래미 어워드 수상을 했으며 전 세계가 주목하는 아티스트다. 나는 그녀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인지 몰랐다. 내가 그녀의 팬이 된 것은 그녀의 두 번째 앨범인 <Happier Than Ever>을 듣고 나서다.
대중들에게 'bad guy'라는 힙하고 강렬한 노래로 유명한 빌리 아일리시지만, 그녀는 사실은 서정적이며 파괴적인 노래의 대가다. 발라드가 어떻게 파괴적일 수 있냐고? 그건 그녀의 두 번째 앨범 타이틀곡인 'Happier Than Ever'을 들으면 알게 된다. 얼핏 들으면 루즈하고 몽롱한 분위기 같지만, 냉랭한 태도의 욕설 섞인 가사와 후반부에 소리 지르는 스크림 파트는 파괴적인 감정에서 오는 희열을 느끼게 해 준다. 이 노래 하나만 가지고서도 긴 글을 하나 써 내려갈 수 있지만, 오늘은 그보다 내가 지금 몇십 번이고 반복해서 듣고 있는 그녀의 최신 앨범에 대해 느낀 감상을 성토해내고 싶다.
내가 이 앨범의 감상기를 참을 수 없이 쓰고 싶었던 이유는 10곡 각각이 에피소드 형식으로 된 드라마를 보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나 마지막 수록곡인 'BLUE'에서 그런 확신을 더 강하게 받았다. 이 곡에는 앞의 다른 노래에 쓰인 가사와 표현이 그대로, 또는 비슷하게 쓰이면서 마치 꿈속에서 내가 느끼는 감정을 혼란스럽게 집약해 놓은 느낌을 준다. 앨범 커버와 가장 맞닿아 있는 곡이다. 그녀는 물에 빠진 채로 그 심연에 몸을 맡긴 채, 허우적대지도 못하고 그저 가만히 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문을 응시하며 서서히 가라앉고 있다.
빌리는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감정을 간단하고 추상적인 문장으로, 그러나 또는 그래서 아주 정확하게 표현해 낸다. 그런 감정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알맞은 목소리, 중독적인 멜로디, 틀에 박히지 않은 박자감, 꿈속 저 멀리서 들었던 듯한 노이즈, 빌리 특유의 스크림(소리 지르는) 코러스가 어우러져 노래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더욱 명확해진다. 나도 알 수 없었던 내 마음과 감정을 나 대신 표현해 주기 때문에, 나는 이 앨범을 무한 반복해서 듣게 된다.
다음 글에서는 앨범의 수록곡에서 느꼈던 의미를 나름대로 풀어서 써보려 한다. 작사가가 의도한 의미가 아닐 수도 있지만 창작물이라는 것은 공개된 순간 그에 공감하는 다양한 청자들이 자신의 경험에 기반해 펼치는 수많은 해석의 여지를 청자들에게 제공한다. 그렇게 새로 해석된 곡이 진정한 의미로 우리 개개인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그 순간부터 그 곡은 누구의 노래가 아닌 나 자신의 일부가 된다. 카카오 프로필 뮤직도 그런 게 아닐까?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눈에 보이지 않는 추상화된 형상으로 그려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