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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fu Nov 12. 2021

카카오 늪


카카오톡이라는 늪에 빠졌다. 처음엔 나만의 개성 있는 알림음을 설정하고, 배지로 메시지 도착 개수를 확인하는 것은 기본이고, 대화 내용까지 미리 보며 열정을 다했다. 그만큼 언제나 열려있는 반가운 메신저였다. 그게 바로 문제였다. 언제나 열려있단 것. 네이트온처럼 상대가 접속해야 대화를 걸거나 몰래 접속할 수도 없고, 이건 뭐 대기조도 아니고 누구나 언제라도 내게 노란 풍선을 띄울 수 있었다. 시간의 제약 없이 언제든 소통할 수 있단 매력이 족쇄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이른 아침부터 점심시간, 퇴근 후 밤까지 무작위로 날아오는 매너 없는 말풍선에 더 진절머리가 났다.


이제 카카오의 알림은 꺼진 지 오래다. 그냥 생각날 때 들어가 보는데도 밀려있는 숙제처럼 차곡차곡 쌓여있는 대화창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시작이 언제였는지도 알 수 없는 역사적인 대화방만 대여섯 개다. 먼저 씹지도 못해, 언제부턴가 내게 무의미해진 대화 상자는 늘어만 갔다. 그렇게 나는 카카오톡이라는 감옥에 갇혔다. 최근 용기를 내 답장의 텀을 길게 하거나 성의 없게 하고 먼저 씹어도 봤지만, 효과가 없었다. 씹고 나서 일주일 만에 무슨 일 있냐고 걱정스레 다시 톡을 이어가는 친구를 보고 심지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 내가 뭐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고작 카톡 답장하나 하는 게 뭐 힘들다고, 자신을 토닥여가며 이어가고 있지만 지쳐있단 사실은 여전하다.


모두와 대화를 끊고 싶은 건 아니다. 대화 자체가 스트레스를 주는 사람이 있다. 특히 일방적으로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최악이다. 무슨 주제를 꺼내든 자기 위주다. 사소한 자신의 일상과 자랑을 들어줄 방청객이 필요한 부류다. 이런 사람이 대체로 다른 이의 행복에는 관심 없고, 안타까운 소식에는 귀를 잘 기울이며 가십거리로 여긴다. 질기기도 하고, 눈치도 제로라 끊어내기 힘든 스타일이다.


역시 정답은 솔직함이 아닐까 싶다. 요즘 나는 카카오톡에 관심이 없고, 매일 주고받는 의미 없는 텍스트보다 가끔이라도 얼굴 보고 대화를 나누는 편이 훨씬 좋다고. 그렇게 좀 쳐내고 부담 없이 대화가 이어지는 한두 명과의 톡은 괜찮을 것 같다. 근데 혹시 얽혀있는 인간관계 속 누구와는 이어가고, 자신과는 끊어낸 걸 알게 돼 섭섭함을 느낄까 걱정이다. 그리고 이 무서운 카카오의 늪에 빠진 지 오래라, 말풍선이 사라지면 우리의 관계도 소홀해질까 하는 모순된 걱정도 든다. 그렇다. 걱정 인형에겐 카카오톡 하나도 쉽지 않다. 그렇게 고민 속 오늘도 노란 말풍선만 야속하게 쌓여간다.  



이 글을 슬쩍 써놓은 지 한 달 정도가 흐른 지금, 어쩌다 보니 많은 대화방이 정리돼 숨통이 트인다. 고맙게(?) 먼저 씹어준 친구도 있고, 솔직하게 내 생각을 전하기도 했다. 걱정과는 다르게 너무 잘 이해해주었다. 참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고 있었나 싶다. 좋게 말하면 타인에 대한 배려로, 실은 미움받기 싫어 나의 불편함은 뒤로한 채 상대의 감정을 살피기 급급했다. 이렇게 스트레스받을 것도 아닌 일에 끌려가며 나를 힘들게 하지 말아야겠다. 남은 말풍선들은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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