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찡. 유키할배. 유키할부지. 내게 여러 애칭으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다. 워낙 유명한 분이라 알고는 있었지만, 그의 곡은 잘 몰랐다(나중에 알고 보니 유명한 곡이 정말 많았다). 유키찡을 제대로 만난 건 'Meditation'을 듣고 나서다. 어쩌다 듣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전주부터 빠져들었다. 잔잔한 건반 소리가 울림을 주더니 이내 한 사람의 삶이 펼쳐졌다. 쉽지 않았던 인생의 순간을 너무나 담담히 들려주었다. 그 담담함 속에 담긴 이야기가 너무 아파 눈물이 흐르다, 어느새 위로를 건넸다. 부족한 나의 글로 설명하기 힘든 한 삶이 오롯이 전해졌다.
한 장면도 떠올랐다. 바람이 거세게 몰아치는 언덕이었다. 그곳에 따뜻한 미소를 지닌 사람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안심시키며 먼저 걸어 나갔다. 한 걸음이라도 잘 못 디디면 죽을 것만 같은 아찔한 상황이었지만, 용기를 내 조심스레 따라가다 보니 어느덧 언덕배기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꽃노을에 물든 온화한 바다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바다를 바라보며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다시 혼자가 되었다. 평생 인연을 이어가고 싶은 사람이지만 어쩔 수 없음을 알기에, 이 만남을 마음 깊이 간직한 채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내려왔다.
나는 3분 27초의 피아노 선율에 깊이 빠져들었고, 그 시간은 감동이 되어 다가왔다. 'Meditation'은 내게 피아노의 선율이라는 좋은 친구를 소개해 준 선물 같은 곡이다. 유키찡의 선율은 나의 일상 가까이 함께하고 있다. 아침의 시작을 응원해주고, 힘이 들 땐 마음의 안식처를 내어주고, 잠 못 드는 날엔 자장가를 들려준다. 글을 쓸 때도 빠질 수 없는 짝꿍이다. 그의 선율을 듣고 있으면 삭막한 도심을 벗어나 잠시나마 숲속을 걷는 기분이 든다.
2018년, 유키찡의 콘서트에 갔다. 왠지 모르게 긴장되었다. 오래된 친구를 실제로는 처음 보는 기분이라고 할까? 박수와 함께 나타난 유키찡은 사진으로 보던 모습 그대로, 푸근한 미소를 가진 다정한 할부지였다. 어색하지만 귀여운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며 공연이 시작됐다. 그렇게 자주 듣던 곡이지만 원곡자가 눈앞에서 직접 연주를 들려주니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이 더해졌다. 그곳에서 듣는 'Meditation'은 또 어찌나 반가운지 눈물을 겨우 참았다. 나의 오랜 벗 유키 할부지가 어느덧 칠순이 되었다. 할부지가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아름다운 선율을 지금처럼 건강하게 오랫동안 들려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