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 Young Kim Jan 14. 2018

내일 짤려도 오늘은 행복: 평범한 개발자의 미국 생존기

김세연(Seyeon Kim, Software Engineer @ MS)

옆자리 동료가 갑자기 보이지 않는다. 어디 몸이 아픈가? 아니, 그는 해고당했다. 아마 이제는 마음이 매우 아프겠지. 한 달 전 동료 한 명이 해고가 되었을 때, 오늘 사라진 친구와 나는 며칠 전만 해도 해고에 대한 이야기를 같이했었다. 너무 무섭다고. 그리고 지금 혼자가 된 나는 더더욱 무서워졌다.


한국에서 학부와 병역 특례를 마쳤고, 딱히 특출난 점이 없던 나는 공부를 더 하고 싶었다. 공부에 열망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이대로 취업을 하면 아무 변화 없이 평생 똑같이 일하게 될 것 같았기 때문에 변화를 준답시고 선택한 것이 미국 석사였다. 처음에는 석사를 하면서 박사와 취업 중에 고민할 요량이었으나 반 학기가 끝나기도 전에 마음을 정했다. 공부는 나의 길이 아니니 취업을 해서 돈을 벌자.


취업 문을 두드린 이후로 인턴을 두 차례 경험하고, Bank of America에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한 뒤 3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옮기게 된 다음 직장이 바로 지금 다니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다. ‘차이기 전에 찬다’는 느낌으로 ‘짤리기 전에 옮기자’라는 생각이었는데 평생의 운을 다 써버린 것 같다. 나는 뛰어난 개발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프로그래밍을 너무 좋아해서 매일 공부하며 코딩하는 삶을 살지도 못하기에 지금처럼 위태위태한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이 마땅할지도 모른다.


내 특징이라고 한다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고, 새로운 것을 경험해보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늘 전공과는 상관없는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 그만큼 훌륭한 프로그래머와는 거리가 멀어졌지만 조금 더 다채롭고 재미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고, 게다가 아직은 어찌어찌 미국 회사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나는 내가 범재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부족한 만큼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서바이벌 기술을 잘 체득했던 것 같다. 영어도 미진한 내가 미국에서 얼마나 해낼 수 있는지, 직접 도전 중인 생존기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키포인트:

-          이직할 가능성이 있는 회사들의 정보와 리크루터의 연락처는 상비약처럼 늘 모아두어야 한다.

-          주머니는 털려도 멘탈은 털리면 안 된다.

-          영어 영어 영어. 한국어로 치면 로버트 할리는 아니어도 최소한 사유리 정도는 되어야 한다.  


전 한국에서의 커리어에대해 간단히 요약한다면?

학부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병역특례로 Java를 주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근무했다.  


미국으로 오게 된 계기는?

남들처럼 거창한 계기는 없었다. 서울 촌놈으로 다른 도시도 가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기왕에 석사를 해볼 거라면 망하더라도 가오 있게 미국 한번 가즈아!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주변에서 석사들이 고생하는 걸 너무 많이 봐서 어차피 고생할 거 미국학교 한번 써보기나 할까? 했다가 태평양을 건너게 되었다. 루비콘강은 한번 건너면 끝이라던데, 어쩌다 보니 벌써 8년째 이러고 있다.  


현재 미국에서의 커리어를 간단히 요약한다면?

시작은 UCLA에서 컴퓨터 공학 석사였다. 처음 미국으로 올 때에는 박사에 대해 고민도 했지만, 수업 하나를 듣자 마자 어떻게든 졸업이나 해야겠다는 목표로 바뀌었다. 아무래도 영어를 못 하는 편이라 수업을 따라가기도 힘들었고 사실 공부도 열심히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여행이라도 많이 다니고 많은 걸 경험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여러모로 두드리던 취업길들이 하나둘씩 열리면서 지금 7년째 미국에서 직장인으로 생활하고 있다.


처음은 근무 경험은 롱비치에 있는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했던 인턴이었다. 방학 중에 하는 일이기 때문에 기간이 길지 않지만, Front-end Web app을 만드는 프로젝트로 Javascript와 C#을 주로 쓰는 일이었다. 이쪽 일을 회사에서 해본 것은 처음이었고, 나름대로 재미있는 경험이었지만 인턴을 마친 후 정직원 채용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래서 석사 과정 마무리를 해가면서 다시 취업 활동에 뛰어들었고 또 다른 인턴 기회를 얻게 되었다. 산타모니카에 있는 기업이었는데 회사 위치도 너무 좋았고 분위기도 전형적인 IT 기업 느낌이어서 굉장히 좋았다. 이곳에서도 C#을 가지고 CDN을 활용하는 API 툴을 만드는 일을 했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정직원 채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LA의 월미도, 산타모니카 - LA 날씨와 바다는 축복 그 자체! 그런데 난 왜 옮겼을까?

왜냐하면, 내가 Bank of America에서 오퍼를 그때쯤 받았기 때문에 바로 그만두고 옮겨가게 되었다. 원래부터 금융 쪽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굉장히 관심이 많았기에 꼭 가보고 싶었다. (이때만 해도 3년도 되기 전에 옮기게 될 줄은 몰랐다) 내가 속한 팀은 회사의 data를 관리하고 활용하는 Framework을 개발하는 업무였다. 하지만 소프트웨어 기업과는 문화도 다르고, 업무도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어려운 측면이 많아서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이직을 몰래 준비했다.


여기까지는 모두 LA 근방에서 있었던 일들이고, 현재 직장인 마이크로소프트로 이직하면서 일도 새롭고 지역도 새롭게 시애틀 근처로 옮기게 되었다. 현재는 Office Excel 팀에서 C++를 사용하는 개발자로 지내고 있다.

이 커리어를 요약하자면 그냥 뽑아주는 대로, 되는대로, 시키는 대로 운명 따라 다니면서 달려왔던 것 같다. 전문성이 뚜렷하지도 않고, 계획 없이 살아온 것 같이 보일수도 있겠지만 나름의 항변을 하자면 뛰어나지 않은 개발자가 살아남기 위한 취업활동 발버둥의 결과로 이어진 것이라 스스로는 굉장히 만족하고 있다. 하지만 추천할 것도 아니라고 본다. 가장 좋은 건 훌륭한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마이크로 소프트에서의 경험은?

미국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일하면 피할 수 없는 것이 인도사람들과 중국 사람들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내가 있는 팀은 백인 비중이 높은 편이다. 그래서 다른 회사에 있을 때 보다 진짜 미국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어린 친구들도 많고 오래 있던 사람도 많아 신구 조화가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보기에 느낀 나이와 실제 나이의 갭이 커서 놀라긴 했지만 어쨌든 잘 균형 잡힌 좋은 팀이다.


내 실수담을 한번 이야기해 보면, 내가 바꾼 코드가 프로그램에 문제를 발생 시켰다. C++의 고질적인 메모리 관리 이슈였는데, 실제 제품에 코드가 올라간 다음에도 몇 달간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부터 프로그램이 랜덤하게 죽는 로그가 발생하기 시작해서 알아보기 시작했고, 그렇게 도달한 지점이 내 코드였다.


뭔가 부끄럽기도 하고, 죄송스런 마음에 시말서라도 써야 하나 고민하고있었다. 이러다 해고라도 당하는거 아닌가 걱정을 하면서 매니저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사과로 일단 시작을 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말해주기를, ‘걱정할 필요 없다. 코드리뷰를 한 사람들도 그걸 잡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너만의 책임이 아니다. 빨리 이슈를 해결한 것이 더 중요하다.’ 라는 대인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아무일 없이 넘어갔다.


물론 내가 클라우드와 같은 팀에서 비슷한 문제를 냈다면 얘기가 달랐겠지만 그렇더라도 실수에 대해 굉장히 관대했고 함께 책임을 가져가는 모습에 크게 감동했다. 이게 미국 문화라고 얘기 할 순 없지만 난 좋은 팀에 있는 건 확실하다. 아, 하지만 종합적인 퍼포먼스 기준으로 해고하는 것은 가차 없다. 실수와 평가는 구분된다.


인터넷에 매우 많은 미국 회사에서의 경험담들이 돌아다닌다. 절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 모든 것이 일부분일 뿐이고 케바케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처럼 큰 회사의 경우 더더욱 팀마다 성격이 완전히 다르고, 작은 회사의 경우 역시 회사마다 새로운 나라를 경험하는 듯이 다르다. 내 경험이 여러 회사의 문화를 대변할 수는 없지만, 현재 팀에서의 근무 경험은 굉장히 만족스럽다.  


미국 취업까지 어떤 준비를 어느 기간 동안 했나?

나는 다행히 미국에서 석사라는 본진 자원이 있었기에 취업이라는 앞마당으로의 연계가 수월한 편이었다. 큰 꿈을 품은 것과는 대비되게 직업학교에 다니는 느낌, 학과 공부보다는 취업을 하기 위한 활동이 더욱 주가 되었다. 이력서를 정말 멈추지 않고 날려 댔다. 취업은 어차피 1승 싸움이기에 어디 하나만 걸려라 라는 생각이었지만 생각보다 그 1승은 쉽게 거둘 수 없었고, 남들보다 늘 뒤처져 있었다.


처음 석사를 시작했을 때, 학교에 취업 설명회가 열렸고 수많은 기업이 와서 부스를 열었다. 지원하려는 학생들의 줄도 구름같이 길었고 처음 보는 광경에 당황했지만 당황한 내 정신머리를 뒤로 한 채 이력서를 뿌려 댔다. 그때는 뭘 해야 하는지도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어리바리한 모습으로 버벅대며 인터뷰를 진행했고, 대부분 가차 없이 퇴짜를 받았다. 그렇게 첫 쿼터가 지나면서 약간의 요령을 터득했고, 그다음에는 더 많은 이력서를 뿌렸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취업 플랫폼을 통해 정말 아무 회사나 막 지원하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드물게 인터뷰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명민한 방법은 절대 아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되는 실패를 양분 삼은 조금의 경험이 쌓이면서 좀 더 많은 인터뷰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던 중 크리티컬 럭키 샷이 뜬금없이 나와서 처음으로 인턴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모호한 표현이지만, 그랬다. 운이 좋았다.


석사를 마칠 때쯤 나는 다시 취준생 모드가 되어 있었다. 정직원 자리를 졸업 전에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만 해도 이미 이력서는 업데이트되어 버전 2.0에 이르렀고 취업 과정 전체가 익숙했기 때문에 여러 회사와 연봉 네고를 할 수 있겠거니 하는 김칫국을 마시고 있었다. 하지만 크나큰 오산, 취업과정은 누구에게도 녹록지 않다는 걸 다시 체험했다. 이전보다 인터뷰 기회는 좀 더 있었으나 여전히 전화 인터뷰라는 첫 관문도 혹독했다. 혹여 온사이트 인터뷰까지 진행이 되어도 내공 가득한 수많은 면접관을 이겨내기에 내 실력은 너무도 부족했다. 이번에도 결국 쓴 방법은 ‘묻지마 지원’, 모든 취업 설명회와 LinkedIn 같은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하여 멈추지 않고 지원했다. 그러던 중, Bank of America와의 인터뷰에서 그해의 운을 다 소진하며 오퍼를 받을 수 있었다.


금융권에 가보는 것이 목표 중 하나였고, 그 목표를 이뤘다. 끝! ... 이렇게 인생이 끝나면 조금 아쉬울 것 같았다. 그 아쉬움은 소프트웨어 기업이 아닌 곳에서 개발자로 있을 때의 느낌이었고 기회가 될 때 이직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 이직과정은 처음 취직 준비할 때보다 상대적으로 스트레스가 덜했다. 왜냐하면 이미 H1B 취업비자를 손에 넣어 신분 문제가 조금 수월했고, 월급을 꼬박꼬박 받고 있었기에 당장 먹고 살 걱정이 없었다. 짬짬이 개인 시간을 활용해서 천천히 장기적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 


또한 LinkedIn이나 개인 이메일을 통해서 리크루터들에게 종종 연락이 왔고, 내가 능동적으로 잡을 구하지 않더라도 수동적으로 구직활동을 할 수 있었다. 나에게 연락이 먼저 온 회사 중에 괜찮겠다 싶은 회사들만 이력서를 보내주면 되기 때문이고 내 이력과 포지션이 맞는 경우에 연락을 받기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도 그중 하나였다. 이런 대기업은 다양한 창구와 여러가지 방법을 활용해서 인터뷰를 진행하기 때문에 다양한 리크루팅 기회가 많다. 내가 지원했을 때는 온라인 코딩 시험을 하는 방식이었고 그 시험에서 괜찮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모아서 대규모로 온사이트 인터뷰를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했던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운 좋게도 이직을 할 수 있었다.


이처럼 많은 인터뷰 패배 끝에 몇 개의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 처음 취업이 제일 어려웠고 점차 나아지고 있음을 느꼈다. 많은 패배만큼 준비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지만, 너무 조급해하지 않으면 기회는 많이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미국 취업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

취업의 순간마다 운이 좋다고 언급했는데, 실제로 그랬다. 물론 공부도 많이 하고, 정말 수백 개의 기업에 지원하기도 하면서 많은 노력을 했지만..  노오오력을 아무리 해도 패배의 쓴잔은 계속되었다. 계속 떨어지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굉장히 드문 승리의 순간에는 기대하지 못한 행운이 나의 부족함을 메꿔줬다. 예를 들면 인터뷰 질문이 어제 풀어본 문제가 그대로 나오거나 경쟁이 심하지 않은 상황이 간혹 펼쳐지는 것 말이다. 물론 운만으로 헤쳐 나갈 순 없겠지만, 그 언제 올지 모르는 찰나의 행운을 위해 쉬지 않고 계속 지원한 것이 나의 무식한 노하우였다. 그리고 이 노하우를 수행하기 위해 중요한 것이 세 가지였다. 취업 정보, 영어, 그리고 멘탈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취업 정보는 사실 인터넷에 가득가득하다. 어디에서나 쉽게 얻을 수 있고 개발자의 경우는 늘 구인공고가 대기 중이다. 물론 그렇다고 취업하기가 쉬운 것은 아니지만 기회가 광범위하다 보니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시작이 어렵다. 하지만 각 회사에는 리크루터들이 있고, 혹은 리크루팅 에이전시들이 나보다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링크드인에 프로필을 올려 으면 몇 개 검색어를 통해 나를 찾은 뒤 메시지를 보내기도 하고, 이전에 지원했던 회사의 리크루터가 회사 내 데이터베이스 검색을 통해 연락하기도 한다. 리크루터들은 그야말로 취업의 프로들이다. 그들 자신도 회사를 자주 옮기기도 하고, 지원자들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그들은 적이 아니고 나의 취업을 돕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나에게 연락할 수 있도록 열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연락이 오면 답변을 하는 것이 좋고, 한 번이라도 메시지를 주고받은 리크루터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서 관리하는 것이 좋다. 언젠가 새로운 기회를 찾아 나설 때, 그들이 든든한 리소스가 되어 줄 것이다.


리크루터들은 나를 도와주지만, 영어는 그렇지 않았다. 영어는 늘 내 반대편에 서서 나를 더 바보처럼 만들고 삶을 어렵게 만들었다. 전화 영어가 특히 그러했는데, 한번은 구글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거의 30분을 문제가 무엇인지 이해하는데 소진했었다. 미국 본토 발음이 아닌 제3의 영어 억양과 발음들은 모든 문제의 난이도를 올리는 데 기여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 또한 나의 엉터리 발음과 문법을 이해하는데 어려워했고 내가 멍청해 보이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개발만 잘하면 된다던데?”라고 많이들 되묻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영어가 굉장히 중요했다. 잘하는지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말 한마디 없이 가능할까? 분명한 최소 요구치는 존재하고, 그 요구치가 사람마다 회사마다 다를 뿐이다. 영어 때문에 자신감 잃을 필요는 없지만, 영어가 나의 가는 길 발밑의 레고 조각이 되지 않도록 연습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멘탈이다. 본인이 시간과 에너지가 허락하는 한 몇 개든지 회사에 지원할 수 있다. 다만 몇 가지 멘붕을 일으키는 흔한 예들이 있다. 이력서를 넣고도 몇 날 며칠이 지나도록 답이 없는 읽씹 같은 상황이 벌어지거나, 혹은 전화 인터뷰 후에 아무 대답 없는 너, 그리고 온사이트 인터뷰 도중 날 뽑을 생각이 1도 없어 보이는 게 분명해 보이는 면접관… 이런 비슷한 경험들이 쌓일수록 인터뷰 내공은 분명 늘어가겠지만 계속되는 거절감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멘탈은 점차 파스스 분쇄되어 간다. 이 과정들은 소개팅이나 선을 볼 때와 비슷하다. 날 싫어하는 면접관 앞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소개팅 나가서 나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을 만났을 때, 주선자를 생각하며 끝까지 매너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기다려도 애프터 신청이 오지 않더라도 어디에 화를 낼 수도 없다. 이러한 마음의 상처는 취업 과정에서도 자명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 기간에 겪는 거절감들은 ‘내가 왜 취직하려 하는지 자괴감 들어’를 공감하게 한다. 중요한 것은 스트레스, 멘탈 관리다. 행복하자, 아프지말고. 마음이 아파도 아픈거다. 자신을 아끼고 격려하며 정신적 고립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취업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당신이 훌륭한 개발자라면 이 모든 것이 쓸데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같이 그저 그런 해고를 걱정하는 흔한 개발자가 이 글을 본다면 분명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어렵지만 할 수 있다는 단초를 보여주고 싶다. 

 

취업 후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영어를 못 하는 이민자로서의 삶과 흡사 유목민 같은 잦은 이사는 아주 진절머리가 난다.

나는 여기에선 외국인, 키도 작고 영어도 어눌한 한국 사람에 불과하다. 문화의 갭은 이해가 가능하나 언어의 미진함은 해결도 어렵고 모든 일에 부딪히게 된다. 그동안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각종 보험이나 통신, 집 월세 계약 등등 아주 사소한 일도 힘들고, 혹은 아플 때 병원에서 아픔을 표현하는 쉬웠던 모든 일도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개인적으로는 모든 일에 있어서 가능한 한 전화를 피하고 이메일이나 채팅 메시지를 선호한다. 스피킹-리스닝 보다는 리딩-라이팅으로 해결 보려는 몸부림이다. 그마저도 순탄치 않은 것은 당연하다. 거기에 취업을 할 때마다 미국인 보다 훨씬 긴 서류 작업과 매번 관리해야 할 비자 및 신분 작업도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그리고 이사도 아주 고질병이다. 처음 와서 얼마나 짐이 있겠나 싶겠지만 점점 늘어나는 짐은 갈수록 가관이다. 처음 7년 동안 집 주소가 7번 바뀌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말하길 이게 평균이니까 불평하지 말라고 한다. 지금 처음으로 1년 넘게 같은 주소를 쓰고 있어서 모처럼 만에 기쁘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아직 싱글이기에 남들의 반의반도 안된다는 것에 안도한다. 좀 더 지나면 익숙해지지 않을까? 라는 멍청한 기대를 여전히 하고 있다. 월세도 엄청 비싸고, 대중교통도 불편해서 생활하기가 쉽지 않다. 한국도 어렵지만, 미국은 체감상 더 어렵다고 느꼈다. 역시, 세계 어느 곳이나 주거문제는 해당 국가의 NP-Hard 문제 같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직하고자 하는 분들께 하고싶은 말?

미국이 결코 정답은 아니다. 세계 굴지의 회사에 취업했다고 아름다운 미래만 가득한 것이 아니고 각자의 상황 속에서 어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겨내야 할 장벽들이 많이 있다. 미디어에 소개된 화려할 것 같은 생활 뒤에는 백조의 발처럼 부지런한 움직임이 당연스레 따라온다. 더 이상 미국은 자유와 기회의 나라가 아니다. 사회 계층 간의 이동은 그 어느 때보다 둔화하였고 이민자에게 각종 제약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인종차별을 당할 수도 있고, 당신이 10분 전에 있었던 곳에서 총기사고가 발생할 지도 모른다.


더 이상 미국은 자유와 기회의 나라가 아니다. 사회 계층 간의 이동은 그 어느 때보다 둔화하였고 이민자에게 각종 제약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인종차별을 당할 수도 있고, 당신이 10분 전에 있었던 곳에서 총기사고가 발생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미국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있고, 비좁던 시야가 크게 열릴 기회가 되었다. 당신이 있어야 할 곳이 한국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해외 진출의 막연한 두려움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 글이 미국에서의 당신 모습을 간접 체험하게 하는 상상을 주길 바라고 그 경험이 용기가 되길 소망한다.   


Horseshoe Bend, Arizona. 미국의 축복 중 하나는 세계적인 자연경관을 손쉬운 국내 여행으로 접할 수 있다는 점.

본 글은 창발출판에서 준비중인 '우린 이렇게 왔다'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더 관심이 있으신 분께서는 다음 링크에서 프로젝트를 후원하시고 저자들과의 웨비나 및 다양한 혜택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후원 홈페이지: https://tumblbug.com/changbalpub

이전 07화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디자이너의 삶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