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격으로 데이터 팀을 만들고 운영하기
처음에 네이버 서치에서 데이터 사이언스 & 엔지니어링 팀을 만드는 역할이 주어졌을때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미션의 무게도 있었지만 미국에서 주로 한국에 있는 팀원들과 일하는 부분도 잘 될까 싶었다. 그후 1년 반, 그동안 조직을 이끌면서 여러 배움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어렵고도 보람있는 부분은 구성원과 함께 목표를 세우고 달성해가는 리더십 부분이었다. 시행착오도 많았고,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그동안 느낀 교훈을 정리해볼까 한다.
일을 하다보면 바쁠때도 있고 한가할 때도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더 여유있는 상황에서 더 좋은 의사결정을 내리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 있으니, 여유는 누구에게나 좋은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에 더 나아가 리더의 여유는 행복한 조직을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말하고 싶다. 조급한 리더는 말과 행동으로 조직에 스트레스를 주고, 자신의 우선순위와 목표 달성을 위해 구성원을 갈아넣을(?) 것이며, 이런 조직에서 오래 버틸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여유를 갖기 위해서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리더가 조직 전체의 우선순위를 이해하고 팀 전체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최적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매순간 고민해야 한다. 계속 쏟아져 나오는 신기술과 업계 동향을 이해하고 구성원과 논의하여 최적의 기술적인 선택을 내려야 하는 것도 테크 업계에서는 중요한 일이다. 리더의 여유는 이런 부단한 노력에서 나오니, 리더는 물밖에서는 우아해 보이지만 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서 헤엄치고 있는 백조와 같은 처지라는 생각도 든다.
또한 매일의 업무에 있어서도 마음의 여유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필자는 하루 일정 전체를 회의로 채우기보다 중간에 30분이라도 비워 두고 다음 일정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같은 이유에서 월요일 오전과 금요일 오후 늦은 시간은 한 주를 준비하고 돌이켜 볼 수 있는 시간으로 최대한 비워두고 있다. 그리고 저녁 시간에 한국에 있는 팀원들과 소통하는데 집중할 수 있도록,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미국 시간으로 낮에 하려고 한다.
흔히 리더를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고 자존심을 세울 수 있는 자리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한 중요한 덕목은 자존심을 버릴 줄 아는 것이다. 여기서 자존심은 다른 사람 앞에서 내세우는 위신과 체면을 가리키며, 내면의 자존감과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오히려 내면의 자존감이 확고할수록 다른 사람 앞에서 체면치례를 할 필요가 줄어드니, 불필요한 자존심을 세울 일이 줄어들 것이다.
자존심을 버리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리더로서 중요한 의사결정이나 업무상 실수가 있을 때 이를 훌훌 털고 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제 실수입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스스로 잘못한 일이 있을때 이를 정확히 인정하고 넘어가려고 한다. 이렇게 실수를 인정하는 리더 밑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서로의 잘못을 감싸주는 조직 문화가 싹틀 수 있지 않을까.
원래부터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강요하거나 스스로 강요받는 것을 힘들어하는 성격 탓에, 그리고 15년간의 미국 생활의 영향으로 필자는 어떤 영역이건 개인의 의사 존중이 최선이라고 믿어 왔고 실제로 조직 운영에 이를 적용하려고 애써 왔다. 예를 들어 DnA 팀에서는 구성원에게 주기적으로 Growth Goal을 작성하고 이를 업무 담당자 결정에 고려하며, 이런 노력이 어느 정도 구성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의 의사 존중이 불가능하거나 최선이 아닌 경우도 때때로 있다는 사실도 배웠다. 최선의 의사 결정을 위해서는 구성원에게 모든 정보가 주어져야 하며, 개인과 조직의 우선순위 간에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조직을 운영하다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조직 개편이나 프로젝트의 큰 방향성과 같이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한 이슈는 구성원의 의사를 확인하되 최종 결정은 리더가 책임을 지고 내린 후 구성원을 설득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는 것을 배웠다.
좋은 리더는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성원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고, 이런 관점에서 리더의 가장 중요한 스킬은 (회의에서의) 말과 (보고서 및 메일에서의) 글을 통한 커뮤니케이션이다. 비전 설정을 통해 구성원의 동기를 끌어내고, 개별 프로젝트에 대한 기본적인 방향성을 설정하며, 업무 및 조직 관련 이슈가 생겼을때 이를 해결하는 수단이 모두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이다.
아마 처음 리더가 된 사람들이 (특히 엔지니어나 분석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리더십 롤이 그동안 사용했던 주 업무 스킬과 (개발이나 분석 역량) 전혀 다른 역량을 (비전 설정 및 커뮤니케이션) 요구하기 때문이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노력 여하에 따라 개선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주제에 대해 많은 참고자료가 있지만 필자가 느낀 몇가지 교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소통의 공정성: 팀 전체 회의에서 항상 모든 개인 및 프로젝트가 고른 언급과 관심을 받도록 한다.
소통의 구체성: 업무에 대한 가이드는 적을수록 좋지만, 대상이나 상황에 따라 구체적인 지시기 필요하다.
소통의 적시성: 어려운 이슈에 (팀웍을 해치는 행동 / 낮은 퍼포먼스) 대한 소통은 최대한 빨리 시작한다.
아마 처음 팀을 맡은 리더라면 가장 어려운 부분이 인재를 채용하는 부분일 것이다. 그동안 필자가 시행착오를 거쳐 느낀 결론은 채용은 농사를 짓는 기분으로 천천히 접근해야 한다는 점이다. 처음에 블로그를 통해 팀을 소개하고, 이런 저런 경로를 통해 많은 후보자와 면담을 하고, 실제로 채용을 진행하고 온보딩을 거쳐 실제로 팀에서 성과를 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특히 우수한 인재들은 보상만큼이나 팀의 비전과 본인의 업무적인 성장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팀에 대해 제대로 알리는 것이 필수적이며, 역량이 뛰어난 인재일수록 급하게 이직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면담을 하고 몇 달씩 기다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채용이 농사라는 비유가 적절한 것은 후보에 따라 이 사이클이 거의 1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채용은 팀 셋업 초기에 가장 어려우며, 일단 고비를 넘기고 나면 점점 더 쉬워진다. 필자도 작년에는 채용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팀블로그 및 외부 컨퍼런스 등을 통해 꾸준히 팀을 소개한 결과(라고 생각하지만) 올해부터는 채용이 훨씬 수월해진 느낌이다. 물론 채용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초기 온보딩 및 가이드를 통해 새로 조인한 분들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부분이다.
팀과 주로 떨어져서 근무하는 리더로서 어려운 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다행히 네이버가 선택적인 원격 근무 제도를 시행하고 있어 모든 팀원이 출근하는데 미팅에 혼자 원격으로 접속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지만, 종종 출근해서 팀 분위기를 살피고, 필요할 때 대면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없다는 점은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구성원 모두가 편한 시간/장소에서 일하는 유연한 근무제도는 개인과 사회에 모두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테크 기업이 그렇겠지만 네이버 DnA팀 역시 대면 미팅이 가장 많이 필요한 초기 단계를 거의 원격 근무 상태에서 잘 해쳐나왔고, 현재도 팀원마다 각자 상황에 맞춰 대체로 주 1~3회 출근을 하면서 대면과 원격 근무를 조화시키고 있다.
미국에 거주하는 필자의 경우 (아직 평균을 논하기는 이르지만) 대체로 분기에 한번 한국에 출장을 와서 팀원과 파트너들을 만나고 있다. 출장 와서는 일도 일이지만 팀원들과 개인적인 친분을 쌓고 팀웍을 다질 수 있는 시간을 주로 가지려고 한다. 이렇게 대면 소통의 기회가 제한되는 부분을 그 밀도를 높여서 해결할 수 있다. 또한 원격 상황에서 솔직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1:1 미팅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요약하면 원격으로 팀을 만들고 운영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느낀 1년이었다. 원격 근무하는 리더로서의 어려움 만큼이나 구성원 모두가 각자 최적의 환경에서 자율적으로 일하는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앞으로 팀 업무 영역이나 방향성이 좀더 명확해지고, 함께 일하는 경험이 더 쌓이면 더 쉬워질 것이라고 믿는다.
처음에 네이버 서치에서 데이터 사이언스 & 엔지니어링 팀을 만드는 역할이 주어졌을때 기대보다는 걱정이 더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한국 최대의 검색 서비스의 사용자 만족과 성장을 데이터로 뒷받침한다는 미션과 책임의 무게도 있었지만, 특히 이 모든 일을 한국과 미국에서 팀을 만들며 원격으로 한다는 것이 '잘 될까?'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실제 DnA 팀 설립부터 네이버 검색 구성원 다수가 사용하는 평가/분석 플랫폼을 만들고 제공하기까지의 여정에는 실제로 다양한 난관이 있었다. 하지만 DnA 팀 설립 초기부터 부족한 필자를 믿고 따라준 팀원들, 플랫폼 개발과 도입 과정에서 믿음과 응원을 보내주신 파트너 분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녁때 남편이 육아 도움을 줄 수 없는 상황을 잘 견디어준 아내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제 DnA 팀이 업무적으로나 조직적으로나 어느정도 자리를 잡은 상황이지만, 앞으로도 네이버 서치의 모든 구성원들이 DnA팀의 데이터와 분석으로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필자도 개인적으로 리더로서 배움을 멈추지 않을 것을 약속드리면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