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진 선택지

같은 방향으로만 살아야 하는 사회

by LIFOJ

어릴 적, 선생님은 말하셨다.
“너희는 모두 특별하다.”
하지만 자라면서 사회는 말했다.
“너는 이만큼만 해.”
“거기까지만 꿈꿔.”

모두가 같은 교복을 입고,
비슷한 커리큘럼 속에서,
정해진 답을 찾아가는 삶.
그게 평등이라 배웠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그 평등은 어쩌면
내 선택지를 하나씩 지워가고 있었다.


다양성을 잃는 사회

집을 사려는 사람은
"왜 굳이 집을 사려 하느냐"는 말을 듣고,
집을 여러 채 가진 사람은
"욕심이 과하다"며 비난받는다.

누군가는 자산을 축적하려 하고,
누군가는 안락한 임대를 택하며,
또 누군가는 도시를 떠나 작은 삶을 선택한다.

이런 삶의 다양한 선택지들이 공존할 수 있어야
건강한 사회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하나의 '올바른 삶'만 권장하는 분위기에 익숙해지고 있다.
“임대면 충분하지 않아?”
“집을 꼭 가져야 해?”
“사치야, 그런 건.”


평등은 강요될 수 있을까

진짜 평등은,
다양한 삶을 존중하는 데서 비롯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는 모두가 같은 걸 꿈꾸게 강요당했다.
'그 정도만 만족하라'는 말들이
사방에서 들려왔다.

누군가의 성공은 위화감이 되고,
누군가의 선택은 비난의 대상이 되며,
결국 남는 건, 무난하고 무색한 삶의 복사본들.

그건 더 이상 평등이 아니라,
획일화다.


하향 평준화의 그림자

하향 평준화는 겉으론 따뜻하다.
모두가 비슷하니, 덜 불편하고 덜 미워한다.
하지만 그 평등은
모두의 가능성을 조금씩 깎아낸다.

“너무 튀지 마.”
“조금만 낮춰 생각해.”
“우리 수준에 맞춰야지.”

이런 말들이 반복될수록
개인의 고유함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체념과 무력감이 자리 잡는다.


나는 어떤 삶을 꿈꾸고 있었더라

문득 돌아보게 된다.
나는 어떤 삶을 원했더라.
그림 그리듯 꿈꾸던 내 미래는
언제부터 현실에 ‘맞춰진’ 삶이 되었을까.

모두가 같은 옷을 입는 평등 말고,
각자 다른 색을 입을 수 있는 자유.
우리가 잃어버린 건, 그 자유였다.


오늘의 질문

최근에 “이건 내 방식이야”라고 말해본 적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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