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숫자에 가려진 삶의 무게를 직시하라
매일 아침, 끊임없이 숫자가 깜빡이는 모니터 앞에서 실시간으로 밀려들고 빠져나가는 외화 자금의 흐름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뉴스와 현실의 묘한 괴리감을 느끼게 된다. 미디어는 연일 '환율 1,400원 돌파'를 속보로 타전하며 수출 대기업의 최대 실적을 헤드라인으로 뽑아내지만, 거대한 자금이 조달되고 움직이는 시장의 최전선에서 바라본 풍경은 사뭇 다르다.
마치 태풍주의보가 내려진 험난한 바다에서, 안전한 대형 크루즈선에 탄 사람들의 환호성과 조각배를 타고 파도와 사투를 벌이는 어부들의 비명이 한데 뒤섞인 기이한 현장과도 같다. 실시간으로 변동하는 자금판의 숫자들은 우리에게 차갑고도 분명한 질문을 던진다. 원화 가치 하락이라는 이 거대한 청구서는 과연 누구의 책상 위로 배달되고 있는가.
대중에게 환율은 해외여행을 갈 때나 직구할 때 체감되는 '비용' 정도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자본 시장에서 환율은 국가 경제의 척추를 흐르는 '혈관'의 압력을 의미한다. 단순히 1달러를 1,400원에 살 수 있다는 표면적인 교환 비율이 전부가 아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 우산을 구하려는 사람은 많지만 우산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을 떠올려 보자. 평소 5천 원이던 우산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 되고, 굳이 오늘 우산을 사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조차 불안감에 웃돈을 주고 우산을 사재기한다. 지금의 달러가 바로 이 '폭우 속의 우산'이다. 글로벌 위기감 속에서 원화라는 변두리 통화를 들고 달러를 구하기 위해, 국가와 기업들은 뉴스에 나오지 않는 막대한 '웃돈(프리미엄)'을 매일같이 치르고 있다. 겉으로는 '경제 기초 체력이 튼튼하다'고 말하지만, 실무자들은 하루하루 치솟는 달러 조달 비용을 막아내기 위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고환율 시대가 도래하면 으레 등장하는 논리가 있다. "환율이 오르면 수출 대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경제에 온기가 돈다"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의 신화다. 장부상으로 환차익을 거두는 몇몇 대기업의 재무제표는 화려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동네 전체의 수도관이 터져 물바다가 되었는데, 생수 장수 혼자 매출이 올랐다고 해서 동네 경제가 좋아졌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반도체나 자동차를 파는 대기업은 환호성을 지르지만, 수입 밀가루로 빵을 구워 파는 동네 빵집 사장님이나, 외국산 원자재를 들여와 납품하는 중소기업은 턱밑까지 차오른 원가 상승에 비명을 지른다. 결국 이들이 감당하지 못한 비용은 고스란히 서민들의 밥상 물가와 난방비로 전이된다. 환율 1,400원이라는 숫자는 결코 모두의 축제가 아니다. 대기업의 영업이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가계와 영세 기업들이 조용히 자신들의 지갑을 열어 보조금을 대납하고 있는 '고통의 비대칭'일 뿐이다.
더 뼈아픈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국부의 유출'이다. 환율 상승은 단순히 수입품 가격만 올리는 것이 아니다. 외국인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한국이라는 바구니에 담아둔 자신들의 자산 가치가 가만히 앉아서 뚝뚝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전세로 살고 있는 집의 동네 치안이 나빠지고 집값이 폭락할 조짐이 보이면, 세입자는 당장 방을 빼서 다른 동네로 이사 가려 할 것이다. 집주인(한국)이 이 세입자(외국인 자본)를 붙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사 가지 않는 조건으로 전세금을 깎아주거나 특별한 혜택(더 높은 이자)을 쥐여주어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이미 빠져나가려는 외국인 자금을 붙잡고, 억지로라도 달러를 끌어오기 위해 우리는 해외 투자자들에게 평소보다 훨씬 높은 이자를 얹어주어야 한다. 환율 방어라는 명목 아래 우리가 지불하는 이 막대한 이자 비용은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철저히 글로벌 거대 자본의 주머니로 흘러 들어가는 우리의 피 같은 '국부'다.
여기에 최근 불거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무력 충돌이라는 거대한 대외적 리스크는 간신히 버티고 있던 1,400원이라는 둑을 무너뜨릴 수 있는 강력한 뇌관이다. 중동의 불길은 두 가지 치명적인 경로로 우리의 환율을 타격한다.
첫째는 '안전자산 쏠림' 현상이다. 동네에 큰불이 나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금고 속의 변하지 않는 가치, 즉 현금(달러)부터 챙겨 몸을 숨긴다. 전쟁의 공포 속에서 글로벌 자본은 신흥국의 원화 자산을 가차 없이 내다 팔고 달러를 사들인다. 둘째는 '유가 급등'이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은 공장을 돌리기 위해 중동의 원유를 수입해야 한다. 유가가 오르면, 예전과 똑같은 양의 기름을 사 오기 위해 우리는 시장에서 훨씬 더 많은 달러를 긁어모아야만 한다. 우산을 구하기 힘든 폭우 속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붕마저 날아간 격이다. 이 거대한 전쟁의 나비효과는 환율을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끌어올릴 강력한 불쏘시개가 되고 있다.
환율은 경제의 체온계다. 1,400원이라는 숫자는 현재 우리 경제가 고열에 시달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표다.
아이가 40도의 고열에 시달리는데, 해열제를 먹여 억지로 체온계 숫자만 37도로 떨어뜨린다고 해서 병이 낫는 것은 아니다. 시장에 개입해 억지로 환율을 짓누르는 미봉책이 위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제 질문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환율이 얼마인가가 아니라, 이 환율을 버텨내기 위해 '누가' 뼈를 깎는 비용을 치르고 있으며, 바다 건너의 전쟁이 내 지갑의 가치를 어떻게 갉아먹고 있는지 날카롭게 추적해야 한다. 모니터 위에서 무미건조하게 깜빡이는 숫자들, 그 이면에 숨겨진 자본의 냉혹한 논리를 읽어낼 때 비로소 우리는 거대한 돈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는 생존의 안목을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