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3일 제1회 한국수어의 날을 기념하며
2021년 2월 3일은 제1회 한국수어의 날입니다.
제17조(한국수어의 날) ① 농인등의 한국수어 사용 권리를 신장하고 한국수어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고취하기 위하여 매년 2월 3일을 한국수어의 날로 하며, 한국수어의 날이 속한 주간을 한국수어 주간으로 정한다.
②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제1항에 따른 한국수어의 날 기념 행사 등을 실시할 수 있다.
[전문개정 2020. 12. 22.]
한국수화언어법은 2016년 2월 3일 제정되었습니다. 제정 당시에는 위 조항에서 날짜가 특정되지 않았었는데( 제17조(한국수어의 날) 국가는 한국수어의 날을 정하고, 한국수어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기 위하여 기념행사 등을 추진할 수 있다.) 공청회를 거치고 작년 12월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한국수화언어법 제정일인 2월 3일이 법정 기념일인 한국수어의 날로 지정되었습니다.
한국수화언어법은 한국수화언어(Korean Sign Language, KSL. 이하 '한국수어'라 합니다.)를 한국어와 동등한 자격의 국어로 인정하고, 이를 통해 농인 및 한국수어사용자의 언어권 및 파생 권리를 보장하고자 하는 법안입니다.
기존에도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상의 정당한 편의제공, 차별금지조항 등을 통해 농인이 수어통역을 요구할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었지만, 한국수화언어법은 한국수어를 단순히 청각장애인의 보조적 의사수단으로 보는 관점에서 더 나아가 '농인'과 '한국수어'를 별도로 정의하고 '농문화'와 '농정체성'을 가시화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습니다.
제3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한국수어”란 대한민국 농문화 속에서 시각ㆍ동작 체계를 바탕으로 생겨난 고유한 형식의 언어를 말한다.
2. “농인”이란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으로서 농문화 속에서 한국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는 사람을 말한다.
3. “한국수어사용자”란 농인 외에 청각장애 또는 언어장애로 인하여 한국수어를 일상어로 사용하거나 보조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을 말한다.
4. “농문화”란 농인으로서의 농정체성과 가치관을 기반으로 하는 생활양식의 총칭을 말한다.
5. “농정체성”이란 농인으로서 가지는 자기동일성을 말한다.
6. “수어통역”이란 한국수어를 국어로 변환하거나 국어를 한국수어로 변환하는 것을 말한다.
7. “공공기관등”이란 국가, 지방자치단체 및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공기관을 말한다.
기존에는 '수화(手話)'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해왔고, 2000년대 전후로 수화를 언어로 인정하라는 농인의 당사자 운동이 전개되면서 수화의 언어적 속성을 강조하는 '수어(手語)'라는 단어의 사용이 늘어났습니다. 한국수화언어법 제정 당시에도 공식 용어를 무엇으로 하느냐를 두고 공청회를 통해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있었습니다.
이후 의견 절충을 통해 '한국수화언어', 이를 줄인 '한국수어'를 공식 용어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청각장애인'은 청각의 장애로 인해 듣지 못하는 사람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일반적으로 청각장애에는 언어장애가 수반되기에 청각·언어장애인을 묶어서 분류하기도 합니다.
한국수화언어법에서 정의하는 농인은 ①청각장애를 가지고 ②농문화를 영위하며 ③한국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또한 위 법의 '한국수어사용자'는 기존의 구화인(口話人)을 의미합니다. 구화인은 청각·언어장애를 갖고 있으며 청능훈련·발성훈련 등을 통해 한국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법의 정의 규정에서 구분하고 있지만, 실제로 농인과 한국수어이용자는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습니다. 법 문언상에서도 정의 규정 외에는 이를 구분하지 않구요. 한국수어이용자도 한국수어를 제1언어로 받아들이고 농사회의 일원이 되고자 한다면 농인에 해당합니다.
기존의 '농아인'이라는 단어는 귀머거리 농聾과 벙어리 아啞라는 한자를 합쳐 사용되던 용어였습니다. 오랜 세월 '청각장애인'과 '농아인'은 혼용되어 왔고 때로는 '농아인'을 멸칭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있었으나, 농사회 내부에서 농정체성과 자긍심을 고취하는 캠페인이 전개되면서 농인은 단순히 듣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고, 비장애인은 '듣는 사람(청인聽人)'이라는 인식이 자리매김했습니다. 한국수화언어법의 제정은 농인이 신체적 손상이 있는 장애인으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움직여 한국사회 내의 언어적 소수자성을 획득해낸 결실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수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양질의 수어교육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한국수어교원 양성과정/자격인증제도가 신설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수어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농인·농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도를 갖고 있는 전문 교원이 한국수어를 교육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격인증제도는 투 트랙으로 이루어집니다. 한국수어교원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양성과정이 개설된 수어문화원/대학 등에서 120시간의 양성과정을 이수해야 합니다.
이수 후 개인의 선택에 따라
1) 3년이상 관련 단체에서 근무하면서 300시간 이상의 수어 교육을 진행
2) 매년 진행되는 한국수어교육능력 검정시험 응시 후 합격
위 중 하나를 거치면 한국수어교원자격 2급을 딸 수 있습니다.
이후 3년이상의 관련기관 근무+300시간 이상의 강의 경력+양성과정 40시간 이수의 조건을 갖추면 1급 자격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한국수어능력 검정시험 추진
-한국수어사전 정비, 한국수어 문법 연구
-한국수어 말뭉치 구축
-공공수어통역 지원(코로나 시국에서 화제의 중심이 된 정부 브리핑 수어통역등)
자료조사를 하면서 놀랐던 점이 있습니다.
한국수화언어법에 기반한 여타 정책들은 현재 진행중·추진중이라는 걸 자료로 쉽게 확인할 수 있었지만, 한국수어에 기반한 농인 학생들의 교육에 대해서는 정책 진행상황을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제11조(한국수어의 교육 등) 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농인등의 한국수어 및 한국어 능력을 신장할 수 있는 교육환경을 조성하여야 한다.
②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농인등의 교육에 있어서 장애 발생 초기부터 한국수어를 습득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③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농학교로 하여금 한국수어를 한국어와 동등한 교수ㆍ학습 언어로 사용하도록 하여야 한다.
④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농학교 교육에서 한국수어를 사용한 교육 및 한국수어를 통한 학습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원하여야 한다.
한국수화언어법 제11조는 농학생에 대한 한국수어 기반의 학습권을 보장할 수 있도록 국가의 책무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특수교육 현장은 아직 변화의 움직임이 더딘 것 같습니다.
한국수어에 기반한 농교육은 위의 한국수어교원 자격과 궤를 달리합니다.
한국수어교원은 한국수어 그 자체를 교육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고, 한국수어에 기반한 농교육은 농교육 현장에서 농학생들에게 음성과 문자로 표현되는 한국어가 아니라 한국수어를 사용하여 교과과목 교육을 시행하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농학생에게 한국수어에 기반한 농교육을 활성화하라는 것은 농사회의 오랜 요구였습니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여러 이해관계가 맞물리고 교육부가 소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어 수어로 교육을 받고 싶다는 농학생들의 수학권이 침해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향후 다른 글에서 다시 자세하게 다를 예정입니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세상은 분명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제 기억 속의 20년 전, 10년 전을 비교해 보면,
우선 농인 당사자들의 농정체성과 자긍심이 몰라볼 정도로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수어에 대한 인식도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책 집행과 이를 위한 예산안의 근거가 되는 한국수화언어법도 생겼고 올해로 제정 5년차를 맞고 있으니 귀추를 주목할 일입니다.
앞으로 수어와 농문화, 관련 정책에 대한 이야기들을 이어나갈 생각입니다.
이번 글에서 깊게 다루지 못했던 내용들을 주제별로 다시 이야기할 기회도 있을 듯합니다.
참고자료
제1차 한국수어발전기본계획 2018~2022 (문화체육관광부·관계부처 합동)
2020년 한국수어발전 시행계획(문화체육관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