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차이가 있을까?
농문화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청각장애인과 농인, 구화인, 청인 등의 범주를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청각 장애(聽覺障礙, Hearing impairment and deafness)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이 상당히 떨어져 있거나 전혀 들리지 않는 상태의 장애입니다.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별표 1에 따른 청각장애인의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4. 청각장애인
가. 청력을 잃은 사람
1)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
두 귀의 청력을 각각 80데시벨 이상 잃은 사람(귀에 입을 대고 큰소리로 말을 해도 듣지 못하는 사람)
2)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
가) 두 귀에 들리는 보통 말소리의 최대의 명료도가 50퍼센트 이하인 사람
나) 두 귀의 청력을 각각 60데시벨 이상 잃은 사람
(40센티미터 이상의 거리에서 발성된 말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
다) 한 귀의 청력을 80데시벨 이상 잃고, 다른 귀의 청력을 40데시벨 이상 잃은 사람
나. 평형기능에 장애가 있는 사람
1)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
양측 평형기능의 소실로 두 눈을 뜨고 직선으로 10미터 이상을 지속적으로 걸을 수 없는 사람
2)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
평형기능의 감소로 두 눈을 뜨고 10미터 거리를 직선으로 걸을 때 중앙에서 60센티미터 이상 벗어나고, 복합적인 신체운동이 어려운 사람
5. 언어장애인
가.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
음성기능이나 언어기능을 잃은 사람
나. 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은 장애인
음성ㆍ언어만으로는 의사소통을 하기 곤란할 정도로 음성기능이나 언어기능에 현저한 장애가 있는 사람
[장애인복지법 시행령 별표1 장애의 종류 및 기준에 따른 장애인(제2조 관련)]
즉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청각장애인은 청력을 잃은 사람/평형기능에 장애가 있는 사람이고,
언어장애인은 음성·언어기능에 장애가 있어 음성언어를 통한 의사소통에 장애가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일반적으로 유년기에 청각장애가 생기면 청력의 상실로 인해 음성언어의 습득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고, 이 경우 언어장애가 수반하게 됩니다.
그러나 청각장애에 필연적으로 언어장애가 수반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년기 이후의 사고·돌발난청·노화 등으로 청력을 상실한 경우나, 유년기에 청각장애가 생기더라도 발성훈련 등을 거치는 경우 비교적 명료하게 음성언어를 구사할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 '청각장애인'은 편의상 장애인복지법상의 '청력을 잃은 사람'에 한정하여 이야기합니다.
농인은 위의 청각장애인 중 한국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고 한국수어에 기반한 독특한 농문화를 영위하며 사는 사람을 뜻합니다.
기존에 사용하던 농아인聾啞人이라는 개념은 사전적으로는 귀가 들리지 않아 언어장애인이 된 사람을 의미했습니다. (농아인을 일컬어 '농아'라고 지칭하는 것은 '장애자'라는 단어처럼 멸칭의 뉘앙스가 있어 현재는 지양하는 추세입니다.)
장애를 개인의 의학적·기능적 '손상'으로 받아들이는 기존의 장애 담론에서 벗어나,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욕구에 대해 사회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거나 이를 억압한 결과 장애가 발생한다는 사회적 모델이 대두되면서 농사회에서도 정체성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단순한 병리적 관점에서 청각장애를 청력의 결핍·손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음성언어 대신 시각언어로서의 수어를 사용하고 이에 기반하여 시각문화를 형성하여 살아가는 소수자 집단으로서의 '농인 Deaf'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청인이란 농인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들을 청聽자를 사용하여 음성언어를 중심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는 기존의 [청각장애인↔비장애인] 대립쌍에서 벗어나 [보는 사람(농인)↔듣는 사람(청인)]으로 프레임을 설정하여 청각장애를 병리적 현상으로만 바라보는 것을 거부하고자 하는 표현입니다.
초기에는 건청인(建聽人)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였으나, 건강함을 의미하는 '건'이 정상성을 내포하기에 최근에는 청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모든 청각장애인이 농인은 아닙니다.
유년기에 청각장애가 생긴 사람들 중
①보청기·인공와우 등 청각보조장치를 사용하거나, 대화 상대방의 입술의 움직임을 읽어서 상대방의 발화를 파악하고 ②발성훈련을 하여 음성언어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구화인이라고 합니다.
구화인은 청능훈련·구화법·발성훈련 등을 통해 한국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그러나 구화인과 농인이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구화인 중 성년이 된 후에 수어를 배우고 농정체성을 가지면서 농사회에 녹아드는 사람도 있고, 어린 시절부터 수어를 제1언어로 써온 농인 중에서도 일정 수준의 구화가 가능한 사람도 있습니다.
위의 인용구에서 알 수 있듯, 어떤 사람이 농인인지 여부는 시각언어인 수어를 근간으로 하는 농문화와 농사회에 대한 소속감의 유무를 통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