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어교실, 교육원 등에서 수어 수업을 들으면서 기초를 다진 뒤에는 어떻게 실력을 더 쌓을 수 있을까요?
언어 공부에 있어서 왕도에 해당하는 방법은 그 언어에 최대한 자주 노출되는 것입니다.
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규모가 큰 수어교육원은 개설되는 과목 수가 많고, 시간대 별로 여러 분반이 개설되어 있어 난이도별/주제별로 다양한 수업을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육원이 설치되어 있는 지역이 한정되어 있어서 타지역에서는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지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제로 농인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물론 우연히 농인을 봤다고 해서 다짜고짜 가서 수어로 말을 걸고 대화를 시작하면.. 좋아하는 분도 가끔은 있겠지만 보통 당황스러워하시겠지요^^; 짧은 인사 후에는 특별히 대화를 이어나가기도 어렵구요.
그래서 공통의 관심사를 갖고 있는 곳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종교기관이 있습니다.
저나 부모님은 '어딜 가면 농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느냐,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교회라고 대답을 해 줍니다. 저와 부모님은 모두 종교가 없습니다만, 아버지는 종종 교회에 가서 예배를 보러 오는 농인들과 만나 수다를 떨다 오시곤 하십니다.
큰 교회에는 농인부가 있어서 수어로 예배가 이루어지기도 하고, 아예 농인 목사들이 사역을 하는 농인 교회도 있습니다. 유명한 농인 교회는 서울 영락농인교회 등이 있습니다. 찾아보면 지역마다 농인 교회가 있으니 참고하시면 됩니다.
교회보다 적지만 농인들이 다니는 절도 있습니다. 서울의 광림사 연화원이 대표적입니다.
그 외에 농인 구락부(club)도 있습니다. 사교 클럽+간이 음식점 같은 느낌이라고 합니다.
저는 가본 적이 없고, 예전엔 많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에는 줄어드는 추세라고 합니다.
하지만 알음알음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하고, 일단 가게 되면 농인과 쉽게 어울릴 수 있어서 가장 빨리 수어가 늘 수 있다고 하네요.
지역 수어통역센터의 수어교실에서 수어를 배웠다면,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가까운 지역의 농아인협회 지회에 연락을 하시면 지회의 행사때마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농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지회 안에 쉼터가 있어서 농인들이 자주 이용을 하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지회는 지회 내 프로그램 운영시간 혹은 수화통역을 의뢰하는 경우 외에는 농인들이 항상 계시지는 않습니다. 아무런 약속 없이 방문한다면 농인을 만나기가 생각보다 어렵겠지요. 다만 총회나 프로그램 운영시간 등 지회 내의 행사에는 많은 농인이 오시기 때문에 그 시간에 맞춰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말씀하시고 사전에 일정을 협의하면 자원봉사에 참여가 가능합니다.
비단 농아인협회뿐만 아니라 서울의 서대문농아인복지관 등 농인을 위한 복지관에서도 자원봉사활동이 가능합니다.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혹은 코로나 시국이라 비대면을 원하신다면 양질의 수어 영상을 시청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시청하면서 따라하거나, 영상을 주의깊게 분석해보면서 표현방법을 익히는 것도 좋겠지요.
가능하면 농인이 직접 방송을 하는 영상을 보거나, 실력이 검증된 수어통역사들의 방송을 보시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여러 방송이 있지만 제가 추천하는 영상들은...
https://www.youtube.com/c/hamonthly/featured
(유명한 분이지만 굳~이 소개하는 이유는)
컨텐츠가 다양하고, 여러 명의 농인이 나와서 각각 서로 다른 수어 스타일을 보기 좋습니다.
브이로그나 인터뷰 등의 컨텐츠에서 자연스러운 대화에서의 비수지기호를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korean.go.kr/front/board/boardMovieList.do?board_id=30&mn_id=248
정례브리핑 등 정부의 공공수어통역 영상을 모아놓은 국어원의 웹페이지입니다.
코로나 시국에서 더욱 유명해졌지요.
브리핑 자체가 정보전달에 초점에 맞춰져 있어, 일상적 대화처럼 비수지기호가 강하게 등장하지는 않지만 한국어->한국수어 '통역'이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영상들이라 생각합니다.
한국농아인협회 중앙회에서 운영하는 DBN입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7lV-1pINvjayeZ8CyvAG0Q
강원도농아인협회의 강원수어방송입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0MHn2ZcSyaiEGA6jQOdSTg
경기도농아인협회의 경기농아방송입니다.
https://www.youtube.com/channel/UCy460AveLol6g_s3GZIKRkw
이외에도 유튜브에서 검색하시면 각 지역의 농아인협회에서 제작한 방송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농아방송사들의 방송은 농인 아나운서들이 방송하기에 관용 표현과 비수지기호의 표현이 풍부한 것이 특징입니다.
2016년 톡톡수어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xfL8oXIAN0T3E0NFpM92A29VKMPQV31S
2017 톡톡수어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8NuUiJGEU_soU9WtWHTDUcF5p6O_derA
2018 톡톡수어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8NuUiJGEU_vXzOCXUwnKpIlqEYFhhWGk
2019 톡톡수어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8NuUiJGEU_veKUA1ZeO2AvmsoZiiWd0C
2020 톡톡수어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8NuUiJGEU_v8QSHuPSFKcXSH1SwctYWi
주제별로 4~5개정도의 파생 단어를 공부할 수 있는 톡톡수어입니다.
2016년부터 제작되어 상당히 많은 양이 쌓여 있습니다.
농인 선생님들이 단어를 설명해준 뒤 간단한 예문, 대화 문장 등을 통해 사용례를 보여줍니다. 5개가 적은 양인 것 같아도, 매일 다섯 단어씩 배우고 간다고 생각하면 천 개 이상의 단어를 접해볼 수 있습니다.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씩 업데이트되니 꾸준히 보시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온라인 영상의 경우 위와 같이 각 방송마다 특징이 명확하므로 목적에 맞게 취사선택한 뒤 시청하신다면 어느 정도의 실력 향상을 맛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상으로 익힌 수어를 실제 사용할 때에는 맥락과 뉘앙스에 따른 차이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수어를 잘 아는 사람에게 용례를 확인한 뒤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일 것입니다.
제가 생각할 때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어교육과정 중급반~고급반을 수료하면 농인들과 소통하기에 충분한 기본기는 갖춰지는 것 같습니다.
모르는 단어들이 계속 나오는 건 당연하지요. 농식 수어의 관용 표현이나 신조어 등의 단어는 현장의 수어통역사들도 모르는 게 있고 계속 공부를 합니다. 그러나 단어는 수어를 사용하면서 얼마든지 배워 나갈 수 있습니다.
수어 문법의 경우는, 분명하게 갖춰진 문법 체계가 있지만 사실 이걸 제대로 배우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가르치는 분이 많지가 않고, 논문 등의 자료를 봐도 모든 어문법이 그렇듯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아 이해하기가 어렵지요. 저도 어릴 때부터 수어를 써 왔지만 수어교원자격과정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정리된 문법을 접했어요^^; '이것이 수어 문법에 맞는 표현이다!'라고 인식하면서 쓰지 않더라도, 많이 접해 보고 사용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중급반 혹은 고급반을 수료한 학생들이 농인을 만나서 대화할 때 겪는 가장 큰 벽은 비수지기호의 벽입니다.
열심히 수어로 이야기를 걸었는데 내 이야기를 상대방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지요. 대부분은 비수지기호가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반면 상대방의 이야기를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대개 내가 모르는 표현을 썼거나, 수어가 너무 빠르거나 등의 문제입니다).
수어를 꽤 오래 배운 사람이나, 수어통역사의 경우에도 비수지기호의 표현이 약하다면 이와 같은 문제는 자주 발생합니다.
비수지기호는 비단 눈코입 뿐만 아니라 머리의 움직임, 어깨나 팔 등 신체를 활용하는 방법 등이 있지만, 70% 이상은 표정이 차지한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한국말로 이야기할 때는 감정표현이 절제되어 있지요. 특히 격식있는 대화일수록 감정의 표현이 절제되어야 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는 것이 한국어 화법입니다.
하지만 한국수어에서는 다릅니다. 평소 한국어로 대화할 때의 감정표현에 비해서 두 배 세 배 정도 오버를 한다고 생각하면 편합니다. 또한 얼굴을 찡그리거나 볼을 부풀리거나, 인중에 바람을 넣거나, 한국어와는 다른 마우스 제스처를 사용하는 등 고유한 비수지기호 표현방법이 존재합니다. 이러한 비수지기호 표현이 특정 수어 동작 표현과 결합하여 의미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의없다거나, 경박하다거나,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여 부끄러워하고 비수지기호의 표현을 최소화하면 절대 수어가 늘지 않습니다. 제가 단언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이것은 단언할 수 있습니다.
비수지기호 표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면 절대 수어가 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참고하셔서
1) 각종 영상 등을 참고하여 수어 표현과 비수지기호, 문법에 맞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2) 실제로 농인을 만날 수 있는 곳에 가서 대화를 하려고 노력한다.
3) 비수지기호의 표현에 대한 부끄러움을 버리고 최대한 표현할 수 있도록 신경쓴다.
이 방법을 사용하신다면 한국수어 실력을 금방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