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사 BM, 월정액에 대해
놀랐다. 월정액이 부활하다니.
1990년대 후반,
유선 인터넷 통신과 개인 PC가 집집마다 들어서면서
국내 게임 시장이 크게 성장했다.
지금이야 무선 인터넷망이 지척으로 깔려있고,
스마트폰의 PC 대체가 가능해졌지만
그 당시에는 인터넷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다.
PC통신 시절을 지나 다음, 네이버가 탄생하고
인터넷을 통해 온라인 공간에서 게임을 같이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흥분되는 일이었다.
게다가 내 캐릭터의 움직임이 그래픽으로 그려지고,
내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서버와의 인터넷 연결을 통해 실시간으로 다른 유저와 공유되고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 적을 무찌르거나
서로 싸울 수 있는 온라인 게임이라는 세상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MMORPG(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
대규모 다중 온라인 접속 롤 플레잉 게임은
당시 PC와 인터넷 보급으로 할 수 있는 기술의 진수였다.
그렇게 초창기 온라인 게임은 넥슨의 '바람의 나라',
엔씨소프트의 '리니지'를 필두로 쭉쭉 성장해 나갔다.
해외는 국내보다 인터넷 보급이 느렸기 때문에,
국내 온라인 게임을 눈여겨볼 정도였다.
지금은 배달의 민족이라지만,
당시 한국은 게임의 민족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당시 게임사의 성적표는 '동접자'로 말할 수 있었다.
동시접속자수의 줄임말인 동접자 수치는 게임사 입장에서
흥행 지표로 사용됐다.
전성기 시절 리니지의 최대 동시접속자 수는
2012년의 22만 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22만 명이 월드컵 응원장소에 모인 것처럼
같은 시간에 한 게임 동시에 접속해 플레이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2012년 대한민국 인구가 약 5,000만 명이다.
그리고 리니지는 월정액 게임이다.
매달 29,700원의 비싼 돈을 내야
플레이가 가능했다.
1998년에 월드콘이 700원이었고
일반 시내버스 차비가 300원이었다.
그리고 초등학생 시절 내 일주일 용돈이 천원이었다.
달라고 하지 않으면 주지 않으시니 몇 달치가 쌓이기도 했다.
내일 말씀드려서 받아야겠다.
아무튼, 20살부터 54살까지 매달 월정액비를 내고 게임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
2012년 20세부터 54세까지 인구가 약 2,800만 명이다.
대충 100명 중에 한명으로 줄었다.
거기에 집에 인터넷과 개인 PC를 갖춘
사회 중위층 이상의 인구를 고려하는 등
여러 할 수 있는 것이 많지만 이런걸 말하려고 시작한 글은 아니니,
그냥 엄청 많이 했다. 로 일갈하자.
월정액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한다.
당시 온라인 게임사의 BM은 월정액이었다.
한 달에 얼마를 내면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돈을 안내면 게임을 하지 못했다.
물론 무료로 플레이할 수 있는 기간이나 레벨 제한 등이 존재했지만
돈을 안내면 게임을 못한다는 것 자체는 동일했다.
그래서 당시 리니지에는 '3일 계정'이라는 플레이 방법이 있었다.
계정을 새로 만들면, 3일 동안은 무료로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이걸 이용해 3일 동안 열심히 해서 아이템과 돈을 마련하고,
아무도 오지 않을 것 같은 구석진 곳에 버려두었다가
새 계정으로 접속해 그걸 주워 다시 3일 동안 플레이하는 걸 반복하는 거다.
계정 생성에는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했는데,
그 때 사용된 것이 주민등록번호 생성기 프로그램이다.
주민등록번호가 가진 법칙을 가진 이용해
무작위 숫자를 생성해주는 프로그램인데,
이걸 활용해 계정을 만들어 플레이했다.
물론 인증 수단이 동원되면서 이 방법은 막혔다.
왜 그렇게 잘 아냐고?
비밀이다. 난 안해봤다.
나 같이 월정액비를 내기엔 부담스러운 유저들을 위해
넥슨이 새 BM을 내놓았다.
게임 자체는 무료로 플레이가 가능하되,
그 안에서 캐릭터 치장이 가능한 아이템을 유료로 판매하는 것이다.
이름하야 '부분 유료화'.
지금도 유명한 온라인 게임 '메이플스토리'에서 이 BM을 활용했다.
반응? 폭발적이었다.
아이들 코묻은 돈이 게임사로 흘러들어왔고,
너도나도 이 BM을 채용했다.
2000년대 초중반 메이플스토리는 말 그대로 신이었다.
아이들이 세뱃돈을 받는 설날이 되면
넥슨 매출이 폭등한다는 카더라는
카더라치고 근거가 너무나 타당했다.
부분 유료화 BM이 유행처럼 번졌고,
넥슨은 이걸 주력으로 밀었다.
당시 부분 유료화 BM에는 불문율이 있었다.
내 캐릭터의 능력치를 올려주는 유료 아이템을 판매하지 않는 것.
대입 입시로 대변되는 공정한 경쟁이 사회 모토였던 당시 대한민국 정서는
돈을 내고 내 캐릭터가 세진다?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금이야 정서가 달라졌지만,
당시에 그런 아이템을 판매한다?
안그래도 사회 악으로 취급받던 게임이
돈 있는 사람이 게임에서도 제일 세다는 이미지가 생겨버리면
어떻게 됐을지.
리니지는 정액제 BM을 오랫 동안 유지했다.
정확히 2019년까지.
리니지도 스마트폰 시대를 맞이하며
돈을 내고 강해질 수 있는 부분 유료화 모델로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였다.
이 부분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다음에 다시 하자.
아무튼 부분 유료화 BM으로 엄청난 돈을 번 엔씨소프트가
최근 정액제 BM을 다시 내세웠다.
그 시절 그 가격. 29,700원으로.
리니지2에서 선보였으니, 이 BM이 다시 흥한다면
돌아온 정액제 BM이 엔씨소프트의 새 주력 BM이 될지도 모른다.
지스타가 한달 남은 시점에서 TL을 비롯한 신작들을 발표했지만,
엔씨소프트 주가는 소폭 오름에 그쳤다.
한 때 주당 100만 원에 손을 살짝 댔던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이제 24만 원 가량이다. 약 2년 만에 네 토막이 났다.
새 BM은 매출 확보를 위한 몸비틀기, 라는게 내 생각이다.
월정액으로 새롭게 유저들을 유치해놓고 다시 유료 아이템을 판매할 수도 있다.
모든 아이템을 게임 내 컨텐츠, 게임 내 재화로 구한다고?
설령 앞으로 여기서는 유료 아이템을 판매하지 않겠다는
말이 떡하니 있어도 믿지 않을거다.
엔씨소프트와 리니지 프랜차이즈에 가지는 유저들의 이미지가 딱 그렇다.
도입하려 했다면 이미지가 이렇게까지 되기 전에 진작 했어야 했다.
정액제가 부활한다는 소식을 듣고
옛 추억에 잠시 젖었다.
지금이야 게임 강국 타이틀은 넘겨줬지만,
당시에는 세계 최강이었다.
그리고 재미도, 세계 최강이었다.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