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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광 Dec 21. 2023

애니메이터가 위로하는 재난

'돌려드립니다', 신카이 마코토 이야기


그런 경험 있으신가요?


나만 알고 있던 음식점이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져

사람이 붐비고 웨이팅을 해야 하는

유명 맛집이 돼버린 경험이요.


전 있습니다.

음식점은 아니지만요.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로 불리는

일본 애니메이션 감독.


신카이 마코토 이야기입니다.




초속 5cm(2007)


때는 고3이었습니다.


공부 외에 모든 것이 재밌던 시절,

친구의 추천으로 우연히 보게 된

'초속 5cm'를 보고 느꼈어요.


아.. 이 감독, 내가 평생 팬 하겠구나. 하고요.


예전 장편 단편을 모두 챙겨봅니다.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부터 '언어의 정원'까지.


대학생 때

'언어의 정원'의 첫 장면을 보는 순간,


언어의 정원(2013)


"이 맛집, 월클 되겠는데?"


마치 경연 프로그램 심사위원이

크게 될 재목에게 만점과 함께

박수갈채를 날리는 것처럼


기쁜 감정이 듦과 동시에


이대로라면 나만의 작은 감독이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 아는

공공재? 가 될 것 같은 느낌에 불안했어요.


전 아마도 소유욕이 큰가 봐요.




그 불안감은 덕후들의

영화관 떼창을 불러일으킨


'너의 이름은'으로 드디어 실체화 됐습니다.

국내에서 신카이 마코토의 이름을 제대로 알린 작품이었죠.


이전까지 작품들의 단점으로 꼽혔던

중2병스러움, 병풍 같던 히로인,

화려한 작화로 때우면서? 과도하게 간접적으로 표현하던 심리묘사 등

단점들이 대부분 개선됐어요.


언어의 정원으로 한 번 도움닫기를 하더니

너의 이름은으로 높이뛰기에 성공한 거죠.



초속 5cm까지 1인 제작으로 제작해

자본의 한계에 부딪혀 괜찮았지만 뭔가 부실하던 작화가


본인이 직접 회사를 차려 투자를 받아

언어의 정원부터 돈이 입혀진? 그림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감독에게 있어 언어의 정원은 일종의 실험작이었던 것 같아요.


큰 자본이 투입된 작품을 팀을 이뤄 제작하면서도

본인의 색을 유지하고, 단점을 개선하면서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감 잡은', 실험작이요.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너의 이름은'은 단독 작품이 아닌 '재난 3부작'의 첫 작품입니다.


너의 이름은 에서 혜성 충돌,

'날씨의 아이'에서 대홍수,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대지진을 다뤘어요.


일본은 지질학적으로

환태평양 조산대에 속해 재난이 많이 일어나는 국가입니다.


가장 최근에는 2011년에 동일본 대지진이 있었어요.

이를 마주했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애니메이터로서 재난을 겪은 우리들에게 

이 지진과 이로 인한 지진해일(쓰나미)이

날씨의 아이, 스즈메의 문단속의 소재가 됐죠.


너의 이름은(2017)


자극적인 소재로 작품을 제작한다는 것은

그 작품이 어떠한 작품이든,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세월호 사건이 가지는 의미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는 부분이죠.


너의 이름은 후반부를 보면,

혜성이 쪼개져서 마을로 충돌할 것이라고 주인공이

어린아이의 힘으로 주민들에게 대피하라고 경고를 하는데,


작품에서 한 어른이 방송으로 이런 대사를 합니다.

"움직이지 말고 그 자리에서 대기하라"


네, 실제로 신카이 마코토가

세월호 사건을 염두에 둔 대사라고 밝히며 공식 오마주가 된 대사예요.


혜성 충돌은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폭 투하의 은유 표현이라고 합니다.


9.11 테러는 미국 입장에서는 엄청난 재앙이었고,

미국 할리우드나 콘텐츠 제작자들 사이에서는

테러 사건을 작품 소재로 활용하지 말자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테러로부터 5년 가까이 지나서야, 소재로 조금씩 활용되기 시작했다고 해요.

아픔의 기억을 콘텐츠, 일종의 놀거리로 풀어내기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 신카이 마코토 또한 3부작 첫 작품에서

바로 본론을 이야기하지 못하고


마치 성장 멜로 이야기인 것처럼 쿠션을 잔뜩 깔고 들어갑니다.


두 주인공이 서로 몸이 바뀌며 일어나는

코믹멜로 장르로 관객의 무장을 풀어놓고는

진짜 하려던 이야기는 후반부로 미뤄놓죠.



날씨의 아이(2019)


두 번째 작품인 날씨의 아이에서는

조금 더 무겁게 다가갑니다.


PC방을 전전하는 가출 청소년이 주인공이고

어른들은 악역으로 묘사되며,

주인공들이 하려는 일을 사사건건 방해합니다.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희생을 강요하는 상황을 설정하고는

이 희생을 할 수 있겠냐는 메시지를 관객에게 던져요.


주인공이 작품에서 한 선택은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선택이었죠.

실제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그 누가 세상이 당장 망하더라도

본인의 소중한 사람을 희생하는 선택을

할 수 있겠어요. 전 못합니다.




스즈메의 문단속(2023)


세 번째이자 올해 개봉했던 스즈메의 문단속에서는

좀 더 직설적으로 다가갑니다.


지진임을 직접적으로 암시하고

과거부터 재난으로 큰 피해를 입었던 실제 지역을

(규슈 미야자키현, 시코쿠 에히메현, 도쿄, 도호쿠 이와테현)


작품 속에서 직접 찾아다니는 로드무비 형식을 가졌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상처를 직접 봐야 합니다.


스즈메의 문단속에서 문을 닫기 위해

문을 한 번 열었던 것 처럼요.



장소가 가진 아픈 기억을

다시 한번 직면하고, 위로해 주며

주인공이 외치는 대사인 '돌려드립니다'는

그래서 의미심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1999)


이제 포스트 미야자키 하야오로 평가받고

누구나 다 아는 최고 맛집이 된 신카이 마코토.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라는 짧은 단편에서

그녀만 있으면 다른 건 다 필요 없다고

독백하던 애니메이터가


문을 닫고 나갔지만

문을 열고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되기까지, 지켜봤습니다.


이제 저는


웃으며 다음 작품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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