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랑 통역 되나요?’의 진짜 통역사

사랑은 저맥락으로

by 늪사슴



배려와 회피의 경계는 생각보다 희미하다.


배려는 상대를 존중하기 위해 말을 다듬는 일이지만

회피는 관계가 흔들릴까 봐, 상처를 받을까 봐

감정을 숨기는 일에 가깝다.


문제는 한국과 같은 고맥락 문화권에서

배려와 회피가 혼동되기 너무 쉽다는 점이다.


우리는 관계, 분위기, 타이밍을 우선에 두는

고맥락 문화에 익숙해진 나머지

사랑마저 ‘맥락’으로 전달되기를 원한다.


말 자체는 줄고, 해석이 늘어나는 것이다.


"이 사람, 나한테 관심이 있는 건가요?"

라는 연애 콘텐츠가 넘쳐나는 건 그것 때문이다.






고맥락 문화권의 언어는 말의 내용보다

말이 오가는 관계와 상황, 분위기 같은

‘주변 정보’에 의미를 많이 싣는 문화다.


한국, 일본이 대표적인 고맥락 문화에 속한다.


반대로 저맥락 문화는 의미를 가능한 한 말로 또렷하게 적어두는 쪽에 가깝다.

애매한 뉘앙스에 맡기기보다 문장으로 정리해서 오해를 줄이려 한다.


고맥락이 눈치와 뉘앙스에 기대는 언어라면, 저맥락은 명확한 문장에 기대는 언어다.


호감 표현은 누구든 좋아하지만

중요한 것은 저맥락 방식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좋아한다”, “같이 있고 싶다”, “보고 싶다”처럼

마음을 맥락에 숨기지 않고 문장으로 꺼내놓는 태도는

해석을 줄이고 관계의 불확실성을 낮춘다.


고맥락 환경에서 늘 눈치와 뉘앙스를 읽느라 지친 사람일수록,

이런 직진은 더 "시원시원하다"가 아니라 오히려 "안전하다"라고 느껴진다.






나는 저맥락 커뮤니케이션의 화신을

드라마 '이 사랑 통역 되나요?'에서 보았다.


이사통에서 도라미가 매력적인 이유는

그녀가 솔직한 성격이어서가 아니라

고맥락이 만들어낸 빈칸을 메우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무희가 호진 앞에서 솔직하게 하지 못하는 말을

도라미는 냅다 갈겨 버린다.

"안녕 자기야?"


더 흥미로운 지점은 도라미의 저맥락 언어가

시청자에게 시원함을 넘어 귀여움과 매력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왜?

그건 우리가 쉽게 그렇게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맥락 문화에서 타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못하고

늘 더듬이를 세워 고맥락으로 해석해야 했던 우리는


말을 있는 그대로, 워딩 그대로 들어도 아무 상관이 없는

저맥락 언어를 구사하는 도라미에게 귀여움과 매력을 느끼는 것이다.


관계를 깨지 않으려는 태도가 습관처럼 굳어지면,

어느 순간부터 말이 더 조심스러워지고 더 애매해진다.


그렇지만 사실, 그럴 필요가 없다.

적절한 상황과 감정의 기반이 있다면

더 이상 우리는 고맥락 언어를 구사할 필요가 없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이쯤 되면, '이 사랑 통역 되나요?'라는 제목도 새롭게 보인다.


이 드라마에서 통역은 언어의 국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고맥락 언어와 저맥락 언어의 사이를 오가게 해주는 것이 된다.

마음을 말로 옮겨 관계 앞으로 올려놓는 것, 즉 감정의 '명시화'다.


차무희의 통역사는 주호진이 아닌 도라미였던 것이다.


결국 사랑은,

그 무엇보다도 저맥락의 언어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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