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_(2) 본연의 진짜 자아로 회귀하기
바다를 본지가 오래되어서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얼마 전에 혼자서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건강상 계속 좋지 않은 일들이 연속으로 발생하여 여러 증상들이 잠복 상태였던지라, 이 상태에서 도대체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답답한 마음에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나선 길이기도 했다. 제주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언제나 그랬듯이 공항 자체가 주는 특유의 설렘을 잠시 느낄 수 있었고, 점심시간을 놓친 덕분에 햄버거를 하나 포장하여 숙소로 가는 시내버스에 올라탔다. 셀프 여행인 만큼 즐거운 활동보다는 편안한 휴식 목적이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 버스 안에서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올라왔다.
‘아... 뭔가,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네.
마치 나의 예전 터, 보금자리로 돌아온 듯한 이 느낌은 뭐지?’
창밖의 평화로운 풍경을 보면서 마음이 순간 누그러지고 평온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분명 서울 토박이인데도, 마치 고향 길에 들어선 느낌 같았다. 어린 시절에 여름휴가 철마다 시골 외갓집을 갔었는데, 그때는 한 번도 그렇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여름 방학에 외가댁으로 놀러 가는 기분이 들어서, 한밤중에 우둘투둘한 땅 위로 차를 타고 들어갈 때면 ‘이제 도착했다’는 설렘으로 기분이 들뜨고는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특히, 셀프 여행 중에는 평온함을 유독 더 느낄 때가 있다. 물론 새로운 곳에 도착하거나 멋진 장면들을 볼 때면 설렘이나 즐거움 같은 들뜨는 기분도 들지만, 한적한 장소에 있거나 이동 중에 창밖의 온화한 풍경을 볼 때면 뭔가 피로가 싹 풀리는 느낌이 들면서 원래의 고향집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분명 여행을 온 것인데 고향에 온 것 같은 느낌이라니? 내가 자연 풍경을 좋아하긴 하지만 전원생활 자체는 익숙한 편도 아니었는데, 왜 꼭 마치 고향에 도착한 듯한 묘한 편안함을 느꼈던 걸까?
‘혹시 이 여행지가 바로, ‘원래의 나(자아)’ 모습 그대로인 상태를 두어도 괜찮은 고향이 아닐까?’
라는 엉뚱한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기도 했다.
‘어쩌면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삶이나 학교에서 공부하던 생활 속의 내 모습이 원래의 자아가 아니라,
여기 여행지에서의 삶이 원래 나의 진짜 자아가 아닐까?
즉, 지금 내가 여행지로 이탈해 온 게 아니라,
원래는 여기에 있었어야 하는데 그동안 반대로 직장이나 학교로 이탈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원래의 진짜 자아가 있던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기 때문에,
내가 이렇게 혼연일체가 되어 평온하고 안정된 느낌을 가지는 것은 아닐까?’
더 엉뚱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얼핏 보면 이런 나의 공상들이 마치 동화 속의 허구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게 심하게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마음에 드는 여행지가 나의 원래 고향’ 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은 그저 상상이나 농담에 불과하지만,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지거나 즐거워지는 곳에서 우러나오는 나의 모습이 ‘진짜 자아(나)’일 수 있다는 것은 거의 사실에 가깝기 때문이다. 직장이나 학교에서의 내 모습도 ‘또 다른 나의 자아’에 해당되겠지만 나의 진짜 본연의 모습에 가장 가까운 자아는 바로, 학교나 직장 같은 사회적인 굴레를 벗어나서 아무런 제약 상태가 없는 여행지 같은 장소에서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진정한 자아 찾기’ 또한 셀프 여행의 묘미이자 중요한 목적 중 하나가 된다. 나는 때때로 시골 고향 같은 한적하고 고요한 장소에서 내 자아를 충만하게 인지하지만, 조용한 특성이나 다른 조건에 관계없이 그저 나의 본연의 성향이 가장 잘 나타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은 여행지가 될 수 있다. 자아 모습이 한두 개가 아니라 여러 성향일 수도 있기 때문에 그 장소가 평온한 들판이든, 거친 파도가 있는 바다이든, 감미로운 음악과 커피가 있는 카페이든, 화려한 축제나 콘서트장이든 간에,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가장 잘 느낄 수 있고 나답게 표출할 수 있는 곳이라면 나에게는 최고의 여행지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나에게 어울리는 여행지에 도착했다면 이제는 나의 진정한 자아를 마음껏 만끽해봐야 한다. 진정한 자아에는 여러 가지 모습들과 감정들이 포함된다. 즐거움이나 행복을 가득 표출할 수도 있고, 답답했거나 억압된 심정들을 분출할 수도 있으며, 우울감이나 무기력 등을 마음 편하게 느끼면서 흘려보낼 수도 있다. 특히 셀프 여행은 동행하는 지인들이 없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들을 내가 원하는 만큼 실컷 드러낼 수 있어서, 감정 정화를 하는데 더욱 좋은 환경이 된다. 게다가 우리 현대인들은 평소에 너무 바쁘고 주변 동료나 지인들에게 둘러싸일 때가 많아서, 긍정적인 감정들을 표현하는 것이 더 익숙하고 어두운 감정들을 드러내는 것이 쉽지 않은 편이다.
마침 얼마 전에, 이런 현대인들의 고충을 잘 나타내는 듯한 ‘인형극?’을 우연히 마주친 날이 있었다.
딱히 보관할 데가 없어서 집에서 뒹굴 거리던 ‘분홍색 여우 안대’와 매우 잘 어울려 보이는 ‘분홍색 돼지 인형’이 내 방에 있었다. 그 돼지 인형은 목 베개 용이라서 사이즈가 안대 크기랑 비슷해 보였고, 안대 보관용으로 끼워봤더니 마침 딱 맞았다. 더구나 둘 다 색상이 비슷한 분홍색이어서, 서로 흡수된 것처럼 감쪽같이 변신을 한 듯한 모습이었다. 여우 안대를 쓰고 있는 돼지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깐, 그 귀여운 그림 같은 장면에 어울리는 제목이 하나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보통은 ‘곰의 탈을 쓴 여우’라는 표현들을 많이 사용하는데, ‘여우의 탈을 쓴 곰’이라는 말들은 잘 사용되지 않는 듯하다. 희귀하긴 해도 은근히 있는데 말이다. 특히 그냥 곰이 아니라 여우의 탈을 쓴 곰이라면 훨씬 더 희귀한 만큼, 아직 멸종 위기까지는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혼자 피식 웃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순간, 저 인형극들의 주인공인 ‘여우와 꿀꿀이’의 합체 본이 바로 ‘여우의 탈을 쓴 곰’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현대인들, 즉, 우리의 모습을 닮은 것처럼 보였다. 개인적인 성격, 성향 측면에서는 ‘여우의 탈을 쓴 곰’이 드물지도 모르겠지만, 현대인들의 감정 표출 측면에서는 오히려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평소에는 저 여우 안대처럼 거의 항상 즐거워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 안대 속에 있는 진짜 모습은 꿀꿀이(돼지) 인형의 이름처럼 꿀꿀한 감정 상태일 수도 있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과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시대인 만큼, 업무적으로든 사적으로든 타인과 함께하는 시간들이 많아짐에 따라 대중적인 에티켓처럼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즐거워 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을 때가 많다. 여우 안대처럼 일종의 감정적인 탈을 쓰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울적하고 꿀꿀한 얼굴 모습 대신에 그 위에 웃고 있는 가면으로 가려진 상태인 것이다.
이런 감정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우리는 행동적인 측면에서도, 이렇게 여우 안대처럼 가려질 때가 많다. 평소에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느라 항상 빠릿빠릿하게 여우처럼 움직여야만 했던 사람이라면, 집에서 휴식할 때는 오히려 번아웃 증상으로 진짜 꿀꿀이처럼 한없이 늘어지고 게을러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평소에 여우 안대만 쓰고 있느라 자신들의 본래 상태인 꿀꿀이의 모습을 전혀 드러내지 못하고 거의 항상 ‘셀프컨트롤’만 하고 있다면, 이거야말로 ‘여우의 탈을 쓴 곰’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항상 즐겁게 웃고 있는 여우의 모습을 하면서 바쁘게 살고 있지만 가끔씩 혹은 자주 나타나는 나의 진짜 모습인 꿀꿀이를 계속 외면하고 있다면, 그런 습관이나 삶의 방식 자체가 바로 나를 향한 ‘곰팅’ 짓이라고 할 수 있다. 타인을 위한 모습만 있을 뿐, 내가 사랑해주고 품어주어야 하는 나의 실제 모습은 억누르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나 또한 한때 이런 모습이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분주해질 때면 또다시 이런 모습들이 종종 나오기도 한다. 그렇다고 싫은 상황에서도 항상 웃고 있던 건 아니었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사람들과 웃는 모습 뒤에 있던 나의 진짜 감정은 굳이 드러날 일이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주어진 삶을 살아내고 버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래야만 하는 때가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이런 상황에 자신을 방치하게 되면 결국에는 나 자신이 가장 많이 다치게 된다. 그래서 중간중간에 나 자신을 살펴줘야 하는 ‘셀프 힐링’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자신 본연의 모습인 꿀꿀이를 나만의 방식으로라도 끄집어내고 나랑 대화하는 좋은 시간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셀프 여행’이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지에 있다면 이러한 자신만의 꿀꿀이를 한껏 끌어내어서 진짜로 한번 제대로 만나보는 것은 어떨까? 꿀꿀이라고 해서, 항상 어둡고 슬프거나, 힘든 상태의 모습만을 의미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저 타인만을 향한 여우 안대의 탈을 벗어던져버릴 수만 있다면, 그 모습이 우울한 꿀꿀이의 모습이든, 흥이 폭발하는 예술인의 모습이든, 엄청나게 진지한 사색가의 모습이든, 어떤 것이든 상관이 없다.
평소의 ‘외부적인 감정의 탈’ 안에서 가려져 있던 자신만의 진짜 모습을 한껏 끌어내 보고 표출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야지 나의 내면 안에 쌓여있거나 억눌려 있던 부정적인 요소들이 없어지면서, 원래의 내 모습을 너무 많이 잃어버리지 않고 조금씩 되찾을 수 있거나 유지할 수 있다. 즉, 그동안 내 본연의 모습에서 너무 많이 떨어져 있던 상태를 다시 원상 복구하는 ‘마인드 세팅_(1단계)’ 작업의 일종에 해당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