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화의 도구로서 먼지 털기

목적_(4) 일상에서 쌓인 먼지 제거하기

by Spring


좋은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 100일 동안 각각의 주제별로 활동을 하고 카카오를 통해 인증을 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원래 꾸준한 루틴 라이프에 약한 편이기도 했지만, 여러 가지를 계획 중에 있던 시기라서 앞날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신청을 망설였다. 그런데 어떤 시사 주간지에서 하루에 한 편의 기사를 읽을 수 있도록 몇 개의 추천 기사를 큐레이션 해준다고 해서 호기심 발동으로 마감일 직전에 신청을 했다. 그렇게 기사들의 제목이라도 본다면 어떤 이슈들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는지 알 수 있을 테고, 그렇게라도 해서 거의 교류가 단절된 코로나 시기에 세상과 조금이라도 연결된 작은 느낌이라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매일 꾸준하게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어떤 날은 꽤나 공감이 가는 기사나 스토리를 발견하기도 했었는데, 그중에서도 ‘등산과 시’에 대한 뉴스레터가 생각난다.


주말에 읽을 만한 책을 추천해주는 뉴스레터였는데 책 추천 내용들은 자세히 읽지 못했어도, 끝부분에 첨부된 코멘트 내용이 눈에 띄었다.



산을 좋아하는 선배가 등산을 갈 때면 꼭 하나 챙기는 것이 시집인데,
얼핏 생각하면 ‘등산과 시’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 같아 보였고,
이와 비슷하게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또 다른 조합이 ‘시사와 시’ 같다고 했다.

습관 프로젝트의 예전 참가자 한분이
“시사지를 읽으니깐 자꾸 더 불행해지는 것 같아요 ‘라고 했던 만큼,
시사지라는 게 어두운 현실도 가득 담아낼 때가 많은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기자 중 한 분이 기사뿐만 아니라
이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시 한 편도 매일 참가자들에게 보내드린다고 했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시사와 시'의 조합을 크게 어색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했는데,
나 또한 그 시들을 좋아하던 멤버들 중 하나로서 그 말에 동의했다.

솔직히 '어색해하지 않았다'는 겸손의 표현 같고
그때 분위기로는 오히려 좋아하는 분들이 꽤 많았던 걸로 기억난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어떤 분들은 기사보다 시가 더 기다려진다고 했다.



나는 여기서 갑자기 어울리지 않는 ‘또 다른 나의 조합’이 생각났다. 바로 ‘여행과 시’였다.

물론, 여행의 목적에 따라서 책을 챙겨가는 여행가들도 많다. 아예 휴양 목적으로 아름다운 해변에서 쉬면서 따로 시간을 내어 책을 읽고 싶어서 챙겨가는 경우들도 있으니깐 말이다. 하지만 보통의 관광 목적이나 즐거운 액티비티 중심의 여행이라면 매우 활동적인 시간들로 가득 채울 때가 많으므로, 이와는 상반되는 분위기에 가까운 고요한 책이나 시집들과 굳이 함께 할 여유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나 같은 경우에는 조용히 쉬러 가는 여행이든 즐거운 일정을 마련하여 신나 볼 예정인 여행이든 간에, 혼자 가는 셀프 여행일 때는 평소에는 자주 펼쳐 보지 않았던 시집들을 갑자기 도서관에서 대출하여 챙겨가고는 했었다.

평소에는 시를 많이 읽는 스타일이 아니므로, 꼭 유명한 것이 아닐지라도 시집 표지의 분위기나 제목이 끌리는 것들 위주로 랜덤 하게 집어 들었다. 오히려 베스트셀러 같은 시집들은 여행보다도 책에 더 집중하게 될 위험이? 있어서, 그저 편하게 아무 페이지나 펼쳐봐도 느낌만 좋다면 부담이 덜 될 것 같은 평범해 보이지만 눈길을 끄는 시집들을 더 많이 챙겼다. 편하게 쉬러 가는 여행인데 엄청 무거운 글이나 두꺼운 소설들보다는, 그런 소소한 감성 시들이 더 힐링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시사와 시>, <등산과 시>, <여행과 시>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리고 차이점도 있을까?


시사지를 읽는 것 자체는, 우리 주변 삶의 현장과 현실들을 간접적으로라도 마주하여 직시해보려는 행위에 해당된다. 이렇게 우리 사회의 현실을 시사지를 통하여 간접적으로 접해보든 간에, 나 자신의 현실과 실제로 마주치든 간에, 타인과 꼭 직접적인 충돌을 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서로 연결된 삶 속에서 발생하는 각종 잡음과 어두운 소식들로 인하여 마치 먼지 구덩이에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직업 현장에서든 가정 현실에서든 자신의 삶을 그저 충실하게 살아왔을 뿐인데도, 서로가 엮여있는 삶의 현장에서는 부산하게 움직일 때마다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먼지들을 피할 수는 없다. 그저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았을 뿐인데 일상에서 발생하는 먼지들이 나에게도 쌓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열심히 살아서 생기는 후유증이라고 해야 할까나. 분주하게 움직이지 않았다면 먼지가 날리지도 않았을 거고, 나에게 쌓인 먼지도 거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이런 먼지들은 누군가 나에게 해를 끼치거나 상처를 주어서 생기는 마음의 스크래치도 아니고, 다양한 역할들로 인한 페르소나에 갇혀서 생기는 갑갑함도 아니다. 사회나 타인들로부터 내가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닐지라도, 그저 직장이나 가정 같은 삶의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스트레스와 피로도 때문에 먼지들이 쌓일 수밖에 없다. 기본적인 환경과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나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지라도 서로 얽혀있는 수많은 관계들로부터 오는 피로감은, 일상에서 피할 수 없기에 자연 발생적으로 쌓이는 마음의 먼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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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때 시 한 편은 이런 먼지들을 살짝 털어주는, 일종의 정화 작용을 할 수 있다. 즉, 시사지를 접하는 와중에 중간에 좋은 시를 읽는 것은 평소의 일상 속에서 내 마음을 정화해주는 행위에 해당되는 것이다. 여행이나 등산 중에 읽는 시도 이와 마찬가지다. 다만 시사지는 ‘일상 속의 현실에 접속한' 상태라면, 여행이나 등산이라는 행위 자체는 반대로 삶의 현실과 같은 먼지 구덩이를 벗어나서 ‘일상을 탈출한' 상태이다. 등산 또한 혼자 걷는 ‘순간의 셀프 여행’으로 본다면 그 느낌이 비슷할 것이다. 여행의 본질 자체가 일상 탈출인 만큼, 등산이나 여행은 먼지가 휘날리는 현실의 일상으로부터 적정한 ‘거리두기’를 하려고 떠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떠나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 먼지 소굴에서 벗어나는 것이므로 숨통이 트이는 효과가 있다.

즉 셀프 여행의 본질인 동시에 가장 기본적인 목적은 바로, 떠나는 행위 자체에서 얻을 수 있는 ‘먼지 소굴 탈출’을 통한 정화 효과일 것이다.


등산이나 여행 같은 활동의 시작은 먼지가 날리는 삶의 현장에서만 간신히 빠져나온 상태일 테고, 그 이후의 다른 좋은 활동들을 통해서 먼지를 털어내야 한다. 자연 풍경이나 관광지를 감상하거나, 시원한 바람을 쐬거나, 즐거운 축제에 가는 것과 같은 여러 활동들을 통해서 현실에서 뒤집어쓴 먼지들을 털어낼 수 있다. 이렇게 먼지 털기 활동들을 통해서, 그나마 내 본연의 모습으로 조금은 돌아갈 수 있다. 이런 원상복구 과정에서 더 추가하면 좋은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시집 읽기’가 될 수 있다. 현실 속의 먼지로 뒤덮여 있던 자신의 진짜 모습이 조금이라도 드러났을 때 ‘시집 읽기’ 같은 활동을 통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본연의 자아에 더 깊이 접속하여 자신을 더 정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시 한 구절을 통하여 울고 웃을 수 있는 나의 감성과 한때? 따스했던 마음도 다시 발견할 수 있고, 어린 시절의 순수하고 연약했던 동심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바쁘고 힘들었던 현실에 찌들어 있느라 한동안 숨겨져 있던 내 본연의 모습들과 잠시라도 만남으로써, 먼지가 없었던 원래의 내 모습으로 청소가 되는 과정인 것이다.


나 또한 셀프 여행을 하는 중에는, 비행기 안이나 속세에서 떨어져 있는 낯선 곳에서 혼자 있을 때면 그런 시집을 갑자기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여행하기에도 부족할 수 있는 시간이겠지만 이동 중이나 밤중에 그런 짧으면서도 여운이 있는 시들을 접하게 되면, 그동안 정신없이 달리느라 먼지투성이가 되어 있던 내가 다시 정화되는 느낌이 기분 좋게 사르르 몰려온다. 마치 따뜻한 온천에서 싸우나를 하는 기분처럼 말이다. 아마도 몸을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면 노곤해지면서 피로가 풀리듯이, 그동안 쌓인 정신적인 피로가 따뜻한 시집으로 인해서 스르륵 풀렸던 것이 아닐까? 이렇게 시 한 편이 우리의 건조해진 마음에 촉촉한 빗물을 뿌리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마침 그 시사지의 뉴스레터 마지막 부분에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멘트가 나오는데,

내가 제일 공감했던 부분이다.


“불행해진다고 현실을 들여다보는 일을 회피할 수는 없습니다. 시인들이 그렇듯 이요.
다만 평범한 사람들은 이렇게 맞닥뜨린 현실에 울분이나 혐오로 반응하는 일이 흔하죠.
일상이 메말라 갈수록, 영혼이 깜빡일 일이 많을수록 시를 읽어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 같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저도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선사할 봄날의 시를 골라봐야겠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예전 참여자 분이 ‘시사지를 읽으니깐 자꾸 더 불행해지는 것 같다’고 했기 때문에, 뉴스레터의 마지막 멘트가 이에 대한 응원 메시지로서 덧붙여진 것 같았다. 아마도 시사지를 읽는 것은 별로 접하고 싶지 않은 어둡고 시끄러운 사회의 현실들을 마주한다는 건데, 나의 힘든 현실뿐만 아니라 타인들과 사회의 힘든 삶까지 계속적으로 더 접하게 되니깐 그 힘듦과 고됨이 몇 배로 더 가중되는 것 같아서 불행해지는 느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 또한 예전에는 비슷한 이유로, 남들이 대단하게 보는 직업들이 개인적으로는 불행할 것 같아서 나에게는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았었다. 의사는 피를 봐야 하니깐 싫었고, 정치인은 매일 싸워야 하니깐 싫었고, 법조인은 사람 인생 관련된 판결을 해야 하니깐 부담감과 죄책감이 클 것 같아서 싫었고, 언론인은 좋지 않은 뉴스들을 제일 빨리 제일 많이 알게 되니깐 정신적으로 힘들 것 같아서 싫었다. 그렇다고 좋아 보인 다한들, 내가 막상 그런 직업들을 마음대로 고를 정도로 유능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였겠지만 말이다. ^^ 어쨌든 마음이 그렇게 많이 끌리지 않았던 것만은 사실이다. 단지 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런 일종의 보호본능으로? 조금은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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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 마음을 밝은 부분에만 두기 위해서 어두운 부분 보는 것을 가능한 회피하고자 하는 삶을 추구한다면, 이는 결국 나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처럼 평범하고 힘없는 보통의 사람들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사회나 타인의 현실이든 나 자신의 현실이든, 불행해지는 느낌이 싫어서 직면하는 것을 무조건 회피하고자 한다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거나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측 불가능한 삶에 대한 내성이 점점 더 약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차라리 어둠과 밝음을 모두 다 마주하면서 나만의 정화 방법들을 추가하는 것이 더욱 현명한 삶일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정화의 방법에는 ‘셀프 여행이나 시집 읽기’ 등 여러 가지가 있을 테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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