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_이팔청춘과 환갑 사이를 오가는 자유인!?!
정동진에 가면 ‘대게 칼국수’를 파는 곳이 있다. 정동진에서 많이 먹을 수 있는 주요 메뉴는 순두부라서 보통은 그걸 먹는 편인데, 그날따라 밥 종류는 먹고 싶지가 않아서 그 음식점 문 앞에 붙어있는 메뉴판을 보면서 주변을 서성이고 있었다. 왜냐하면 ‘2인분 이상 주문가능’이라고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내부에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빈자리가 하나 보이 길래 들어가서 슬쩍 물어보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어봤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로 보다 긍정적이었다.
“원래는 1인분이 안되는데, 혼자 오시는 분들은 여기 주변에 먹을 데가 많지 않아서 저희가 해드려요.”
인상이 선한 여자분이었는데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거기 음식점 주인의 따님이란다.
그녀의 대답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1인분이 가능하다는 얘기에 반가웠고,
그다음에는 그 사유가 따스해서 괜히 마음까지 온화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기차역 주변에 음식점이 많지는 않은 편인데, 그중에서도 1인분 식사나 포장이 실제로 가능하지 않은 곳들도 꽤 있다. 그렇게 주변 식당들을 사전 탐방했던지라 그녀의 돌아온 답변이 더 온기가 느껴졌다.
대부분은, 1인분 판매를 하지 않는 영세한 음식점들 입장에서 말씀하시는 편인데 손님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 주는 그녀의 모습이 인상적이라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1인분을 먹을 수 있게 된 ‘특권 아닌 특권’ 덕분에 기쁜 마음으로 빈 테이블 하나가 남아있는 곳에 간신히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에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비주얼부터 따끈하고 푸짐하게 생긴 모습이 처음부터 내 시선을 끌었는데, 실제로 먹어보니깐 칼칼하지만 많이 맵지는 않아서 맛있었다. 뜨끈한 국물에 시린 내 마음을 녹이듯이 먹는데 집중을 하고 있느라, 주변이 시끌벅적하기는 했어도 대화 내용들은 귀에 거의 잘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내 바로 뒤의 일행들이 식사를 끝내고 비운 자리에 다른 일행들이 들어와서 착석했다.
몸이 불편하신 할머니 한분과 중년 여성 그리고 좀 더 젊은 여성 등으로 구성된 2~3세대의 가족들로 보였는데, 그들의 대화는 바로 뒷자리라서 그런지 우연히 내 귀에 들어오고 있었다.
라면서 중년 여성이 그렇게 운을 떼었다.
이렇게 대답한 여성은 아마도 제일 고 연령자인 할머니였겠지. 이미 60대가 지나신 상태라는 말씀이니깐.
그때쯤 나는 속으로 그 가족들을 내심 부러워하고 있었다. 흰머리가 늦게 나는 가족력이 있는 집안 같아서 말이다. 그 순간, 그런 내 짐작을 뒤엎는 대화가 하나 더 들렸다.
좀 더 젊은 목소리였다. 그때는 누군지 궁금해서 티가 나지 않게 힐끗 쳐다봤는데, 역시나 그 목소리처럼 제일 나이가 적어 보이는 여성이었다. 가족력인 줄 알았던 그 특성을 닮지 않은 그녀가 나랑 비슷한 거 같아서 내심 또 위안이 되었다. 그런데 그 뒤에 이어지는 그녀의 말은 어쩌면, ‘가족력’보다 더 강력할지도 모르는 일종의 ‘세대력?’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다시 뭔가 마음이 꿀렁해졌다.
라면서, 자신만 그런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헉... 저 여성이랑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주변의 보통 사람들 얘기였군.
하긴, 내 주변 지인들 중에서도 은근히 많은 사람들이 그런 거 같네?’
우리 외가 친척들이 흰머리가 일찍 나는 편이라서 내 흰머리를 처음 보았을 때, 예상보다 일찍 마주하게 된 그 타이밍이 가족력인가 싶었다. 물론 그때 일이 많았던 시기라서 스트레스 또한 그 이유 중 하나일 거 같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지금 저 건너편의 여성 얘기를 들으니깐, 그녀는 나처럼 그런 가족력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데 나랑 별반 다르지가 않다니. 게다가,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 친구들도 거의 비슷한 시기에 첫 흰머리를 맞이했다니. 나의 지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가족력보다는 ‘세대력?’이 더 막강할 수도 있겠다는 추정과 함께, 옛날보다 우리는 더 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살짝 짠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 뭐, 나랑 저 여성분의 지인들만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근데 과연 그럴까?
그렇다면 나는 왜 여기서 ‘세대력’이라는 용어가 갑자기 계속 떠올랐던 걸까.
‘가족력(family history)’은 개인이 성장해 온 가족에 대한 다양한 정보로서,
흡연, 음주, 음식 등의 생활습관과 주거환경, 직업 등의 환경적인 요인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이러한 정의와 사실을 토대로 하여, 우리는 ‘세대력(generation history)’이라는 의미도 창출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즉, 개인이 소속되어 성장해 온 비슷한 세대에 대한 다양한 정보로서, 선호하는 생활양식 및 라이프스타일, 주거환경, 업무환경, 직업, 직장 등의 환경적인 요인에 큰 영향을 받는 것을 바로, ‘세대력’으로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가령, 예전 세대보다 요즘 세대에서 비만이 더 많이 나타나는 현상도 일종의 ‘세대력’으로 인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면, 흰머리의 조기 출현 또한 이런 ‘세대력(generation history)’의 공헌도가 크게 작용했는지도 모른다.
기술의 발전 등으로 인해서 요새 사람들이 몸은 상대적으로 많이 편해진지 몰라도, 어쩌면 예전 사람들보다 마음은 더 편해지지 못한 게 아닐까? 우리는 점점 더 잘 살게 되었는데도, 오히려 마음 상태는 거꾸로 더 힘들어지고 있는 걸까?
나뿐만이 아니라 내 주변 또래들과 친구들을 포함하여 우리 세대가 많이들 그런 것 같아서 종종 마음이 좋지 못할 때가 있었는데, 지금도 많은 이들이 여전히 그런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해졌다.
‘우리의 행복은 왜 자꾸만 이렇게 역행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 걸까?
일상생활 기술은 점점 향상되고 있는데, 우리의 마음 상태는 반대로 퇴보하고 있는 걸까?
아이고, 정작 나 또한 지금 여기 정동진에 와 있는 이유가 별반 다르지가 않구나.’
실은 나도, 이번에 여기 정동진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내 머리카락은 거의 블랙으로 검은 상태였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더니 겨우 열흘 만에? 아니, 일주일 만에? 아무튼 1~2주도 지나지 않았는데? 내 머리에도 하얀 머리카락이 자꾸만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저 여성분 친구들 흰머리가 35~40세 정도에 처음 시작된 것처럼 나도 그랬던 것 같다. 아니, 더 정확히는 30대 중반도 아니고 초반이었다.
삼삼한 블랙 머릿결만 지니고 있어도 모자를 나이였던 33세쯤에, 나의 첫 흰머리가 한두 개도 아니고 여러 개가 동시에 머리 안쪽에서 깊숙이 자리 잡고 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때 어떤 업무를 거의 혼자서 떠안고 있어서 그랬는지 스트레스가 많이 심했나 보다. 그 이후에는 스트레스가 점차 줄어드는 시기가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때는 흰머리도 눈에 띄게 줄어서 거의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새 또다시 그때처럼 하얀 머리카락의 등장이 더 과감하게 시작되었고, 그다음의 흰머리들이 또 연달아 나타나는 시간 간격 인터벌 구간도 더 짧아진 게 느껴졌다. 어이쿠.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대략 난감했다. 그만큼 여기 정동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에 한동안은 그저 숙소 주변에서 쉬고만 싶었던 마음이 굴뚝같았다. 개인적인 여행은 최대한 미루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휴식 기간 동안 심신이 회복되면 나중에 여행 시간도 가지면서 마무리를 할 생각이었다.
실제로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패션모자도 하나쯤 마련할 계획이었는데, 갑자기 예정보다 더욱 빨리 모자를 급히 사게 되었다. 흰머리들의 고공행진 덕분에 염색할 타이밍을 많이 앞당겨야 했지만 염색해도 또다시 날 거 같았고 아직 여행할 것도 아닌데 염색을 하려니깐 너무 귀찮게만 느껴져서 하루 이틀 미루던 와중에, 그때 떠오른 차선의 대안이 바로 ‘모자’였기 때문이다. 모자를 쓰고 다니면 화이트 머리가 가려질 거 아닌가!
마침, 자주 지나치던 모자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거의 첫눈에 바로 내 눈에 들어온 모자가 하나 있었다.
다른 모자들은 그다지 나의 마음을 훔치지 못했지만, 그거 하나만은 샤방 샤방한 색상과 여리 여리한 라인으로 나의 눈길을 계속 사로잡고 있었다. 하늘하늘한 그 모자 라인은 뭔가 나를 더 젊어 보이게 할 것 같았고, 색상은 은근히 여성스러운 분홍색이었다. 진한 분홍이면 좀 부담스러울 것 같았지만 다행히도 내가 평소에 좋아라 하는 파스텔 톤의 연분홍이었다. 이런 특성들만으로도 충분히 예뻐 보였는데 목에 매달 수 있는 얇은 끈은 디자인에 더 포인트를 더해주었다. 그 모자를 쓰게 되면 나도 더 어려 보이거나 나름 여자 같은 여자로? 잠시 위장이 될까 싶어서 고른 거였지만, 제일 큰 이유는 급속도로 올라오는 새치 흰머리를 커버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근데 말이다. 솔직히, 그 모자를 확 사버리기로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어떤 아주머니 한 분이 가게 안으로 들어오면서 그 연분홍 모자를 뒤집어쓴 내 모습을 보자마자, 특급 덕담을 하나 선사하셨던 것이다.
그때 나의 겉모습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감사한 표정으로 여유롭게 감사의 답변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완전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그 덕담 아주머니는 물론, ‘알프스’에 핵심 포커스를 맞춘 거겠지만, 나는 이미 ‘소녀’에 핵심 포커스가 맞춰진 채로 아주 기분 좋게 계산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선택에 후회는 없다. 모자 자체는 정말 마음에 들었으니깐 말이지. 그게 바로 엊그제 일 같은데, 이렇게 또 가까운 근처에서 ‘흰머리’에 대한 담소를 우연히 듣게 될 줄이야. 그 분홍이 모자를 그때 빨리 사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사할 때는 모자를 쓴 채로 먹는 게 불편해서 사람이 많지 않은 식당에서는 잠시 벗어두는 편인데, 다행히도 거기는 작은 장소라서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기 때문에 그 분홍 모자를 푹 눌러쓴 채로 나의 하얀 머리들을 나름 잘 숨기고 있었다. 그렇게 안심하는 마음으로 그 칼국수 집을 서둘러 나왔다. 마치 그 모자 안의 흰머리를 들켜버리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왜 그렇게 우리는 자꾸만 마음이 점점 더 힘들어지는 걸까?
그 식당을 나오면서 갑자기, 하고 싶은 게 하나 생긴 것 같았다.
혹시나 그런 힘든 사람들에게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문득 이 글이 쓰고 싶어진 것이다. 정동진에 대한 나의 작은 에세이 말이다.
근데 나는 지금 이 순간.
분홍색 챙이 모자를 쓰고 있는 '흰머리 독수리'가 왜 자꾸 연상이 되는 거지?
잠시 알프스 소녀로 변신한 '흰머리수리'가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는 듯이.
분홍이 모자를 푹 눌러쓴 채로 그 식당을 총총 빠져나와서 하늘로 휙 날아가 버리는~~~!
그런 모습이 자꾸 아른거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