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동안 살던 집에서 이사 하던 날.
모든 순간이 지층이 된 곳
벽지 위로 열여덟 번의 빛바램이 쌓이고
닳아버린 문고리는
내 손의 지문을 통째로 외워버렸다
한때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장 높은 음계를 차지하던 악기였으나
떠날 때가 되자 그 음들은
이 집의 공명을 잃었다.
이제는 발소리마저 조심스러운
침묵의 무게를 재는 저울만 남았다
푸른 벼락같던 청춘은 아니었대도
내 삶이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던 시절
나는 이 집이라는 가마 안에서
스스로를 가장 붉고 투명하게 구워냈다
내 전성기는 이 창문을 통과한 햇빛의 총량이다
이제 이 두꺼운 퇴적암을 떠난다
추억을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가장 선명한 화석 하나를
이곳에 남겨두고 나오는 것이다
열여덟 해의 밀도를 고스란히 품은 채로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
18년 동안 살던 집을 떠나는 일은, 그저 주소지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가장 두꺼운 지층을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곳은 나의 푸른 청춘은 아니었을지라도
내 삶의 가장 뜨거운 밀도로 타오르던 '전성기'의 무대였다. 아이들을 키우고, 그들의 웃음소리로 집안의 '공명'을 채우다가 결혼을 시키고 떠나보내기까지 그 모든 순간이 그 집의 벽지 위에, 닳아버린 문고리 위에 나이테처럼 겹쳐있다.
이 시는 그 18년의 시간을 '퇴적암'으로
그 안에서 가장 치열했던 나를 가마 속 도자기로
그리고 그곳에 남겨진 나의 시간을
화석으로 은유했다.
이사는 곧, 가장 빛나던 시절의 나를 그곳에 고스란히 남겨두고 나오는 일이다.
그 묵직한 밀도를, 이 시 한 편에 봉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