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버튼 너머의 그곳
거리를 걷다 문득 눈에 띈 낡은 공중전화 부스.
마치 시간의 틈새로 흘러 들어오는 유물처럼 느껴졌다
한때는 연결의 중심축이기도 했었는데
이제는 도시의 풍경 속에 초라하게
남아있을 뿐이다
반짝이던 금속표면은 세월의 더께로 얼룩지고 손때 묻은 수화기는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다.
공중전화가 처음 등장했을 때 그것은 혁신의 상징이기도 했다. 집이 아닌 곳에서 전화를 걸 수 있게 되었고 이는 소통 방식의 큰 변화를 가져왔다.
곳곳에 자리 잡아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제공했으며 그 앞에서 손으로 누르는 숫자들은
우리들 삶의 일부이기도 했다.
긴급한 소식을 전하며 친구들과 약속을 확인하기도 하고 사랑과 이별의 뜨거운 논쟁에
떨리고 설레기도 했었다.
그 시절의 감성이 혈관을 타고 빠르게 박동하기 시작한다.
오래전
동유럽 여행 때 오스트리아에서
후니쿨라를 타고 오르니 때 아닌 곳에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공중전화가 하나 있었다.
홀리듯 들어가 감정의 파도가 치는 시간 여행에 빠져 수화기를 들고 과거 저편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듯
혼자 떠들던 때가 생각난다.
ㅡ후니쿨라 위 실제 공중전화ㅡ
수십 년 전의 일이다. 퇴근하고 돌아가는 길이라며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무심히 그냥 공중전화를 보니 생각나 걸었다는
것이다.
잠시 수다를 끝내고 집안일을 하려는데,
다시 또 전화가 왔다.
금속 받침대에 동전을 하나씩 넣는 소리가 좋다면서 동전이 없어질 때까지 마치 투어를 하듯
대여섯 번쯤 더 전화를 했다.
그 동전들이 한국전력의 수입원 중 하나인 때도 있었는데, 이제 거스름 동전은 거추장스러운
신세가 되어 포인트로 쌓거나 기부를 하는 시대가 되었다.
덕혜옹주 영화가 한참 세간의 화제가 되던 해의 일이다. 친구들과 덕수궁에 놀러 갔다가
석조전에서 그녀의 사진을 보고 내려오던 길에 공중전화를 발견했다.
시공간을 초월해 부스로 들어가
망국의 한으로 끝난 덕혜옹주를 생각하며 수화기를 들었다.
동요에 능하였다 하니 마치 평화롭고 환희에 찼던 그녀의 어린 시절이 속삭임처럼
들려오는 것 같았다.
ㅡ덕수궁 공중전화ㅡ
디지털시대의 무수한 전파 속에서도 이렇듯 거리의 속삭임처럼 가끔씩 눈에 띄는 공중전화 부스는
내게 단순한 통신도구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물리적 거리를 초월하는 작은 창이었으며,
그 창을 통해 감성을 제공받아 나만의 무대인 양 모노드라마를 연출하기도 했었다.